[3월 17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왜 같은 잘못을 반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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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릴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창 20:2).

분명히 믿음이 성장했는데도?

아브라함은 23년 전에 애굽 왕에게 아내를 누이라 말하며 자기가 살기 위해서 아내를 팔아먹은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으로 구함을 받은 후에 그는 변화를 경험합니다. 그는 롯에게 크게 양보도 하고, 전쟁에서 승리도 하고, 계시도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 집에서 대접도 하고 소돔을 위해 중보도 합니다. 이제 자기 몸에서 난 아들을 주시겠다는 확실한 약속도 받습니다.

그런데도 지금 그는 오래전에 애굽 왕에게 했던 행동을 지금 블레셋 왕에게 똑같이 반복합니다. 분명히 믿음이 성장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왜 우리는 잘못을 반복할까요?

잘못을 질책하는 아비멜렉에게 아브라함은 “이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내 아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나를 죽일까 생각하였음이요”(창 20:11)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답에는 블레셋 땅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지 못한다는 불신과 자신의 목숨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의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묻기보다는 우리의 판단을 따르는 선택적인 신앙을 하곤 합니다. 믿음의 시야는 좁아지고 그분의 전능성과 무소부재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계산을 의지하다가 무너집니다. 우리가 기억해야만 할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성장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연약하며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여전한 간섭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여전히 애굽에서처럼 블레셋에서도 나타나십니다.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시고 뒤틀릴 수 있는 구원의 역사를 바로잡습니다. 약속의 씨인 이삭을 낳을 사라가 이방인들과 동침하는 일을 상상해 보십시오. 구원의 역사가 엉망이 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역할을 제대로 가르쳐 주십니다. 실패를 반복하는 아브라함을 선지자라고 부르십니다(7절). 아브라함은 이방인 왕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할 신분입니다. 그가 기도하자 하나님은 아비멜렉의 여자들을 치료하여 출산하게 하십니다. 여호와라파, 하나님의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믿음이 성장했다고 하면서도 실패를 반복하는데, 주님은 여전히 우리를 돌보시네요. 오늘 저의 역할을 제대로 잡아주시고 주변에 치료의 역사를 이루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