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행 19:21-41 / 28장 수고와 시련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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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기준이 없으면 흐름에 휩쓸릴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진리를 전했고, 그 진리를 들은 이들이 우상을 버렸습니다.

분명한 기준이 없으면 흐름에 휩쓸릴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진리를 전했고, 그 진리를 들은 이들이 우상을 버렸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임과 동시에 그렇게 진행되어야 마땅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상이 버려지면서 우상과 신전 모형을 만들던 사람들의 돈벌이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우상만들던 자들이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도가 드러나면 안되니까 교묘하게 말을 돌려 마치 본인은 아데미 여신을 진실된 마음으로 믿고 있으며, 바울이 말하는 이상한 논리 때문에 여신의 위신이 온 세계에서 땅에 떨어질까 걱정된다고 표현합니다. 더 놀라운건 이런 말에 사람들이 움직이고 선동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32절에 나온 표현입니다.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더라” 그들은 자신들이 왜 모였는지를 몰랐습니다. 그저 다들 모이라니까 모인 것이고, 모인자들이 소리 지르니까 같이 소리 지르는 것이고, 반대 하라니까 반대하는 것입니다. 무서운 군중심리입니다.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자신이 가진 신앙에 대해 확실한 기준과 근거가 없으면 그저 휩쓸려 다닐 뿐입니다. 교회의 프로그램에 휩쓸리고, 대중의 논리에 휩쓸리고, 사람들의 취향에 휩쓸립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말씀이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하며 듣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찬양에 같이 열광하고는 끝입니다. 그렇게 물 위에 떠있는 나뭇가지처럼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시련과 유혹이 닥칠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련과 유혹은 단순히 강하고 혹독한 것만은 아닙니니다. 달콤하고 매력적인 것도 시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권면합니다. 쉽고 편한 것에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매일 말씀을 열고 묵상과 연구를 할 때 이정도면 된다라고 만족하지 않아야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하고 싶은 일들이 많겠지만 그래서 말씀을 펼 시간이 부족하겠지만 과감이 떨쳐버리고, 간절한 기도로 말씀을 편다면 우리가 꼭 깨달아야할 말씀을 우리 눈에 보여주시고 마음에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분명한 기준을 갖게 되는 방법일 것입니다.

* 컨텐츠 제공 : 월간 예수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