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화요일 예수바라기] 당연한데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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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자들아 너희가 정의를 말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 인자들아 너희가 올바르게 판결해야 하거늘 어찌 잠잠하냐”(시 58:1).

잠잠하면 안된다
통치자들이 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행하기 위함입니다. 판결하는 자들이 있는 이유는 올바르게 판결하기 위함입니다(1절). 이런 일이 제대로만 행해졌다면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럽고 불신에 사로잡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 1절에서 주목할 부분은 “잠잠함”입니다. 정의는 능동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정의가 행해지지 않는 것을 보고도 잠잠히 묵인하면 그 일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이 억울함을 당하는데도 내가 가만히 있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강도를 잡아 심판하는 것보다 우선해서 해야 할 일은 억울한 일을 당한 그를 돕는 것입니다. 강도 만난 자의 상처가 치유되도록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늘 시편의 1절에 다윗이 언급한 잠잠한 통치자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지나친 제사장과 레위인은 정의를 행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정의는 내가 불의를 행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자를 보고 잠잠했던 자들입니다. 강도를 잡는 일과 강도를 심판하는 일, 그리고 강도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치안을 유지하는 것은 차후의 일입니다.
인간은 본래 정의를 당연히 행하고 올바로 판결하고 악에 대해 잠잠히 있지 말아야 하는데, 악인은 마음의 중심에서 악을 행하고, 날 때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행하고, 독을 품은 뱀과 같아서, 그렇게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2-5절). 이것은 통치자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악인의 최후
다윗은 사자, 물, 화살, 달팽이, 갓난아이, 가시나무 불, 강한 바람 이렇게 일곱 가지 비유를 들어 악인들을 소멸해달라고, 그것도 아주 신속히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6-9절). 죄악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노력은 한계가 분명하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죄악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의인이기에 우리는 악인에게서 승리할 날을 바라봅니다. 이 땅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보여줄 그날을 사모합니다(10-11절).

기도) 의가 승리하는 날을 사모하며 오늘의 악한 일에 대해 잠잠하지 않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