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금요일 예수바라기] 소망의 이유를 잘 대답하는 사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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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5)

고난은 우리가 시험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연단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고난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분을 사랑하게 합니다(1장). 고난은 갓난아기 같은 우리를 자기 몫을 제대로 하는 어엿한 거룩한 제사장이 되게 합니다(2장).

소망의 이유를 누가 물을까?

베드로는 1-6절까지 긴 분량을 할애하여 아내들에게 “이와 같이” 자기 남편을 순종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요지는 아내들에게 남편의 말을 잘 들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 3:1). 지금 베드로는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하는 일을 말합니다. 잔소리하지 말고 바른 행실을 통해 남편을 구원으로 이끌라고 말합니다.

여기의 행실은 그저 착한 행실일까요? 그 답은 “이와 같이”에 있습니다. 1절의 이와 같이는 그 앞의 베드로전서 2장 18-25절의 내용을 받습니다. “까다로운 주인”(벧전 2:18)과 “까탈스러운 배우자”를 비교해 보십시오. 가까이로는 22-25절을 받습니다. 그리스도는 욕을 당해도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당해도 위협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길을 잃은 양에서 내 영혼의 목자에게 돌아왔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배우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욕을 해도 욕하지 않고 곤란한 일을 내게 행해도 협박하지 않고 배우자와 집의 문제들을 책임진다고 하면 비약일까요? 그럴 때 상대방은 우리에게 우리 속에 있는 산 소망(벧전 1:3)의 이유를 물어봅니다. 그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항상 준비된 소망의 이유를 온유한 마음으로 혹시 실수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가릴까 두려워하며 전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원리를 3장 8절 이하에서 배우자를 넘어 우리가 만나는 여러 사람에게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벧전 3:14)이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성취됩니다.

우리가 오늘 받는 고난의 시간은 누구에게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시간입니다. 저희로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만나는 사람에게 산 소망의 이유를 삶과 말로 잘 대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