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27

“그 때에 이삭이 브엘라해로이에서 왔으니 그가 네게브 지역에 거주하였음이라.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 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창 24:62-63)

덥기는 해도 날은 맑고 푸르니 덕분에 요며칠 붉은 저녁 노을이 참으로 곱기만합니다. 그 붉은 저녁 노을 아래 빈들을 걸어 배회하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이삭입니다. 이삭이 들을 배회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도 벌써 삼년이 지났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없으니 그저 온 세상이 텅 빈 것만 같습니다. 곁을 지켜주는 듬직한 아들이 그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어줍니다. 그런데 이제 하루 하루가 다르다. 기운이 날로 쇠해져만 가니 마음이 초조하고 다급해집니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을 주 안에서 혼인을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늙은 아버지는 마음이 다급하기만 한 것입니다. 그 다급한 마음에 아브라함은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불러고 향에서 아들 이삭의 아내를 택하여 데려오라 명합니다. 아버지의 명을 받아 종이 떠나자 이삭은 그날부터 신부를 기다립니다. 종과 함께 돌아올 신부 생각에 장막에 앉아만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들을 배회하는 것입니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한낮이든 저녁이든 늦은 밤이든 ‘들에서 배회’(창 24:65)하며 신부를 손꼽아 기다리 는 것입니다.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창 24:63).
우리 주님도 우리를 그렇게 기다리십니다. 신랑 이삭이 신부를 기다리듯 신랑 되신 우리 주님도 신부된 우리를 손꼽아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묵상하는 듯 들을 배회하는데 드디어 신부가 옵니다. 멀리서 신부를 보고서는 이삭은 마음이 뛸 뜻이 기쁩니다. 하지만 점잖은 체 면에 차마 뛸 수는 없는지라 점잖은 걸음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깁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좀 다르십니다. 이삭처럼 들을 배회하며 기다리시되 점잖은 이삭이랑은 달리 우리로 말미암 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 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개 역개정). 마치 명절이라도 된 듯 기쁘게 더덩실더덩실 춤을 추십니다.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기뻐 반색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너를 구해 내신 용사 네 하느님 야훼께서 네 안에 계신다. 너를 보고 기뻐 반색하시리니 사랑도 새삼스러워라 명절이라도 된 듯 기 쁘게 더덩실 춤을 추시리라”(습 3:17, 공동번역). 그 주님이 오늘도 우릴 기다리십니다. 붉은 저녁 노을 아래 빈 들을 걸으시며 우릴 손꼽아 기다리십니다. 그러니, 오늘도 예수께로 갑니다. 오직 예수께로.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