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1일 목요일 장년 기도력]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 생애는 우리의 교과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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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시 92:1~3)

실제적인 기독교란 매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를 위해 가끔이 아니라 꾸준히 일하는 것이다. 살면서 실제적인 의를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면 자신의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셈이다. 하나님은 성화된 백성, 그분을 섬기도록 구별된 백성,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는 초청을 소중히 받아들이는 백성을 찾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열정적으로 일하셨던가! 믿고 회개하는 모든 죄인에게 자신의 흠 없는 의를 부여해 타락한 인간의 가치를 높이고자 노력하셨던 그분의 삶은 얼마나 큰 헌신을 드러냈던가! 그분은 지칠 줄 모르고 일하셨다. 성전과 회당에서, 도시의 대로, 시장과 상점에서 그리고 해변과 언덕에서 그분은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셨다. 그분은 거기서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주심으로 속량하는 은혜의 계획을 실천하셨다.
그리스도는 이 큰 희생을 치러야 할 의무가 없었다. 그분은 율법을 범한 자들이 당할 형벌을 자신이 지기로 자원하신 것이다. 그 의무감은 오로지 사랑에서 말미암은 것이며 그분은 구원 계획의 일부인 모든 고통과 수모를 묵묵히 견디셨다. 그리스도는 사심 없이 봉사하며 사셨다. 그의 생애는 우리의 교과서이다. 그분께서 시작하신 일을 우리도 이어받아야 한다.
그분의 이름을 앞세우는 이들이 수고와 희생으로 점철된 그분의 삶을 보고도 자기를 내려놓고 십자가를 지고 그분 따르기를 주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분은 우리를 고결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경지에 이르게 하고자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셨다. 헐벗은 우리 영혼에 자신의 부요함을 넘치게 쏟아붓고자 자신이 가난해지셨다. 우리에게 평화와 안식과 기쁨을 주려고 우리가 자기 보좌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견디셨다.
그분을 위해 일하는 특권에 감사하며 그분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며 희생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분이 치러 주신 모든 것, 그분이 순결하게 해 주신 애정, 그분이 사신 몸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서 성결하고 거룩하게 보존해야 하지 않겠는가?

『리뷰 앤드 헤럴드』, 1912년 4월 4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서병웅/이정민 선교사 부부(미얀마)
요양원 건립이 추진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