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화요일 장년 교과]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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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죄악을 기록하시지만 그것을 기꺼이 용서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그분을 경외하고 바르게 예배하는 기초가 된다.

시편 130편을 읽어 보라. 죄의 심각성과 죄인의 희망이 이 시편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시편 기자의 큰 고통은 자신과 백성의 죄 때문이다(시 130:3, 8). 백성들의 죄의 기록은 너무나 심각하여 하나님과 그들은 영원히 분리될 위기에 놓였다(시 130:3). 성경은 심판의 날까지 죄의 기록이 계속되고(단 7:10, 계 20:12), 죄인의 이름은 생명책에서 지워진다고 말한다(출 32:32, 시 69:28, 계 13:8).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죄의 기록을 지워 주시도록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한다(시 51:1, 9; 렘 31:34; 미 7:19). 시편 기자는 알고 있다.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노하지 않으시고 그분의 사랑은 영원하며 그분의 ‘노하심’은 인간이 그분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지 않을 때만 일어난다… 하나님의 노하심은 우리를 치시기 위함이 아니요 낫게 하시기 위함이며,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언약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것(호 6:1, 2)이다”(한스 K. 라론델, Hans K. LaRondelle, 시편에 나타난 구원, 1983, 180). 경이롭게도 죄를 기꺼이 용서하시고 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이 그분을 향한 경외심을 불러 일으킨다(시 130:4, 롬 2:4). 진정한 예배는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한 감격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의지하고 기다리도록 부름 받았다(시 27:14, 시 37:34). “기다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와(qawah)의 문자적 의미는 “뻗다”이며 “소망”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이다. 따라서 주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비참한 상황에 수동적으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소망의 “뻗어감,” 주님의 개입에 대한 간절한 기대이다. 시편 기자의 소망은 개인적인 낙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시 130:5). 어두운 밤이 지나면 하나님의 구원의 아침이 오기 때문에 주님을 향한 신실한 기다림은 헛된 것이 아니다.

(이어서) 시편 기자의 개인적인 간구가 어떻게 공동체 전체의 신원이 되는지 살펴보라(시 130:7, 8). 개인의 평안은 전체 백성의 평안과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기도한다. 신자로서 우리는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공동체의 한 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교훈> 하나님은 죄악을 기록하시지만 그것을 기꺼이 용서하신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가 그분을 경외하고 바르게 예배하는 기초가 된다.

<묵상>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주께서 그대의 죄악을 기록하신다면 그대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적용> 주께서 그대의 죄악을 기록한다는 말씀은 그대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이 말씀은 어떤 의미로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영감의 교훈>
죄를 취급하시는 그분의 방법 ~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품성과 죄를 취급하시는 당신의 방법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출 34:6, 7), ‘여호와께서 …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시 145:20, 37, 38)진다“(각 시대의 대쟁투, 541).

<기도> 주님 저의 죄악의 기록들을 지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누군가에게 또 내 마음에도 남아있는 아픈 기록이지만 주께서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랑이신 주님을 항상 모시고 경배하며 매일의 삶에서 죄를 이기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