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림과 배려가 만드는 예(禮)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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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내리던 눈은 한낮 가까이 되어서야 겨우 그쳤다. 빙빙 돌면서 내리는 눈이 폭설이 될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그치더니 어느새 해가 반짝 났다. 툭하면 불던 바람도 잦아든 겨울 한낮이다. 흰 눈에 반짝이는 겨울 한낮의 햇살은 이상하게도 보석처럼 빛난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햇살 때문에 괜히 포근한 겨울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나서 마당에 쌓인 눈이라도 치울까 싶어 밖으로 나갔다. 모든 흔적을 덮은 눈 때문에 작은 뜰이 온통 한낮의 고요로 가득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뜰을 밟기가 머뭇거려진다. 햇살에 살짝 녹은 탓인지 소나무 가지에 얹혀져 있던 눈 덩어리가 떨어진다. 먼지처럼 작은 눈 알갱이들이 비산(飛散)한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둘러보다가 문득 가장 빨리 눈이 녹고 있는 곳이 보였다. 텃밭 쪽이다.
   도시 외곽으로 이사를 오면서 뜰 한 켠에 손바닥만 한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그곳에 아내는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서 아침마다 신선한 샐러드를 즐기곤 했다. 심었던 작물 수확을 마치고 가을이 깊어지면 그곳에 월동추라든지 봄동 같은 것을 파종했는데, 그곳에서 자라던 대파를 뽑으려다가 텃밭 한쪽 귀퉁이에 뿌리째 묻어 둔 적이 있었다. 대파의 생명력은 대단해서 겨우내 자신의 푸른빛을 잃지 않고 추위를 이겨 내며 한겨울을 살아가고 있었다. 눈으로 덮인 뜰에서 가장 먼저 덮인 눈을 녹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던 곳은 바로 대파를 심어 놓은 곳이었다. 얼어 죽은 줄 알았던 대파는 한겨울에도 싱싱하고 튼튼하게 살아 있었던 것이다.
   대파는 어째서 한겨울 추위와 눈을 이겨 낼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대파 뿌리가 뒤엉켜서 자라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식물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뒤엉킨 뿌리들이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하다못해 아파트에서 화분에라도 대파를 길러 보면 그들의 뿌리가 얼마나 서로 엉켜서 자라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음식을 할 때 대파를 한두 줄기 뽑아 보면 엉킨 뿌리 때문에 가르기가 어려울 때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 밭에 심어 놓았던 대파 뭉치들이 늦가을에서 겨울을 지내며 분간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뿌리가 뒤엉킨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덕분에 흙을 얕게 덮어 주기만 했는데도 저렇게 건강한 푸른빛을 뿜어내다니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말이다. 한 뿌리만 있었다면 얼어 죽었을 것이 분명한데 여러 대파가 서로 자신의 뿌리로 상대방을 휘감아서 뒤엉키는 바람에 혹독한 추위를 이겨 내는 힘을 얻은 것이다.
   어느 뿌리 하나가 너무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다른 뿌리를 휘감는다면 상대방에게도 나쁘고 결국은 자신에게도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상대방의 뿌리를 충분히 인정하고 적절한 선에서 서로의 뿌리를 휘감았던 덕분에 이들은 한겨울에 자기도 살고 남도 살 수 있었다. 어찌 파뿌리만 그러하겠는가?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모두 이와 같아서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면서 살아갈 때 자연의 조화로움이 구현되는 것이다.
   공자학파가 말하는 예(禮)는 바로 이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구성되었다. 인간들이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 바람에, 그리하여 개인의 욕망을 구현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는 바람에 세상은 수많은 갈등과 비극으로 가득하게 된 것이 아니던가. 일찍이 이런 점을 명확하게 간파했던 공자학파는 이러한 갈등을 넘어서 어떻게 조화로운 삶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했고 그것을 예의 정신에 담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안평중(晏平仲)은 다른 사람과 교유하기를 잘하는구나. 오래 사귀어도 그를 공경하다니.”(子曰: “晏平仲, 善與人交, 久而敬之.” 『論語』 <공야장(公冶長)>)

안평중은 관중(管仲)과 함께 중국 춘추 시대를 대표하는 이름난 재상이다. 그는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반란이 일어나 왕이 시해를 당했음에도 예를 지킨 인물이기도 했다. 『사기』를 쓴 사마천(司馬遷)은 안영의 기록을 남기면서 만약 안영이 지금 살아 있어서 내가 그를 위해 마차를 몰 수 있다면 영광스럽게 생각하겠다고 했겠는가. 공자 역시 안영을 매우 존중했고, 그의 삶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를 살폈다. 그가 보기에 안영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았는데 오래 사귄 사람이어도 그를 늘 공경했다는 것이다.
   처음 어떤 사람과 인사를 나눌 때에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친해진다고 느껴지면 조금씩 그 선을 넘어서 때로는 과한 행동과 말이 튀어나온다. 많은 경우 그것을 친하다는 표시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해 적절한 선을 지켜야 좋은 관계가 오래가는 법이다. 공자가 안영을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그 점이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 이것이 사람과의 교유를 잘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의 기본이 조화로움(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논어』 <학이(學而)>)이라는 것은 공자학파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약속이며, 그것이 잘 지켜질 때 조화로운 사회가 유지된다고 그들은 생각했다. 나만을 위한 언행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언행이 보편화될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한겨울 파뿌리들이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혹독한 추위를 이겨 내듯이 우리도 다른 사람의 어깨를 든든하게 겯고 조화를 이루어 갈 때 비로소 우리 앞에 놓인 높은 장애물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예는 바로 그러한 정신을 공부할 때 비로소 내게 장착되는 윤리적 요소일 것이다.

김풍기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가정과 건강 3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