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3일 목요일 장년교과]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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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단 6:26~27).

단 6:24~28을 읽어보라. 왕은 하나님에 대해 뭐라고 증언했는가?
이 일화의 요점은 다리오 왕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통치를 인정했다는 사실에 있다. 앞서 하나님께 드렸던 찬양의 표현들이 여기에서 절정과 최고조에 이른다(단 2:20~23, 3:28~29, 4:1~3, 34~37 참고). 다리오는 느부갓네살처럼 다니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러나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자신의 조서와 명령에 역행하여 모든 사람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단 6:26)하라고 명령했다.
다니엘은 기적적으로 구원을 얻었고 그의 믿음은 보상을 받았으며 하나님의 명예와 권세는 옹호되었다. 반면 악인들은 형벌을 받았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미래에 우주적인 차원에서 일어날 일들의 작은 예시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을 받고, 악인들은 벌을 받으며, 하나님은 우주 앞에서 옹호될 것이다.
단 6:24을 읽어보라. 이 성경절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무엇이며 그 까닭은 무엇인가? 여기서 논란이 되는 사안은 무죄한 아내들과 자녀들이 죄가 있는 자들과 동일한 처분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공의를 잘못 적용한 이 사례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이것이 죄인의 형벌에 가족까지 포함시키는 페르시아 법에 따라 왕이 결정하고 시행한 조치임을 주목해야 한다. 고대에는 가족 중 하나가 지은 범법 행위에 대해서 가족 전체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것이 옳다는 뜻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페르시아 법 테두리 안에서 이 일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훈 :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이방 왕의 입술을 통해 찬양과 영광을 받으셨다. 하지만 대적들과 그들의 가족이 함께 멸망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았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사자굴 사건은 마지막 시대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어떤 교훈을 줍니까?
(이어서) 둘째로 우리는 성경이 사건을 기록했을 뿐 왕의 조치를 지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실 성경은 부모의 죄로 인한 자녀의 사형을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다(신 24:16).

적용 :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신앙적인 감화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시련의 때나 번영의 때나 여전했던 다니엘 – “사자굴 속의 다니엘은 그 나라의 대신들의 수령으로서, 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선지자로서, 왕 앞에 섰던 동일한 다니엘이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최대의 시련의 때에도 하나님과 사람의 빛과 은총이 그에게 비추이던 번영의 때와 똑같을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도달하여 영원한 실체를 붙잡는다”(선지자와 왕, 545).

기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저를 돌보시고 지키시며 구원해주시는 아버지, 보잘것없지만 제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증언되어서 이를 지켜본 자들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