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일요일 장년 교과] 죽은 자들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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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영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죽음 이후의 삶을 알지 못하고 짧은 이생에서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4).

1600년대의 프랑스 작가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성의 상태에 대해 반추하고 있었다. 그에게 한 가지는 매우 분명했다.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든지, 그 인생이 얼마나 선했든지 상관없이 그는 조만간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사후에 이르는 것은 죽음에 앞선 이 땅의 짧은 인생보다 길 뿐 아니라 무한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파스칼의 생각에 사람이 찾을 수 있거나 찾아야 하는 가장 논리적인 것은 어떤 운명이 죽은 자들을 기다리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직위의 상실 또는 자신의 명예에 대한 상상의 모욕” 같은 것에 흥분하면서도 그들이 죽은 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깜짝 놀랐다.
파스칼은 핵심을 짚었다. 그래서 성경도 예수님 안에서 구원을 발견한 자들에게 이르러 올 것 즉 미래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들에 대한 약속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언급하고 있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읽어보라. 이 말씀들은 우리에게 어떤 소망을 제시하는가?(요 6:54, 3:16, 요일 5:13, 딤전 1:16, 요 4:14, 6:40, 유 21, 딛 3:7)
영생은 십자가에 비춰볼 때 그 의미가 훨씬 잘 이해된다. 십자가에 비춰보면 영생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 우주의 창조주 즉 “모든 세계를 지으”(히 1:2)신 분, 우리가 살며 기동하며 존재”(행 17:28)할 때 의지하는 분인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그 몸속에서 죽으셨다. 무엇을 위해서이겠는가? 우리는 도로에서 죽은 동물처럼 어차피 썩을 텐데 말이다.

교훈 : 성경은 영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죽음 이후의 삶을 알지 못하고 짧은 이생에서 영원한 내세를 준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나의 삶 속으로

묵상 : 그대는 죽음 이후의 일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습니까?
(이어서) 신약성경이 숱한 영생의 약속을 포함하고 있는 이유가 그것이다. 왜냐하면 영원한 것들만이 보상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수백 년, 혹은 수억 년이 있어도 이생의 불행을 메우기 위한 아름다운 순간들은 충분하지 않을지 모른다. 영원만이 모든 것에 균형과 그 이상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무한한 것들은 유한한 것들보다 언제나 무한하게 많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옳았다. 이곳의 시간은 장차 올 시간에 비해 너무 짧다. 따라서 우리에게 다가올 영원을 준비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적용 : 어떻게 하면 그대가 사후의 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그대의 친구들이 이 중요한 주제에 관심을 갖도록 도울 수 있을까요?

영감의 교훈
영생을 위해 지금 준비해야 – “이 지상은 준비하는 장소이다. 그대는 한순간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하늘에는 모든 것이 조화롭고 평화롭고 사랑스럽다. … 선한 일에 부요해지기 위하여 연구하고, 나누어 주기에 민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상통하고, 다가오는 시기에 대비하여 좋은 기초를 놓으라. 그리하면, 그대는 영생을 붙들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1권, 706).

기도
아버지, 제가 오직 이생만을 살 것처럼 이 땅에 시선을 고정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관심과 시선이 하늘을 향하게 하시고 영원한 것을 위해 일시적인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