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4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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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창24:64-65)

신부 리브가도 신랑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아버지 집을 떠 나온 날부터 리브가의 마음은 신랑을 사모함으로 날로 뜨거워져 갑니다. 그 신랑이 들을 배 회하다가 자기에게로 마주 오는 것을 마침내 보았으니, 리브가는 리브가대로 숨이 멎을 지경이다.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 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창 24:64).
신부 리브가는 즉시 낙타에서 내려 신랑 이삭을 맞습니다. 그리브가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합니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창 24:65). 리브가는 이삭을 대면할 때 너울로 자기의 얼굴을 가린 것입니다. 신랑을 대면하는 신부 리브가는 그렇게 너울로 제 얼굴을 가렸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 얼굴을 가릴까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 대체 무엇으로 우리를 가릴까요? 우리의 ‘믿음’으로 얼굴을 가릴까요? 우리의 ‘의’로 가릴까요? 우리의 ‘신실함’과 ‘경건함’으로 가릴까요? 우리의 ‘헌신’과 ‘열심’으로 가릴까요? 아니면 ‘천천의 숫양’과 ‘만만의 강물같은 기름’(미 6:6)으로 가릴까요?
모두가 다부질없는 짓입니다. 우리의 얼굴 곧 우리의 죄는 그 무엇으로도 가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하나님께 우리의 ‘맏아들’을 드린다 해도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가릴 수 없 고,‘내몸의 열매’를드린다해도 우리의 죄를 결코 가릴 수 없는 것입니다. “내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7)
하지만, 낙심은 아직 이릅니다.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얼굴을 넉넉히 가릴 너울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너울은 바로 ‘하나님의 의’(고후 5:21)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짜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의 얼굴을 가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 너울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으니, 우리는 얼마나 복이 있는 자인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모든 허물의 사함을 얻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써 우리의 모든 죄가 가리움을 받았으니,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자인지요?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 아멘.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