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목요일 예수바라기] 예수님 안에 있는 충만한 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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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 2:5-7)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언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 즉 하나님과 동등이시라는 것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과 동등이셨으나 자기를 낮추시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완전한 하나님을 뵙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나님의 영광 자체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래 영광을 감추고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고대 세계 우상의 신전들은 화려하고 웅장했습니다. 형형색색 장식물의 아름다움과 감미로운 음악은 우상 숭배자들의 귀와 눈을 현혹하였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그 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성소 역시 멋도 없는 거무튀튀한 색깔의 지붕에, 색채가 없는 흰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마칠 무렵에 모압 여인들이 자기들의 축제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청했을 때, 그들은 휘황찬란한 볼거리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라반은 아브라함의 종이 왔을 때 그를 극진히 환대했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우물로 달려가 그 사람에게 이르러 그의 누이의 코걸이와 그 손의 손목 고리를 보고 … 이르되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여 들어오소서”(창 24:29-31)라며 극진하게 대접했던 라반은 야곱이 혈혈단신으로 그에게 갔을 때 그를 무시하고 그의 약점을 이용해 노동력을 착취하여 부를 쌓고 야곱에게는 인색했지요.
우리의 마음은 보이는 것에 쉽게 따라갑니다. 학벌, 권력, 쾌락, 재미, 오락, 무한한 자유(방종)에 대한 약속 등이 굉장한 것을 줄 것처럼 보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기 때문에 압도되고 이끌려 가게 됩니다. 우상숭배는 오늘날도 대단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요? 그러나 그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인가요?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욥 20:5-7). 초라한 예수의 행색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마음을 낮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낮출수록 그 영광은 더 크게 보이지요. 그 일을 위해 기도합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