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코로나19 시대 이후의 환경변화와 대처

331

김성익 교수는 “이제 재림교회의 사명에 초점 맞추는 지역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코로나 시대, 재림신앙 다시 이야기하다 시리즈 ⑤

김성익 교수(삼육대 신학과)

■ 코로나19가 사회와 교회에 미치는 영향
코로나19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보다 더한 일도 있었고, 계속적으로 이런 일이 반복될 것이다. 사회의 변화가 이런 큰 사건으로 갑자기 변화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마치 컵에 담긴 물이 넘칠 때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차올라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넘치는 것과 같다. 코로나19와 앞으로 계속 일어나는 유사한 재림의 징조 사건들은 그 자체가 결정적 단초가 되는 것은 아니나 세상 변화의 조류에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영향력과 병합하여 재림의 지계표의 역할을 하면서 종말 사건의 임계점으로 이끌어가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미래에 대한 여러 예측은 현재 우리의 제한된 지식과 이해, 그리고 이미 일어난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 해서 분석하는 것이기에 생각지 못한 요소들에 의해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자세로 지혜롭게 살펴본다면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방향성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을 제공해 줄 때가 많다.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해 몇 가지 단상을 나누고자 한다.

(1)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사회의 출현  
미국의 유명한 <파이낸셜 타임즈>에 이스라엘 석학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박사의 코로나19 이후의 세계에 대한 기고문이 실려 눈길을 끌었다. 그는 “평소에는 수년이 걸린 수 있는 결정이 몇 시간 안에 내려질 것이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라면서 코로나19를 퇴치하기 위한 각종 정책이 우리를 전혀 다른 세상을 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각 국가들이 국민의 자유권을 제한하고 질병보유자를 신속히 선별해 분리시키는 정책이 장기화되고 반복되는 재난의 시대에 고착화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그의 논지의 핵심이었다. 중국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인공지능 기술과 중국 전역에 깔아 놓은 씨씨티브이(CCTV)로 알려진 폐쇄회로 텔레비전 카메라, 그리고 안면인식 안경을 통해 범죄자를 체포하고 있고, 요주의 인물을 감시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시스템은 재림교회의 중국 선교에 큰 장애로 작동한지 오래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그런 사회적 감시체계가 더욱 강화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모든 국가의 문제로 확산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하라리 박사는 “상황이 악화되면 현재 확진자와 자가 격리자의 동선을 감시하는 앱의 사용을 넘어서서, 피부 속에 칩으로 심겨져 체온이 일정 정도 올라서면 정부 보건당국에 경고음이 울리게 되는 시스템의 도입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염려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공익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대중의 큰 저항 없이 받아들여졌지만 이런 일이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일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많은 예방의학 학자들이 예측하듯이 이런 일이 장기간 반복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일들 속에 우리는 예언적인 관점에서 종교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적인 법령의 출현을 상기하게 된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코로나 19 사태이지만 이미 4차 산업혁명의 요소들이 뒷받침한 것이다. 인공지능, 사물 인터넷, 빅데이터를 통한 인간 행동의 분석과 예측을 사업에 도입하는 비즈니스의 활황 등이 우리의 삶을 이미 혁명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이미 인터넷뉴스를 보다가 며칠 전 검색한 상품과 유사한 제품 광고가 팝업으로 뜨는 것을 보면서 누군가 우리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오래 전 전혀 의식하지 못한 곳에서 과속하는 장면이 찍힌 벌금 고지서가 날라 온 적이 있다. 삼육대학교도 CCTV 를 확대 설치한 후에 도난 사고가 거의 사라졌다. 외국에서 귀국한 자가격리자를 앱을 통해 동선을 감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누군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우리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일요일 휴업령에 대한 재림교회의 관심사는 세속 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불가능하게 보였다. 과거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이나 유럽에서 일요일 영업하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미국의 경우처럼 지금은 사문화되었으나 19세기까지도 일요일에 스포츠, 상업 등 특정한 활동을 금하는 청교도적 법률(Blue Law)이 시행된 영향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세속주의와 관광산업의 발전으로 전 세계적으로 24시 영업하는 영업장이 확대되고 있고, 유럽조차 유명 관광지에서는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는 곳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미국도 보수적인 주에서도 일요일에 주류 판매 정도만 제한하는 선에서 쇼핑몰의 개장을 허용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전 세계적인 코라나 19 사태를 바라보면서 원한다면 과거 청교도적 법률과 같은 법령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코로나19 사태는 이 같은 방향으로 전환하는 가능성과 속도를 매우 강화시켰다.

성경에도 이런 일이 이미 일어났었다. 다니엘을 시기하여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들은 그가 참 하나님을 하루에 3번 기도하는 것 이외에는 흠잡을 것이 없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그들은 종교법을 제정하여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진다. 일요일 휴업령도 마찬가지 과정을 거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가 한 모든 한 일이 다 들어날 수 있는 사회로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고 두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시기의 도래를 앞두고 재림 신자의 삶은 다르다는 것을 증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겠다.

먼저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 숨기지 못한 것이라는 사상을 우리 일상에 적용하는 경건의 연습에 매진 할 때이다. 누가 들여다봐도 신앙 이외에는 문제될 것이 없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재림신앙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불가피하게 우리가 예견하는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태가 와도 담담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법령이 내려지면 그날을 선교하는 날로 삼으라는 제안이 예언의 신 곳곳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교적인 관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2) 비대면의 확대
학교와 학원의 폐쇄 파동으로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교육이 확산되고, 재택근무나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고 상담하고 진료하는 등의 비대면 비즈니스의 확대가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런 변화가 교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게 된 교회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먼저 교회 행정이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올 6월로 예정된 세계대총회의 정기총회가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 속에 모든 교단 행정 회의가 화상으로 전환되고 있다. 필자도 대총회 성서연구소 위원으로 매년 2회 회의에 참여하는데, 지닌 4월 20-21일 회의는 줌(zoom)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화상의 회의로 진행되었다. 49명의 전 세계 교회지도자들과 신학학자들이 화상으로 교회가 출간한 서적들의 원고를 검증하는 토의를 진행했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9년간 성서연구소 위원회에 보통 4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화상으로 하니 거의 모든 위원들이 참석했다는 점이다.

첫날 아침 개회 설교를 대총회장 테드 윌슨 목사님이 하셨는데 먼저 현 상황이 교회 행정에 미친 영향을 언급하셨다. 늘 경제 불황에 교회재정 악화가 대략 1분기 이후에 나타나는데 예견되는 교회 재정악화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큰 염려를 표명했다. 그런 후 대총회의 모든 회의가 화상회의로 진행되면서 효율성과 편리성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했다. 특히 경제 위기와 연관하여 교회지도자들은 세계재림교회가 성장하면서 회의를 위해 지불하던 막대한 비용을 감소시킬 대안을 화상회의를 통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교회 행정을 위해 막대한 여행비용을 발생시키는 대면회의를 대신하여 비대면 행정회의가 더욱 확산될 것이라 말했다. 이미 한국연합회 행정위원회뿐만 아니라 지역교회까지 직원회를 화상회의로 진행되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행정의 비대면의 확대와 더불어 영성 혹은 경건을 훈련하는 방식이 전통적인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미 젊은 세대에게는 일어나고 있는 변화이다. 예를 들면 장년들 중에는 모여서 말씀 묵상을 나눠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미 10여 년 전부터 우리 교회 안에서도 청년들이 매일 늦은 밤 정한 시간에 인터넷으로 말씀 묵상을 나누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이미 미주 재림교회 성도들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전역에서 스카이프(skype)라는 프로그램으로 연결하여 함께 새벽기도회를 각 가정에서 진행하고 있다. 최근 재림마을 소식에도 재림청년들이 줌(zoom)이라는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캠퍼스 모임을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문제는 영상매체 보급이 활성화 되자 많은 지성적인 교인들이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의 설교보다는 자신이 선호하는 설교자의 인터넷 설교를 통해 영적인 만족을 구하고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타 교파 특정 목회자의 설교가 은혜롭다고 말하고 카톡 등에 전파하는 교인들도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경향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이는 모든 설교자들과 교회에 큰 도전이고 숙제이다.

인터넷과 휴대폰의 발전 과정에 관심을 기우리지 않은 세대들이 있었다. 컴맹, 혹은 휴대폰을 전화기 용도로만 사용하는 분들이 많다. 필자의 부친께서는 많은 예언의 신 독서를 통해 주제별로 제목을 달아 인용구 카드를 정리하는 일을 평생 동안 해오셨다. 컴퓨터에 단어 한 개만 입력하면 모든 예언의 신 자료가 나오는 것을 보고 경이로워하면서 본인이 평생 한 작업에 대해 허탈해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문제는 새로운 변화를 거부한 세대는 신앙 성장 활동과 선교를 위해 문명의 이기의 장점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가속화되는 비대면 사회에 대해 교회는 신속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설교 뿐 아니라 제자훈련, 전도 훈련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인터넷 방송의 활성화와 소설 네트워크로 선교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과정을 개설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가족들과 함께 안식일 오후에 재림방송을 통해 과거의 음악공연을 즐기면서 느낀 감동은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감동적인 콘텐츠를 확대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장년층을 위해서는 인터넷 구매를 비롯해서 생업과 생활에 4차 산업 매체를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과정을 제공할 수 있으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비대면 사회의 확대가 많은 한국의 재림성도들의 생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인데 별도의 항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마치 종교개혁이 인쇄기의 발명을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 출간하여 대중에게 보급하는 일에 활용함으로 개혁의 동력을 얻었듯이 이 시대의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복음 전파의 통로로 삼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3) 경제적인 위기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확산은 전 세계적으로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키고 있다. 특별히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은 수많은 자영업의 몰락을 가져오고, 정규직은 급감하고 일용직이나 비정규직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전염병의 신속한 확산은 경제위기를 가져올 것이다.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종의 사람들이 받는 타격이 커질 것이다.

삼육대학교에서도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지 못해 생계자체에 위협을 받는 한국 학생들이 있고, 외국인 학생 상당수는 심각한 처지에 몰렸다. 지역교회에서도 자영업을 하는 성도들의 상황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웃 중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필자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 못해 삶의 대책이 없어 보이는 몇 명의 외국인 학생과 한국 학생들에게 삼육두유를 공급하고 생계 장학금을 주선해주기는 했지만 여전히 어려운 학생이 많다.  

2001년 이후 여러 번 국가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태인 디폴트를 경험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었다. 직장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만들어 직장을 잃고 구직하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는 장면이었다. 뉴스에서 한 실업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 도시락이 하루의 유일한 끼니라고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짠했었다. 이런 일이 더 많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것이다.

재림성도 가운데 어려운 경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인 위기에 처하는 재림성도를 돕는 전 교회적인 노력을 강구해야 할 때이다. 재정위기에 긴축도 필요하지만 성도들이 십일조를 더 많이 낼 수 있도록 생업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역교회가 지역사회의 어려움을 살피는 헌신도 고민해야 한다. 미국 재림교회의 통계를 보니 과거에는 빈민층 구호봉사가 주력활동이었으니 최근에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지역교회 봉사사업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갑작스런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들의 긴박한 필요를 채워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예를 들면 갑자기 직장을 잃은 사람에게 직장을 얻을 때까지 가정의 생계를 지원하고 좋은 직장을 알아봐 주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는 교인들은 자신의 주변에 생겨나는 일자리 정보에 민감한 것은 물론이다.

부산에서 목회할 때 일이다. 매달 방문하는 고아원이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곳이었다. 절대 사진을 찍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하고 매달 필요한 것을 챙겨 방문을 했다. 어느 겨울의 초입에 얼마간의 자금을 모금해서 성도들과 방문했다. 몸이 불편하신 원장님 방에 들어가 기도해드리고 이불 밑에 청년들이 성심껏 모금하여 준비한 성의라고 돈 봉투를 밀어 넣고 나왔다. 청년들이 원생들 머리도 감기고 한쪽에서는 게임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원장님 따님이 다가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지난 밤 갑작스런 한파로 보일러가 터졌는데 비용이 너무 커서 난감했단다. 살며시 놓고 간 봉투를 열어보니 금액이 수리비 견적과 같은 액수였단다. 오늘 밤 보일러를 틀 수 있게 되었다며 너무 감사해 하는 것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성도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를 듣던 한 초신자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재림교인이 된 것이 자랑스럽고 정말 잘한 선택 같아요.”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가 진짜 진리교회이다.

  
■ 코로나19 시대 이후, 재림신자는 어떻게 살 것인가?
(1) 이제는 두려움으로 신앙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 개인의 삶 속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는 2000년 9월 11일 미국에서 일어난 이슬람 테러사건이다. 미국에 박사과정을 준비하면서 최종 서류문제로 앤드류스대학교 신학대학원의 학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가 한참 만에 전화를 받은 후, 흥분한 음성으로 지금 미국에 난리가 나서 수업을 중단하고 CNN 방송을 보고 있다며 전화를 급하게 끊어버렸다.

텔레비전을 켜서 미국 CNN 방송을 켜자마자 미국 뉴욕의 쌍둥이 빌딩에 테러리스트들이 탄 비행기가 두 번째 충돌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러 명의 신실한 재림성도들도 그 빌딩 안에서 함께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많은 재림성도는 특히 미국 재림성도들은 이 사건이 주는 종말적 함의에 집중했고, 많은 기사와 책자들이 쏟아졌다.

그 당시 많은 미국인, 특히 뉴욕에서 세속적으로 살던 수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들어 교회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대총회에서도 북미지회와 함께 뉴욕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슬로건으로 대대적인 복음전도회를 개최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다시 대부분의 교회가 텅텅 비었고, 뉴욕시는 과거의 세속적인 도시로 되돌아갔다. 이는 복음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단순히 두려움으로 하는 신앙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의 한 예증이다.

진리의 백성인 재림성도도 마찬가지이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것은 그 뒤에 나타나는 “영원한 복음”이란 단어를 통해 이해해야 한다. 이는 공포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와 주권에 대한 경외감이고, 사랑의 하나님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벅찬 감사의 감정을 말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의 찬양에 주목해 보라. 그들이 자신의 머리의 면류관을 하나님 보좌 앞에 내려놓는 것은 어린양의 십자가 희생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경외심의 고백이며, 구원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인 감격과 감사의 행위이다. 종말시대에 재림성도의 사명도 사단이 공격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옹호이다.

(2) 이제는 종말 사건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종말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섭리와 주권에 초점을 맞추는 게 참된 종말 신앙이다. 사건에 주목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쉽다.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의 주권에 주목하면 우리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높으신 주권적 역사라는 관점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묵상하는 자세로 징조를 바라볼 수 있다.

스데반도 그에게 날아오는 돌이 아니라 하늘의 예수님을 바라볼 때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니 그를 죽이려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겨 용서해달라는 감동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그를 죽이자고 선동한 자가 그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고 예수님 만나 회심하여 그의 자리를 대신 채웠는데 바로 선교사 사도 바울이다.  

사실 성경의 묵시문학과 종말과 연관된 예언의 목적은 종말 시대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베드로 사도가 권면한 것처럼 예언의 확신함은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한다(베드로후서 1장 19절). 이미 성취된 예언들에 기초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을 연구하면 주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이를 통해 현재의 고난을 이기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된다.

예언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은 현재 상황이 아무리 암담해도 우리가 처한 깜깜한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을 주목하게 만들어준다. 마침내 우리의 모든 문제의 궁극적 해결책인 “샛별”되신 예수님의 오심을 소망하게 만들어 준다. 참된 종말신앙은 종말 사건 속에 늘 우리 삶의 빛이신 하나님을 추구하게 만들어 준다.  
  
(3) 이제는 복음에 사로잡힌 ‘전염성’ 있는 재림교인이 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전염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사도행전 24장 5절).

바울이 왜 이런 삶을 살았는가? 그가 “밤낮으로 일하면서 …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는데(살전 2:9),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자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고린도전서 9장 16절) 고백한 것처럼 복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특정 종교 집단이 말도 안 되는 이설로 세상을 현혹하는 열정을 보고 우리는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시대의 징조를 읽는 백성인 우리는 종말 시대의 징조를 볼 때마다 그들 이상으로 종말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이 시대에 해야 할 사명에 집중해야 한다.

앞서 소개한 4월 20일 대총회 성서연구소 위원회 설교에서 테드 윌슨 대총회장은 비대면이 강화되는 시기에 어떻게 선교할 것인지에 대해 말씀하셨다. 한 지역에서 인터넷 성서연구회를 개최했는데 거의 4만 명이 접속했다는 보고를 하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사람들에게 소설네트워킹으로 접근하여 재림 기별을 전하자고 호소하셨다.    

예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누가복음 12장 56절)고 말씀하셨다. 이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면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필자도 그처럼 외식하는 자임을 겸손히 고백한다. 종말의 기별을 들을 때 두려움으로 개인의 구원을 위한 준비에 관심을 집중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재림신자가 된다는 것은 재림의 징조를 볼 때마다 전개될 종말 사건을 넘어서서 재림성도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인 선교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교리적 정체성에만 만족하는 재림교인은 외식하는 자이고, 종말 시대의 바리새인이다. 우리의 모든 교리는 선교적이어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복음”으로 전해져야한다. 다시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 앞에 회개하고 종말시대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후에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전하라는 사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전염성 있다는 것은 개인과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이다.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변화의 주역이 되어 사회를 선한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재림교회가 사회에서 산소 같은 교회, 사회에게 믿음을 주는 교회, 사람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교회라는 사회적 평가를 통하여 좋은 교회라는 좋은 입소문이 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주변의 사람들이 “교회가려면 꼭 가야하는 교회가 재림교회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종말 시대에 세상에서 말과 행동으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여러분 이외에는 하나님은 다른 대안이 없으시다.
  
(4) 이제 재림교회 사명에 초점을 맞추는 지역교회를 세워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역대상 12장 32절에 나오는 잇사갈 자손은 “시세(the times)를 안다”고 했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지도자가 200명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깨달은 대로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였다. 재림교회 목사, 장로, 집사는 시대의 징조를 읽고 우리에게 주어진 종말 사명에 집중하도록 교회를 이끌어야 한다.

종말 사명 성취를 위해 모든 지역교회에서는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훈련과정이 제공돼야 한다. 엘렌 화잇 여사는 진리교회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훈련하며 애쓰는 교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의 세우신 목적에 따라 순종하는 교회가 참 하나님의 교회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고심하며, 연습하고, 훈련하는 교회가 참 진리교회이다.”(부조와 선지자, 376).

특별히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에 따라 순종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남은 백성의 특성이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는지 따라가는” 순종이 특징을 이룬다. 이는 교리적인 순수성, 품성의 성화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구원받은 사실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고 자신이 체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 참된 순종의 삶이다.

따라서 진정한 재림교회는 우리가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면 성령의 인도아래 TMI(전교인 선교참여운동, Total Member Involvement)를 어떻게 잘 전개할 수 있을까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늘 실천을 고민하며 선교적 돌파구를 추진하는 교회이다. 그런 교회가 신앙하는 재미와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고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하는 교회가 되고 양적으로도 성장을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재림교회는 전인적인 교육, 전인적인 신앙을 강조한다. 예언의 신도 『복음전도』뿐만 아니라 육신의 건강을 돕는 『치료봉사』가 있고, 삶의 필요를 채워주는 『구호봉사』로 전인적인 삶의 필요를 채워주는 봉사와 사역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신학적으로 ‘실천적 경건’의 추구라고 한다. 참된 경건은 실천을 동반한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지역교회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종말시대의 시명이 지역교회에서 성취되어야 함을 인식하고 강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1992년 북미지회에서 나온 문건이지만 여전히 시의성이 있는 내용이라 소개한다.

“지역교회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단을 움직이는 동력이며 핵심이다. 남여들을 그리스도께로 구원해 드리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어린이들과 청년, 그리고 성인들이 제자도로 양육을 받는 곳이다. 그리스도의 동정심이 가정과 이웃 사이에서 구현되도록 하는 곳이다. 지역회중의 건강과 힘이 재림교회 기관들과 세계선교의 전체적인 기본 골격을 이룬다.”(1992년 북미지회 문헌, “A Shared Vision for the Local Church”)
재림교회는 여러분이 속한 지역교회가 남은 무리의 사명에 집중하여 선교하는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할 때 하나님의 뜻이 최종적으로 성취된다. 지역교회가 선교적으로 살아나야 재림교회는 진정으로 선교적 진리교회가 될 수 있다.

(5) 이제 우리가 시대의 징조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는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라고 고백한다(이사야 8장 18절). 하나님이 명하시는 명령에 순종해 사랑하는 아들을 낳아 도무지 쓸 수 없는 의미를 가진 작명(作名)을 한 후에 고백한 것이다. 그 이름의 의미를 통해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기별을 전하기 위해 이사야에게 3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라 명하셨다. 순종한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은 “나의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다니며 애굽과 구스에 대하여 징조와 예표가 되었느니라”(이사야 20장 3절)고 하셨다. 이사야는 그의 가족과 자신의 삶이 교회와 세상에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시대의 징조가 되었다.

재림을 소망하며 시대의 징조에 민감한 재림성도들은 증거하는 말과 삶으로 재림의 징조가 되어야 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4장 14절).

■ 종말 신앙은 하나님을 삶으로 나타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영웅으로 묘사되는 사람들이 있다. 수고하는 의료진을 응원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감동적이었다. 마스크를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양보하거나 환자들을 자주만나는 경찰 공무원에게 마스크를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우리 교회를 생각했다. 우리는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백성이다. 그 다름이 세상에 감동을 주면 좋겠다.

공적인 일로 외부활동을 하던 중 만난 총장님이 있다. 호텔 회의 때 미리 주문한 채식 식단을 보고 호기심으로 던진 질문으로 대화가 진행되어 상당히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였다. 갑자기 이분이 어려움을 당하여 몇 가지 조언과 법률적 절차를 도왔는데 감사문자가 왔다. 생각보다 도움이 컸다고 하면서 필자를 알게 된 것이 자신에게 참 다행이었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감사하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살짝 보여드릴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늘 외부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드린다.

세상은 우리를 통해 재림교회를 판단하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보려한다. 사람들이 우리가 이타적으로 살고, 원한을 품지 않고 복수하지 않고 사는 이유를 묻거든 “예수님이 오시잖아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헌신적인 사랑의 봉사를 하는 이유를 묻거든 “이렇게 살아야 행복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종말이 온다고 믿으면서도 왜 교회성장과 선교를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느냐고 묻거든 “내일 종말이 와도 오늘 사과나무 하나를 심는 심정으로 삽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너무나 분명한 긴박한 재림의 징조 앞에서도 차분하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이유를 묻거든 “주님 안에서 전 매일이 이미 종말이라는 의식으로 살고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상업적인 거래나 세속 직장에서도 “제가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킬 것 믿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재림교인입니다. 전 제 삶이 반드시 하나님 앞에 심판받는다고 믿습니다. 사람과의 약속을 하나님과 약속한 것으로 생각하고 반드시 지킵니다.”라고 말하는 재림교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재림성도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하여야 한다(야고보서 2장 12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최후의 시간에 우리에게 상을 주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골로새서 3장 23-24절). 재림성도들이 삶의 의무와 봉사를 기쁘게 성실하게 수행하는 이유를 재림의 소망으로 고백할 수 있을 때, 그런 재림신자의 삶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이 좋은 소식, 복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