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3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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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출 4:24)

‘설상가상’이요 ‘엎친데 덮친다’더니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 것일까요? 어젠 모세에게 노하시더니 오늘은 아예 죽이려 하시니 말입니다. 모세는 지금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지팡이’(출 4:20)를 손에 들고 애굽을 향해 가는 길인데, 그 모세를 보호하시기는커녕 도리어 갑자기 죽이려 하시다니, 이게 대체 어찌된 영문인 것일까요?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아마도 ‘할례’랑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그의 아들에게 급히 할례를 행하니 여호와께서 그제서야 모세를 놓아 주시는 걸 보면 틀림없이 ‘할례’(출 4:26)랑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모세에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는 없으나 모세가 작은 아들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이 명하신 언약 의식입니다. ‘살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언약’(창 17:13), 그것이 바로 할례였던 것입니다. 그것을 모세는 누구보다 잘 알텐데, 그런데 왜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을까요? 말씀을 보면, 아마도 아내 십보라의 완강한 반대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미디안 여인입니다. 이방 여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십보라에게는 난지 팔일 밖에 되지 않은 아기의 포피를 칼로 잘라내는 할례라고 하는 게 야만적인 의식으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반대를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굳게 결심하고 애굽으로 가는데 이제 와서 그 모세를 죽이려 하시다니, 대체 무슨 까닭인 것일까요? 모세는 지금 언약을 이야기하러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모세 자신부터 언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내 십보라의 반대를 핑계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알고서도 집 안의 평화를 위한다는 핑계로 반대와 슬그머니 타협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 앞에 서서 고할 때 그때도 모세는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입니다. 애굽에서 백성들을 인도해 낸 후라고 반대가 없을까요? 언약의 땅으로 가는 길 내내 맹렬한 반대와 격렬한 저항에 부딪힐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애굽에 이르기 전 알고서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모세, 알면서도 온전한 순종을 하지 않는 모세에게 엄중한 교훈을 가르치려 하시는 게 아닐까요?

모세에게나 오늘 우리에게나 필요한 것은 온전한 순종이요 완전한 신뢰이며 전적인 의뢰입니다. 반대와 저항에 슬그머니 타협을 하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온전히 순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온 삶으로 여호와를 순종해야 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