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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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창 38:15)

창세기 36장의 ‘에서의 족보’가 끝나고 드디어 ‘야곱의 족보’가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하시고는 37장 내내 요셉 이야기만 하십니다. 야곱의 족보에서 ‘한 아기’(사 9:6) 곧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 족보는 아무 가치도 없으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요셉을 통해 우리로 예수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37장은 종으로 팔린 요셉이 애굽으로 끌려가 보디발에게 팔리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제 창세기 38장입니다. 애굽에서의 파란만장한 요셉의 삶이 이제 펼쳐질 것입니다. 그 기대로 38장을 열어 보니 요셉 얘기는 한 글자도 없고 요셉의 형 유다 얘기로 가득 합니다. ‘유다 족속’, ‘유다 왕국’, ‘유대 민족’ 그리고 ‘유대인’이라 불릴 때의 바로 그 유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유다 말입니다. 그 유다가 메시아를 표상하는 요셉에 이어 ‘야곱의 족보’에 등장을 하니 창세기 38장이 제법 기대가 됩니다. 그 기대로 38장을 펴는데 1절부터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헤브론을 떠나 아둘람으로 가더니 거기서 가나안 여자를 보고 동침을 합니다. 가나안 여자에게서 아들 셋을 얻는데, 큰 아들이 엘이고 그 며느리 이름이 다말입니다. 가나안 여자와 결혼을 하더니 아들을 위해 데려온 며느리도 가나안 여자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시나브로 가나안에 물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사고를 치고야 맙니다. 양털을 깎는 축제에 갔다가 딤나에서 창녀에게 수작을 부리는 걸 보십시오.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이 수작을 부리는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 일이 있고 석 달쯤 후 소식이 들리는데, 며느리 다말이 임신을 했다 합니다. 아들이 죽고 없는데 임신을 했다 하니, 수절을 하기는커녕 행음을 한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유다는 대노하여 행음한 며느리를 불태워 죽이라 명합니다. 그 며느리가 바로 석달 전 자신이 수작을 부린 딤나의 그 창녀인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자기가 한 짓은 까맣게 잊고 며느리 다말을 불태워 죽이려는 것입니다. 남의 죄에는 송곳처럼 예민하되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하고 자비롭고 인자한 위선자, 그가 바로 유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 유다 말입니다.

큰 기대로 열었던 창세기 38장이 이 ‘유다와 다말’ 얘기로 가득 차 있으니 낯부끄럽고 민망하여 당혹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 낯부끄럽고 민망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통해 하나님은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요셉 이야기나 계속 하실 것이지 요셉 얘길 하시다 말고 뜬금없이 왜 이 유다와 다말 얘기를 하셔서 우리를 당혹하게 하시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