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그러나 바로가…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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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로가 숨을 쉴 수 있게 됨을 보았을 때에 그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더라”(출 8:15)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출 7:13). 이 슬픈 이야기는 아홉 번의 재앙이 내려질 때마다 그대로 똑같이 반복됩니다. 그렇게 거절할 걸 모두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왜 그 혹독한 재앙 곧 ‘큰 심판’을 애굽에 내리신 걸까요?

그 답의 실마리가 이 말씀에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재앙이 다 끝나고 난 뒤인 출애굽기 12장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출 12:37-38).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애굽을 떠나는데, 그 때 출애굽을 하는 사람들 중에 ‘수많은 잡족’이 함께 있습니다. 말그대로 ‘잡족’입니다. 택하신 ‘언약 백성’이 아닌 ‘이방인’인 것입니다.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인 그들이 어떻게 출애굽의 대열에 합류하게 됐을까요? 그건 바로 열 재앙 때문입니다. 열 재앙 곧 ‘큰 심판’을 통해 이방인인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돌이킨 그 이방인 잡족들에게는 ‘여러 큰 심판’은 재앙이 아닌 축복인 셈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열 재앙 곧 ‘여러 큰 심판’을 내리신 이유가 아닐까요? 하나님은 바로도 사랑하십니다. 바로를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니 그 사랑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니 바로는 완강하게 거절을 합니다. 그런 바로를 보시고 하나님이 얼마나 속이 타셨을까요? ‘내 백성 애굽’(사 19:25)이 멸망으로 내달리고만 있으니 하나님은 얼마나 애간장이 녹으셨을까요? 바로는 완강하게 거절하며 그렇게 멸망으로만 내달리고 있으나 하나님은 그 바로를 결코 포기를 하실 수가 없으시니, 무려 열 번 씩이나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하나님은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열 재앙입니다. 그러니 열 재앙 곧 ‘여러 큰 심판’은 완악한 바로를 향해 흘리시는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멸망으로 내달리는 ‘내 백성 애굽’을 향해 가슴치며 부르짖는 하나님의 애타는 호소입니다. 사랑하는 바로와 ‘내 백성 애굽’을 위해 가슴치며 우시는 하나님의 눈물이요 하나님의 호소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오늘 우릴 향해서도 흘리십니다. 바로 같고 애굽 같은 오늘 우릴 향해서도 애타게 부르고 또 부르시는 것입니다. 아, 사랑이시여.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