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9일 월요일 예수바라기]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보았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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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창 26:28)

아들은 아버지를 믿지 못하여 그랄 땅에서 ‘그는 내 누이라’ 말하건만, 그런 아들을 아버지는 여전히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믿노라 하면서도 믿지 못하는 그에게 하늘 아버지는 도리어 복에 복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창 26:12-14).
아버지의 그 사랑이 넘어진 이삭을 일으켜 세웁니다. 이삭은 이제 하늘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 안에서 날마다 아버지를 닮고 또 닮아갑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 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를 닮은 이삭의 모습을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창 26:26) 와서 평화 조약 맺기를 청하며 하는 말이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창 26:28).
그 땅의 블레셋 사람들은 힘들여 농사해도 잘 해야 열 배의 수확을 얻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삭은 무려 백 배나 얻습니다. 창대하고 왕성하여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도 심히 많았습니다. 엄청난 거부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비벨렉이 본 것은 이삭의 엄청난 그 부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는 이 말은 이삭의 부를 보고하는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부가 아니라면 아비벨렉이 이삭에게서 본 것이 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늘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늘 아버지가 그 안에 함께 계시지 아니하면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을 아비멜렉이 이삭에게서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앞에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무엇을 보여 주고 있는가? 혹시 세상에 우리의 부와 지식과 학식과 지위를 보여 주고 있는가? 세상에 혹시 우리의 탁월한 교리와 예언 해석만을 보여 주고 있지는 않은가? 부전자전, 하늘 아버지를 닮은 이삭처럼 저도 세상에 제 안의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정말 좋겠습니다. 아비멜렉이 하늘 아버지를 닮은 이삭에게서 이삭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본 것처럼 제 주변의 세상도 저에게서 저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된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 간절한 소원으로 오늘도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전자전, 하늘 아버지를 닮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하늘 아버지를 분명히 보게 되기를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