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6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친구가 원수로 돌변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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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시 41:9).

친구가 원수로 돌변할 때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병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여호와께서 그를 병상에서 붙드시고 고쳐주셨습니다. 그는 다시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4절)라고 간구하였지만, 이번에는 쉽게 병이 낫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그를 위로하며 하나님 신뢰하기를 그치지 말자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친구였을 것입니다.

친구들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다윗의 면전에서는 덕담을 했지만 뒤에서는 “그가 어느 때에나 죽고 그의 이름이 언제나 없어질까 하며”(5절) 악담을 하였습니다. 다윗은 이미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호와 하나님께 용서와 치유를 구했는데 친구들은 다윗이 죽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발꿈치를 든 자

다윗은 “내가 신뢰하여 내 떡을 나눠 먹던 나의 가까운 친구도 나를 대적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나이다”(9절)라고 말합니다. “나의 가까운 친구”의 문자적인 뜻은 “나의 평안의 사람”으로 서로 가슴으로 안을 수 있고, 항상 서로 평안을 주고받고 최고의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내 떡을 나눠 먹었다”라는 말은 성찬식처럼 언약의 식사를 함께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면, 그들은 같은 교회를 다니며 서로 평안하라는 인사를 하고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발꿈치를 들었다”(9절)라는 것은 배반했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성경은 이 구절을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에 대한 예언(요 13:18)으로 받아들입니다. 유다는 새 언약을 맺는 식사 자리를 벗어나서 예수님을 팔아버림으로 그분에게 발꿈치를 들었습니다.

복이 있음이여

시편 1편은 “복이 있음이여”로 시작하고, 시편의 제1권을 마무리하는 시편 41편에도 “복이 있음이여”(1절)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그 중간에 고난과 환난과 배반의 이야기가 있지만 “복”된 말씀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립니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발꿈치를 든 유다를 여전히 “친구여”(마 26:50)라고 부르며 사랑으로 그 모든 것을 덮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오늘도 우리를 “친구여”라고 부르시며 우리의 모든 허물과 배반의 아픔을 당신의 사랑으로 덮어 주고자 하십니다.

기도) 배반의 아픔이 있을지라도 우리를 친구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으로 저희를 복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