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2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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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9:34, 10:20)

우리는 지금 애굽에 내린 열 재앙 곧 ‘여러 큰 심판’(출 7:4)을 통해 바로와 애굽과 이스라엘 자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보고 있습니다. 그 뜨거운 사랑에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이 좀 무겁기도 합니다.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더라”(출 10:20). 성경이 이르기를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출 9:34) 하니, 틀림없이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바로가 본래 마음이 완악하여 장자가 죽기까지 그토록 고집스레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출 10:20)다 하시니 말입니다. 그러니 바로가 얼마나 억울할까요? 일부러 바로를 완악하게 하시고서는 완악하네 강퍅하네 허물하시며 온갖 재앙을 쏟아 부으시니, 바로가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지요? 그렇게 심판을 하시면 우리라도 그 심판이 억울할 것입니다.

열 재앙이 바로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열 번의 ‘기회’라 했었는데,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니 아무래도 ‘기회’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랑’이 아닌 것만 같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으니, 이 말씀 앞에서 이렇게 착잡하고 곤혹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 바로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는데, 그 하나님이 사랑하는 바로의 마음을 일부러 완악하게 하셨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러실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사랑이십니다.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하시듯 애굽도 똑 같이 사랑하시며, 속이는 자 야곱을 사랑하시듯 에서도 또한 사랑하시고, 모세와 아론을 사랑하시듯 바로도 또한 그렇게 사랑하시니, 그러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도무지 이기지 못하시니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야곱 뿐 아니라 에서도, 모세 뿐 아니라 바로도, 그리고 이스라엘 뿐 아니라 애굽도 하나님의 아들 되게 택하십니다. 세상의 모두를 멸망이 아닌 구원을 받도록 창세 전에 예정하사 아들로 택하신 것입니다(엡 1:4-5). 창세 전의 그 택하심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은 골고다 언덕을 오르십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골고다 언덕 위 저주의 그 나무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출 10:20)다 하신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