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라이프(well life)를 디자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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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동경하고 있다. 행복한 삶은 삶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지, 죽음을 피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과 불행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삶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웰빙(well being)을 지향하는 웰빙 트렌드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중·장년 층뿐 아니라 20~30대 젊은 층의 최대 화두는 웰빙(well being)이다. 본래 well being의 사전적 의미는 ‘복지-안녕-행복’으로 요약되는데, 요즘에는 몸과 마음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나 문화 코드로 해석되고 있다.
   웰빙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웰빙족은 몸과 정신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데, 이들은 고기 대신 생선과 유기농 식품을 먹고, 화학조미료와 탄산음료를 멀리한다. 값비싼 레스토랑의 식사 대신 가정에서 만든 슬로푸드를 선호하며 요가-피트니스-필라테스-단학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추구한다. 어찌 되었건 웰빙은 ‘자기만족을 추구한다.’라는 개념의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에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또한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고 노화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웰에이징(well aging)의 열풍 속에 노화를 늦추기 원하는 열망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수많은 웰에이징 센터가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며 노화를 늦추고 곱게 늙어 가는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웰빙에 대해서는 열광하면서 삶의 마침표가 되는 존엄하고 아름다운 죽음을 디자인하기 위해서는 고민과 투자를 아끼는 것일까? 문제는 우리에게 있어 삶에 대한 집착은 강하지만 죽음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필자는 서울시와 함께 ‘서울시민들을 위한 죽음 인식 조사’를 수행한 결과, 대다수의 시민이 죽음에 대한 극심한 두려움과 함께 죽음은 벗어나고 싶은 것이며 마주치기 두려운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애 주기별 죽음 준비 프로그램
우리와 달리 미국, 독일, 스웨덴, 일본, 호주에서는 생애 주기별 죽음 준비 프로그램이 도입되었고, 이를 통해 생명 존중 사상과 삶의 가치를 바르게 발견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죽음에 대한 교육을 죽음의 만연한 공포를 제거함으로써 삶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과 환희를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죽음의 문제를 더 이상 교육의 영역에서 도외시할 수 없는 중요한 교육 내용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출생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인간이 겪어야 할 삶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삶의 어두운 측면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죽음을 직시하면서 취하는 태도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들은 죽음이 다가와도 별 동요나 후회 없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 후자는 지금까지 힘들게 일해서 살 만한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의료진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매달린다. 우리 사회에는 후자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죽음을 준비하라고 하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라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산다는 것은 의미 있는 활동과 의미 없는 활동을 구분하여 현재의 삶을 보다 충실하게 영위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죽음 교육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받아야 하는 것이며, 이 땅에서 제대로 살기 위한 삶의 교육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성인의 관심 분야는 건강, 재테크, 자녀 양육, 노후 대책 등에 한정되어 있을 뿐, 죽음은 주제로 삼는 것조차 두려운 것으로 여기며, 정작 중요한 죽음 준비는 남의 일인 양 전혀 준비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러나 죽음 교육은 삶과 많은 연관을 맺게 될 것이며, 나아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제거함으로써 삶에 대한 인간의 존경심과 고귀함을 더욱 고양시킬 것이다.

죽음 교육과 죽음의 질
죽음학의 권위자이며 『잘 살고 잘 웃고 좋은 죽음과 만나다』의 저자인 알폰스 데켄(Alfons Deehen) 교수가 제시한 것처럼 죽음 교육은 인생의 가치관 재정립,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해방, 내세에 대한 희망, 죽음 과정에 대한 이해, 죽음과 관련된 생명 윤리, 의학, 법학의 이해 등을 가르치는 일이라고 정의되며, 이러한 개념들은 앞서 언급한 대로 삶을 준비하라는 교육 원리를 구현하는 죽음 교육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시대에 삶의 질을 높이는 것과 죽음의 질을 높이는 것과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이가 드는 것은 피할 길이 없고 죽어 가는 과정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의 유한성을 믿고 어떻게 하면 더욱더 의미 있게 사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처럼 죽음 교육은 넓게 웰다잉(well dying) 교육, 죽음대비 교육, 비탄 준비 교육, 자살 예방 교육, 리빙 윌(livig will)까지 포함하므로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서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삶과의 단절이나 삶의 종결로만 이해한다면 인간의 삶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나 회피의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죽음이라는 한계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삶의 문제를 깊이 있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우리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으며 내가 태어난 날을 선택할 수 없듯이 죽는 날도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삶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은 죽음의 의미를 모르고는 진정으로 올바른 삶을 산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삶의 모습이 다양하듯 우리가 맞이할 죽음의 모습도 다양할 수 있다. 삶이 아름다운 사람은 죽음도 아름답게 맞이할 것이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인간은 생명체이므로 직면하게 되는 두 가지 큰일은 삶과 죽음이다. 우리가 삶에 집착하다 보면 자칫 죽음이 삶에 대해 지니는 의미에 대해 간과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비로소 삶이 지니는 진정한 의미를 돌아보게 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 번쯤 오히려 강한 삶을 위하여 자신의 생을 정리하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웰빙과 웰다잉은 연속선상에 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삶을 동경하고 있다. 행복한 삶은 삶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지, 죽음을 피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과 불행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삶을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일 죽더라도 그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오늘의 행복, 삶의 목표와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좋은 죽음, 그것이 바로 웰다잉이 될 수 있다. 즉 좋은 죽음이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규정하는 것이 아닌, 마지막까지 자신 본연의 모습과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삶은 유한하며, 우리는 태어날 때처럼 떠날 때에도 예외 없이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세속적인 욕망에 덜 시달리고 존재 자체의 기쁨을 더 많이 느끼는 삶을 더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웰빙과 웰다잉은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일 것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웰빙과 웰다잉의 내용은 다르지만, 웰빙은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웰다잉은 행복한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이므로, 웰빙과 웰다잉은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웰빙을 ‘세상에 살면서 행복을 느끼 것’이라고 한다면, 웰다잉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웰빙과 웰다잉은 하나로 연결된 것이며, 그 연결의 출발점은 작은 것에서부터 그리고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웰다잉은(well dying)은 웰라이프(well life)의 완성이며 마침표이다. 또한 웰빙-웰에이징-웰다잉은 웰라이프를 지향하는 삶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웰다잉의 최종 목표는 바로 행복한 삶이 키워드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품위 있는 죽음과 후회 없는 죽음을 위한 삶을 오늘도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물음 앞에 우리 모두 겸허하고 솔직한 자세를 가져 보자.

전경덕
삼육보건대학교 교수, 삼육보건대학교 웰다잉융합연구소장
삼육보건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사이버지식원장

가정과 건강 11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