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벧엘에서 길을 떠나 에브랏에 이르기까지 얼마간 거리를 둔 곳에서 라헬이 해산하게 되어 심히 고생하여 그가 난산할 즈음에…라헬이 죽으매 에브랏 곧 베들레헴 길에 장사되었고 야곱이 라헬의 묘에 비를 세웠더니 지금까지 라헬의 묘비라 일컫더라”(창 35:16, 19-20)
벧엘을 떠난지 오십 리도 안됐는데 라헬이 진통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결국 헤브론으로 가는 길 위, 베들레헴에서 해산을 합니다. 난산 끝에 낳은 아들, 그 아들이 바로 베냐민입니다. 하지만, 난산 끝에 라헬은 죽고 맙니다. 죽어가는 라헬이 마지막 힘을 다해 아기의 이름을 짓는데 그 이름이 바로 ‘베노니’입니다. 베노니,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여행을 시작하지만 않았어도 난산으로 죽지는 않았을텐데, 야곱이 괜히 벧엘을 떠나 헤브론으로의 그 무리한 여행을 시작한 바람에 라헬이 그만 죽고 만 것입니다.
야곱이 왜 이렇게도 무리한 여행을 시작했을까요? 아버지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끓어오르는 사랑이 그 무리한 여행을 떠나게 한 것입니다. 헤브론에는 사랑하는 아버지 이삭이 기력이 쇠할대로 쇠해 시름시름 앓고 계시다 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소식을 들은 야곱은 마음이 급합니다. 아버지를 향한 끓어오르는 사랑 때문에 야곱은 아내가 만삭임에도 불구하고 그 무리한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 때문에 무리한 여행을 하는 이가 여기 또 있습니다. 바로 하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배반한 아들도 아들이라고 아버지는 우릴 향한 사랑을 이기시지 못해 베들레헴으로의 그 무리한 여행을 떠나신 것입니다.
야곱은 그것까지는 몰랐습니다. 헤브론으로의 여행이 무리가 좀 되리라 각오는 했지만, 그렇다고 만삭의 아내가 여행길에 난산으로 죽으리라고까지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을 줄 뻔히 알았다면, 알고서도 그 길을 떠났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셨습니다. 이 여행에서 사랑하는 아들이 죽게 될 것을, 그것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되리라는 걸, 아버지는 뻔히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걸 모두 다 아시면서도 베들레헴으로의 그 무리한 여행을 하십니다. 우릴 향한 사랑을 어쩌지 못하시니 하나님은 그 여행을 하신 것입니다. 그 여행을 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영원히 슬픔의 사람 ‘베노니’로 지내게 될 걸 아시니, 주님은 죽게 될 걸 뻔히 아시면서도 그 무리한 여행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릴 향한 끓어오르는 사랑을 못이겨 그 무리한 여행 길을 기꺼이 나서신 분, 이 분이 바로 하늘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그 뜨거운 사랑으로 말미암아 ‘슬픔의 아들’ 베노니였던 우리가 ‘아버지의 자랑스런 아들’ 베냐민이 되었으니, 아, 하나님이시여,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