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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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창 36:1, 8)

마침내 헤브론에 도착합니다. 그 무리한 여행 끝에 마침내 사랑하는 아버지를 뵙습니다. 늙은 아버지 이삭은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마침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갑니다. 그 때 이삭의 나이 백팔십 세. 이제 이삭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이삭의 죽음으로 창세기 35장이 마감됐으니 이제 창세기 36장은 틀림없이 야곱의 이야기가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 3:6)이라 하셨으니, 바야흐로 야곱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35장을 닫고 36장을 여니 첫 1절부터 족보가 나오긴 하는데 야곱이 아니라 에서의 족보입니다. 야곱의 족보는 그 다음 37장에 가야 나옵니다.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창 36:1). 그러고보니, 우리는 이삭의 장자는 야곱이 아니라 야곱의 형 에서임을 잊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잊지 않고 계시는데 우리는 에서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하나님’이시기는 하지만 ‘에서의 하나님’이시기도 함을 창세기 36장은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따져 보자면, 에서는 잊힐 만도 합니다.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리지 않나, 가나안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 아버지와 어머니의 근심거리가 되질 않나. 그 여인들에게서 아들을 낳는데 창세기 36장의 에서의 족보에 나오는 엘리바스, 르우엘, 여우스, 얄람, 고라가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태어납니다. 하지만 에서는 그 아들들을 데리고 도리어 가나안을 떠나 버립니다. 야곱은 밧단에서 난 아들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는데, 에서는 가나안에서 아들들을 낳아놓고서도 가나안을 떠나 세일로 간 것입니다. 에서는 잊힐 만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에서를 잊지 않으십니다. 신명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야곱의 후손들이 거하는 ‘시내 산’에 계시기도 하지만, 에서의 후손들이 거하는 ‘세일 산’에도 계시며, 시내 산에 은혜의 빛을 비추시듯 세일 산에도 은혜의 그 빛을 비추십니다(신 33:2-3). 야곱만큼 에서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시온 산에 거하든 세일 산에 거하든, 우리가 야곱 같든 아니면 에서 같든, 우릴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오늘도 이렇게도 뜨겁게 우릴 안으시는데, 우리가 어찌 그 사랑에서 피할 수 있을까요? 오직 예수께로 나아갈 뿐입니다. 오직 예수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