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일요일 예수바라기]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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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벧전 5:1).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자신도 함께 장로 된 자이고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을 받는 장로들에게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목격한 사람일 뿐 아니라 지금 그 고난에 참여하고 있으며 영광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알기에 우리와 같이 고난을 당하는 형제들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벧전 5:9). 그 둘을 하나로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에게 주님이 맡겨주신 양무리를 돌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라

그리스도의 고난을 아는 지도자는 억지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합니다. 더러운 이익을 바라지도 않습니다(벧전 5:2). 당시 로마의 박해를 받는 상황에서 그다지 많은 금전적인 이익을 얻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회 현장에서 자기만족, 자기 성취를 위해 사역을 하는 많은 지도자를 만납니다. 자기 성취형 지도자는 주장하는 자세로 양 무리를 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드러나며 본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적인 모습은 그리스도의 고난에서는 나올 수 없는 모습입니다. 자기중심적인 모습의 반대는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행하는 겸손한 모습입니다. 자신의 염려를 주게 맡김으로 주님이 드러나는 모습입니다(3-7절).

우리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대적 마귀 사탄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양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8절). 목자장과 함께 있고 양 무리와 함께 있는 양은 고난은 당해도 버림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움을 통해 연단을 받아 영원한 영광에는 들어가도(10절) 시험을 받을 때 사탄의 입속에 들어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양을 돌보는 자들입니다. 영혼들은 나의 양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입니다. 청지기로서 돌보기에 자기만족을 위한 주장하는 태도를 보일 수 없으며 하나님의 양이므로 한 영혼이라도 사탄의 입에 삼키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주님이 그들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부족함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공급하시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이 간절합니다. 오늘 이 아침 다시 그리스도의 고난을 제 가슴에 새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