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1일 목요일 장년 교과] 지금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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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가는 보편적인 인류의 고난과 기쁨 중에서도 고난 중에 있는 이를 잊지 않게 함으로 예수님처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섬겨야 함을 알려주는 시편이다.

시편 60:1~5을 읽어 보라. 이 시편은 어떤 경우에 합당한 기도인가? 인생의 기쁜 시간에도 우리는 이 애가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겠는가?

애가의 시편은 일반적으로 육체적이거나 심리적 혹은 영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의 기도라고 이해된다. 물론 세 가지 모두에 해당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거나 내가 인생의 아주 좋은 형편에 있을 때라고 해도 내가 이 시편과 관계없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때때로 시편의 말씀이 예배자의 현재의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오히려 그런 면 때문에 애가의 시편은 오히려 고난과 관계없는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다.
첫째, 시편은 고난이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며 의인과 악인 모두에게 일어난다는 것을 더 잘 인식하게 해준다. 애가의 시편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환난의 때에 힘과 해결책을 주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다. “주께서 땅을 떨게 하셨나이다”(시 60:2)라고 말하는 시편 60편에서 기자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궁극적인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둘째, 시편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 우리의 행복과 감사를 표현할 때, 특별히 대중 앞에서라면 더욱 우리는 불우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지만, 멀지 않은 곳에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겠는가? 애가의 시편을 기도하는 것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잊지 않는 데 도움이 된다. 시편은 우리에게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예수님처럼 고통받는 이들을 섬기려는 열망을 주어야 한다.
“이 세상은 하나의 광대한 환자 수용소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병자를 고치시고 사탄의 포로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시려고 오셨다… 그는 당신의 치유의 능력을 받으러 온 자들을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도움을 간청하는 자들이

(이어서) 저희들 스스로가 그 질병을 초래하였음을 아셨으나 저들의 병을 고쳐 주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서 치유의 능력이 불쌍한 영혼들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들은 자신의 죄를 깨달았으며 많은 사람이 저희 육체적 질병과 함께 영적인 질병도 고침을 받았다. 복음의 능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이와 꼭 같은 결과를 보지 못하는가”(구호봉사, 24, 25)?

<교훈> 애가는 보편적인 인류의 고난과 기쁨 중에서도 고난 중에 있는 이를 잊지 않게 함으로 예수님처럼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섬겨야 함을 알려주는 시편이다.

<묵상>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기도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적용> 기도도 필요하지만 지금 어떤 사람에게 직접적인 돌봄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영감의 교훈>
고난과 겸비를 통해서만 하늘을 얻을 수 있음 ~ “우리의 구속주께서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구원을 두셨다. 이 세상에서 그분은 존경을 받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도 않으셨는데, 그 이유는 그분의 놀라운 겸손과 굴욕을 통하여 사람을 높이셔서 그분의 궁정에서 하늘의 명예와 불멸의 기쁨을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오직 투쟁, 겸비와 고생을 통해서만 하늘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타락한 인간이 불평할 수 있겠는가?”(증언 보감 1권, 407).

<기도> 고난 가운데 있는 이들을 돌보신 예수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기억하며 감사합니다. 먼저 손 내밀지 못하고 사랑을 베풀지 못한 염치없는 종이지만 사랑으로 품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본받아 실천하게 도와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