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8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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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창 25:1)

마흔이 되도록 늙은 애비를 돌보느라 결혼도 뒤로 미룬 사랑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늙은 아버지는 마음이 짠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 아들을 마침내 주 안에서 혼인시켰으니 이제 아브라함은 여한이 없습니다. 이제는 그저 하나님의 은혜 아래 날마다 주와 함께 동행하다가 어느 날 주께서 부르시면 아멘 하고 떠날 일만 남았을 뿐입니다. 백마흔 살 아브라함은 그후로 서른 다섯 해를 날마다 그렇게 주와 함께 동행을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운이 다하여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향년 백칠십오 세. “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창 25:7-8).
이야기가 여기서 이렇게 끝이 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아브라함은 오직 ‘믿음의 조상’으로만 우리 마음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그렇지를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창 25:1)다 하니 말입니다. 아들 이삭을 장가 보내고 나니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을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던 것일까요? 그래서 그 노년에 새 장가를 든 것일까요?
백마흔이 넘은 늙은 나이에 젊은 그두라에게 새 장가를 들었다 한들 아브라함을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아내와 사별한지 삼년도 더 지났으니 비난받아야 할 일은 전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왠지 좀 의아하고 곤혹스러워지는 걸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새 장가를 든 것은 그렇다고 치고,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다는 게 아무래도 좀 그렇습니다.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창 25:2). 후처 그두라에게서 아들 여섯을 낳았다 하는 이 아브라함이 누구던가요? 사십 여년전 마므레 상수리 숲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하던 그 아브라함이 아니던가요? 백 세일 때도 이미 제 몸이 죽은 것 같음을 너무나도 잘 았았으니, 하나님이 아들을 낳으리라 말씀하시자 엎드려 속으로 웃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백사십이 넘은 나이에 갑자기 회춘을 한 것일까요?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베푸셔서 믿음의 조상에게 특별한 건강을 주신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다면, 그두라를 통해 낳은 아브라함의 여섯 아들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섯 아들 중에 ‘미디안’이 있습니다. 후에 이스라엘과 철천지 원수가 되는 미디안 말입니다. 그 미디안이 은혜로 주신 축복일 리가 없으니 후처를 맞이하여 아들 여섯을 낳았다는 말씀이 여간 곤혹스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두라가 아무래도 후처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후처가 아니라면, ‘그두라’가 대체 누구일까요?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