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수요일 예수바라기]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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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벧후 3:4).

사랑하는 자들, 조롱하는 자들

베드로는 예수님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렇다면 양무리를 치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 기억이 녹아있는 말이 “사랑하는 자들아”(벧후 3:1, 8, 14, 17)입니다. 조롱하는 자들은 주의 강림의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고 우리를 조롱합니다. 자신도 믿어 보았지만, 말도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창조 때와 변함이 없고 재림은 없다고 말합니다(3, 4절). 오시려면 벌써 왔지 아직까지 오지 않으실 이유가 없다고 말합니다.

주의 약속이 더딘 이유

베드로는 이렇게 더디 오시는 이유가 사랑 때문에 그러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를 오래 참으사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우리의 구원이 되기를 원하십니다(9, 15절).

그렇다고 무작정 오심이 지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약속은 확실히 이루어집니다. 우리 사는 세상은 불에 타서 풀어져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7, 11, 12절).

그렇기에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11절). 불에 타서 사라지지 않을 것들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주님 오시는 날까지 자라가는 일이 필요합니다. 은혜와 지식이 함께 자라가는 것이 오늘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18절).

우리를 조롱하는 자들의 소리에 개의치 말게 하소서. 우리를 사랑하는 음성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더디 오신다는 생각은 조금이라도 하지 말게 하소서. 오늘을 회개의 날로, 약속을 사모하는 날로 삼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