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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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0, 23)

12월도 벌써 초이틀입니다. 이제 올해가 한달도 남지 않은 것입니다. 남은 날들도 요셉처럼 주 안에서 늘 항상 형통(亨通)하길 소원할 뿐입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 39:23).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형통>이란 게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은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감’인데, 요셉의 형편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말입니다. 요셉은 지금 애굽에 노예로 끌려와 있는데다 누명을 뒤집어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요셉을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 하시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형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형통과는 아무래도 전혀 다른 형통인게 분명합니다. 형통이란, ‘모든 일이 뜻대로 잘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의 ‘뜻’이 <나의 뜻>이라 생각을 합니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술술 잘 풀리면 그걸 형통하다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 말씀에 따르면, 그 ‘뜻’은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요셉은 지금 눈물나는 노예 신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보기엔 절대로 ‘형통’일리 없는 눈물나는 노예 신세와 억울한 옥살이,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모든 일’이 지금 ‘하나님의 뜻’대로 착착 진행이 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아주 당연하게도 ‘만사에 형통’하다 기록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요셉도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는데도 ‘모든 일’이 지금 ‘자신의 뜻’과는 완전히 반대로 돌아가고 있는데, 그게 어찌 이해가 되겠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분9의 ‘뜻’을 명확히 알 수가 없고 그분의 ‘뜻’이 확실히 이해가 되는 건 아니나, 그래도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거기가 바닥 모를 우물이든 불타는 사막이든 혹은 빛 한줄기 없는 캄캄한 감옥이든 바로 그곳에서 지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요셉은 굳게 믿은 것입니다. 그러니 요셉에게는 노예로 팔려오는 사막의 뙤약볕이라 해도 만사가 형통이요, 컴컴하고 축축한 감옥이라 해도 주 안에서 만사가 형통입니다. ‘모든 일’이 요셉에겐 ‘형통’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형통한지요? 진실로 ‘형통’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 ‘모든 일’에 달린 것이 아니라 ‘뜻’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뜻’을 갖고 계시고 그 뜻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니, 요셉처럼 주 안에서 범사에 형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