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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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이르되…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창 33:10-11)

형과 아우. 백세가 다 된 두 노인이 이십 년 만에 만나 서로 목을 껴안고 회한의 눈물을 흘립니다. 분노와 두려움이 부딪히는 대신에 화해의 눈물이 사태진 봄꽃처럼 향기롭게 피어나고 있으니 말씀을 읽을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기만 합니다. 진노 대신 사랑으로 반기는 형 에서에게 아우 야곱은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창 3:11) 하며 예물을 줍니다. 화해 예물입니다.

여기서 예물은 히브리말로 ‘민하’라는 단어입니다. 이 민하는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레 2:1)곧 곡식 제물을 칭하기도 합니다. 죄인은 ‘고운 가루’(레 2:1)로 된 소제를 드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향기로운 냄새로 받으시니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화해 곧 화목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고운 가루’로 드리는 그 제사의 연기를 향기롭다고 하시며 하나님이 죄인과 화해를 하시는 것은 그 ‘고운 가루’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의 화목 곧 화해를 위해 스스로 ‘민하’가 되셨으니 하나님은 ‘민하’ 되신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와 기쁨으로 ‘화목’(골 1:19-20)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19-20).

가루가 될 때까지 빻이고 또 빻여서 불에 태워질 자는 흉악한 죄투성이 우리입니다. 그런데,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예수께서 ‘민하’가 되시고 ‘예물’이 되셔서 ‘고운 가루’가 되도록 빻임을 당하시고, 마침내 뜨거운 불에 살라짐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은 ‘향기로운 냄새’(레 2:2)로 받으시고 우리와 즐거이 화해하시니, 하나님의 이 은혜를 어찌 말로 다 형용할 수 있을까요?

우릴 위해 ‘민하’가 되신 우리 구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으니,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천천의 숫양’(미 6:6-7)으로 나아갈까요?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으로 나아갈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건 그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우리의 존재’, 그것만으로도 기쁘신 것입니다. 지친 몸으로 나아가 아버지께 우리가 기대기만 해도 아버지는 너무나도 기쁘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저 감사함으로 아버지께 갑니다. 화목예물은 ‘민하’ 되신 예수께서 십자가로 이미 드리셨으니, 그저 감사함으로 오늘도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사랑하는 하늘 우리 아버지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