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의 허(虛)와 실(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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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즉시 조절되지 않으면 더 심해질 수 있으며, 환자가 가능한 한 통증을 오랫동안 참고 있거나 정 견디기 어려울 정도까지 가서야 진통제를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의학적으로 올바른 대처 방법이 아니다.

통증과 진통제란
통증(痛症, pain)이란, ‘조직 손상을 유발했거나 유발 가능한 불쾌한 감각 혹은 감정’으로 정의된다. 통증은 인간이 거의 매일 경험하며 인체 조직의 손상에 의한 생명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하여 필수인 생리적 현상이다. 통증은 급성 및 만성 통증으로 대별되는데 항상 외상 지각(外傷 知覺, nociception, 유해한 자극을 감지하여 중추 신경계로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과 연관된 것은 아닌 주관적인 느낌이다.
통증의 감지(pain perception)는 3단계에 걸쳐 일어나는데 외상 수용기(유해 자극 수용기, nociceptor)의 활성화, 통증 정보의 전파(transmission of pain information), 통증 정보의 상행 송달(onward passage of pain information)이 그것이다. 비록 통증이 인체를 방어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기는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통증은 삶의 질을 낮추며 때로는 통증 자체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인체에 발병하는 다양한 질환으로 인한 통증을 적절히 경감시켜 주거나 제거하는 것은 치료 과정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진통제(鎭痛劑, analgesics)’란 ‘중추 신경계에 작용하지만 의식에는 영향을 주지 않고 통각만을 없애거나 감소시키는 작용을 나타내는 약물’인데 morphine으로 대표되는 아편계 진통제와 aspirin으로 대표되는 해열 소염 진통제의 두 부류로 대별된다. 아편계 진통제는 인체에 존재하는 선택적 결합 부위인 고유의 아편계 수용체에 작용하여 유해 자극에 대한 반응성 감소 및 동통의 하행성 억제 조절 기전 중 중뇌수도회색질(periaqueductal gray, PAG)에서 Nucleus Raphe Magnus로의 억제성 신경 전달 과정에서의 신경 전달 물질로 작용함으로써 진통 작용을 발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바른 진통제 사용법
염증 치료의 1차적 목표는 ‘염증으로 인한 통증의 해소 및 조직 손상의 지연 혹은 정지’이다. 아스피린 등 해열 소염 진통제의 사용으로 인한 염증 감소는 통증의 완화로 이어진다. 이렇듯 통증이나 염증, 발열은 인체의 손상을 방어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지만 과다하게 나타나면 도리어 인체를 손상시키는 두 얼굴을 가진 존재이다. 통증, 염증, 발열의 근본적 원인도 알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진통제를 오·남용하는 행위는 극히 위험하지만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하에 통증, 염증, 발열의 근본적 원인을 조절할 목적으로 진통제를 적절히 사용하는 것은 질환으로 인한 삶의 질 저하를 방지하고 환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중요한 의료 행위인 것이다.
의학적 원칙에 따르면 통증을 호소하며 진통제를 투여해야 하는 환자에게 진통제는 정규적으로 투여되어야 하며 통증 경감이 확실해지면 투여 계획을 ‘필요시 투여’로 변경해야 한다. 동시에 통증에 대한 적절한 평가, 예방 조치, 적극적 치료가 초기에 통증을 조절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통증은 주관적 현상이며 따라서 환자 자신의 통증 호소는 통증의 존재 및 강도에 대한 신뢰할 만한 증거로서 통증 강도의 측정은 환자가 느끼는 강도를 스스로 표시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통증을 가지고 있는 환자는 항상 관찰 가능한 증상을 나타낼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님이 알려져 있다. 또한 병리학적 소견, 임상 검사 결과, 수술의 유형 등에 의해서만 통증의 존재 및 강도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의학적 검사 결과 통증의 원인이 확인되지 않아도 환자는 통증을 느낄 수 있음이 잘 알려져 있다. 통증은 즉시 조절되지 않으면 더 심해질 수 있으며, 환자가가능한 한 통증을 오랫동안 참고 있거나 정 견디기 어려울 정도까지 가서야 진통제를 사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의학적으로 올바른 대처 방법이 아니다.

진통제의 허와 실
의료인들은 신약 개발의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진통제 중 해당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약물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 선택 기준으로는 1) 통증의 원인 및 강도, 2) 과거 및 최근에 통증 발생 시 가장 효과적으로 통증을 조절해 주었던 진통제 종류 등이 있을 수 있다. 이 기준은 절대적인 것은 아니나 중요한 참고 사항이고 환자의 복약 지시 순응도(compliance)를 높이는 요인이 된다.
아편계 진통제는 중등도에서 격심한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하여 사용되는데 내장통, 수술 후 통증, 말기 암에 의한 통증(최우선 선택 약물), 심근 경색이나 급성 폐부종에 의한 통증, 수술 전후의 통증 경감에 사용된다. 의료인의 전문적 판단하에 내성과 의존성을 적절히 조절한다면 환자의 통증을 덜어 주는 우수한 진통제이며 약물 투여에 의한 쾌감과 행복감은 고통에 대한 불안과 긴장을 덜어 주어 진통 효과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리학적 특성이 이 계열의 약물을 오·남용하고 중독에 빠지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므로 국가에서는 법률로 아편계 진통제의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아스피린과 아세트아미노펜(상품명 타이레놀 등) 등의 소위 해열 소염 진통제는 감기로 인한 발열, 두통, 근육통, 월경통, 치통 등 경미한 통증에서부터 중등도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투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약물군도 다양한 부작용을 나타낼 수 있으므로 환자의 입장에서 의약품으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의사와 약사의 전문적 지시를 잘 따름으로써 의약품이 인체에 주는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하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충재
현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교실 교수,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약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약학 석사(약리학), 서울대학교 대학원 약학 박사(약리학), 미국 University of Maryland at Baltimore 연구원,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Barbara 교환 교수

가정과 건강 9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