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창 41:37-38)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깜짝 놀랍니다. 온 애굽 땅의 내노라 하는 현자들도 몇날이 지나도록 해석을 못하여 절절 매는데, 히브리에서 끌려온 젊은 노예가 그 꿈을 듣자마자 즉시 해석을 하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창 41:38) 하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요셉으로 인하여 천하의 대제국 애굽의 왕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찹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이 될 수 있을까요? 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다는 건 과연 어떤 것일까요? 말씀에 따르자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이 된 사람’이란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있는 사람, 하나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실까요? 어떤 사람 안에 하나님이 거하실까요? 계명을 신실하게 지키는 사람일까요? 그 사람과 하나님은 물론 함께 하십니다. 집에서 열심히 아버지를 섬기는 첫째 아들과 아버지가 어찌 함께 하지 아니하시겠는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아버지를 등지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과도 함께 하십니다. 탕자라 불리는 둘째 아들이 창녀들과 함께 주지육림 속에 있든 주린 배를 안고 돼지 떼 속에 있든 아버지의 마음은 결코 아들을 떠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아들과 함께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입니다. 아들이 그 마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거절해 버리면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 안에 거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거절하지 말고 우리 마음에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우리 마음에 거하신다는 건 아버지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거하신다는 뜻입니다(요 15:5, 7).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아버지 안에 거하며 아버지는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고운 채색옷을 입고 있을 때는 물론 바닥 모를 마른 우물 안에서나 노예로 끌려가는 사막의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나 억울하게 갇힌 감옥 안에서나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그 요셉을 가리켜 성경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기를 이 새벽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