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안식일 예수바라기] 고난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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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베드로전서에서 고난이 주는 축복의 영역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말씀 묵상을 전하며 아쉬운 것은 한절 한절을 나누지 못함입니다.

육체의 고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벧전 4:1).

예수님은 육체의 고난을 받아 온 세상이 죄를 그치게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에게 주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오늘 현실에서 당하는 육체의 고난과 아픔은 우리가 하는 선한 싸움에서 갑옷이 됩니다. 고난 속에서 만나는 주님의 마음과 역사가 우리의 갑옷이 될 때 우리는 죄를 그칩니다. 이제 정욕과 욕심이 아니라, 세상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육체의 남은 때 즉 이 세상에서 보낼 시간을 살아가게 됩니다(벧전 4:2, 3).

뜨겁게 서로 사랑하고 서로 봉사하고

우리는 고난을 당하며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고난의 종들은 생명의 시여자이신 창조주를 의지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벧전 4:19).

그들은 함께 고난받으며 서로를 뜨겁게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의 죄를 덮었듯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며 서로의 연약함과 “허다한” 죄를 용서합니다. 허다하다는 말로 보아 이렇게 죄를 덮는 일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8절).

사랑은 말로만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가 되어 서로 봉사하고 서로 섬깁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서로를 섬깁니다. 이럴 때 우리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0, 11절).

우리가 복음서를 살펴볼 때 십자가가 영광이었습니다. 고난이 영광이었습니다. 이제 그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이 말씀을 주제로 하는 청지기 부흥회 때가 아닌 오늘 우리의 아픔 가운데 이 일이 일어납니다.

오늘 육체의 고난을 받는 모든 성도에게 죄가 그치고 사랑이 뜨거워지고 서로 청지기로 섬기고 주의 영광이 임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