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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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수 9:14).

여호와께 묻지 않고

아이성을 칠 때, 여호와 하나님께 묻지 않았던 이스라엘은 큰 고생을 했습니다. 당시는 여리고성에서의 승리에 도취되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습니다.

싸움에서 진 뒤에 그들은 하나님의 세세한 지시를 잘 따랐습니다. 성경의 사례들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자세하게 지시한 전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사흘거리에 있던 기브온 사람들은 꾀를 내어 사신들의 모습을 먼 곳에서 온 것처럼 꾸미고 이스라엘과 평화 조약을 체결하기를 원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좀 의심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챙겨온 곰팡이가 핀 떡과 찢어진 포도주 가죽 부대를 내보이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너무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실은 너무 어려운 일은 너무 어려워서 감히 하나님께 묻지 못하고, 너무 쉬운 일은 자신들이 다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는 합니다. 정말 죽을 것 같고 다른 무엇을 의지해도 소용없을 때나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고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평소에도 우리가 당신께 묻기를 바라십니다.

여호와께 물었더라면

만일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께 이 일을 물었더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요? 기브온 사람들의 거짓말이 들통이 나서 그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과연 살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거짓말했다고 죽이는 분이십니까? 기브온 사람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죄가 심각한 가나안 족속들을 전쟁으로 심판하는 모습만을 주로 보았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고육지책을 도모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런 속임수 정도가 아니고 원망, 불평, 반역, 우상숭배를 했는데도 사랑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께 물어보았더라면, 그리고 화친을 하러 온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설명했더라면, 기브온 사람들은 속인 것을 회개하고 더 나은 조건에서 화친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주님께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저를 위해, 제가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주님께 묻는 저희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