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면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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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언젠가 경험했던 숲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 그때 같이했던 사람들과의 따뜻했던 관계를 다시 한번 느껴 보자. 그러면 불안과 우울, 초조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현재를 삶의 쉼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산림 치유는 숲이 가진 다양한 인자를 활용해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하고 면역을 높이는 활동이다.

숲은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혜택을 준다. 그중에는 목재와 같은 물질도 있고 깨끗한 공기와 산소, 삶을 쾌적하게 하는 기후 조절, 여가의 장소를 제공하는 휴양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도 있다. 최근에는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고, 삶의 행복을 누리게 해 주는 숲의 보건 복지 기능도 관심을 끌고 있다. 숲이 가지고 있는 건강의 기능이 최근에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지만 사실 숲을 건강을 위해 이용한 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다. 고대 스파르타에는 육체적 강인함을 키우기 위해 숲에서 훈련을 하였고, 신라의 화랑들도 숲을 호연지기의 장으로 활용하였다. 산업 혁명이 일어나고 유럽의 도시에 많은 노동자가 열악한 거주 환경으로 폐병이 확산됐을 때 공기 좋고 아름다운 숲에 많은 요양원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 세워지기도 했다.

숲과 인간의 기원
그렇다면 숲은 왜 우리를 건강하게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인간의 기원부터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인류는 장구한 세월을 지나며 거의 대부분 숲에서 수렵과 채취로 살아왔다는 게 인류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즉 인류 역사의 대부분(약 99.9% 이상)에 해당하는 기간을 아프리카 사바나 등의 숲에서 수렵과 채취로 살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곤 5천 년 전쯤 인간은 숲에서 나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농경과 축산을 통해 식량을 재배하고 사육을 시작하였다.
   우리의 유전 설계는 아직도 숲속에서 살아온 우리의 조상들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것을 하버드대 윌슨 교수는 ‘바이오필리아’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환경은 어떠한가? 우리의 유전 설계와는 완벽히 괴리된 삶 즉 하루 종일 맨땅 한번 밟지 못하고 나무 한번 쳐다 보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숲이 왜 우리에게 정신적 안정을 주고 면역력과 건강을 회복시켜 주는가에 대한 답은 바로 인간의 정체성인 ‘바이오필리아’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면역력을 높이는 숲의 기능
숲의 녹색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안정되게 한다. 환경 심리학자인 미시간 대학의 캐플란 교수는 숲이 주는 쾌적감, 순수한 자연물, 오감을 자극하는 숲의 요소와 같은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또한 숲에는 ‘피톤치드(phytoncide)’, 맑은 공기와 산소 등의 물질이 도시의 오염에 찌든 우리를 건강하게 한다.
   숲은 또한 최고의 운동 효과를 주는 자연 Gym이다. 다양한 숲의 지형은 운동 효과를 높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실내에서의 지루함을 없애고 재미있게 운동 효과를 볼 수 있게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최고의 운동은 누구나 쉽게 흥미를 가지고 꾸준히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본다면 숲에서의 산림욕이야말로 최고의 운동이 될 수 있다. 누구나 아무 때건 그리고 어디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산림욕의 습관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의 보증 수표이다.
   숲은 현대인들의 심리적/정신적 피난처와 회복처로서 큰 역할을 한다. 1997년 외환 위기가 우리나라에 닥쳤을 때 160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경제적인 고통은 물론 심리적/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았다. 열심히 일한 죄뿐이 없는 그들은 분노와 좌절감에 가득 찬 마음을 안고 산과 숲에서 울분을 달래며 어려움을 참았다. 아마 그때 숲과 산이 아니었다면 그 많은 사람은 병원 신세를 지었을 것이다. 미국의 시인 윌리엄 컬런 브라이언트가 뉴욕의 도시 계획을 맡았던 로버트 모지스에게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 똑같은 크기의 정신 병원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듯이 말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다시 숲으로
코로나19의 공포스러운 확산이 우리의 일상을 바꾸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재택근무, 재택 수업, 외출 자제 등이 일상이 되면서 많은 국민이 힘든 삶을 이어 가고 있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고 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일이라고 믿고 동참하지만 이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이럴 때 숲은 우리 국민의 건강과 행복을 지켜 줄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사진이나 컴퓨터 화면 또는 창을 통한 숲의 감상 같은 간접적인 숲의 이용도 어느 정도의 치유 효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 최근 연구 결과에서 밝혀졌다. 심지어 잠자기 전에 듣는 숲의 소리가 숙면에 도움을 준다고도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나들이를 자제하여야 하는 이때 이렇게 간접적으로 숲이 주는 혜택을 누리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아름다운 숲을 상상하고 여행하는 것도 심리적 스트레스의 완화에 큰 도움이 된다. 눈을 감고 언젠가 경험했던 숲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그때 느꼈던 감정, 그때 같이했던 사람들과의 따뜻했던 관계를 다시 한번 느껴 보자. 그러면 불안과 우울, 초조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현재를 삶의 쉼표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산림 치유는 숲이 가진 다양한 인자를 활용해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하고 면역을 높이는 활동이다.
   우리나라는 숲이 국토의 64%를 차지한다. OECD 국가 중 숲 면적이 4번째로 높다. 그런데 우리 곁에 있는 숲이 그냥 저절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 반세기 이상 우리 국민 모두가 피땀으로 민둥산과 같았던 국토를 푸르게 만들어 지금은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을 넘는 울창함을 갖게 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의 국토 녹화를 기적이라며 찬사를 보내고 있다. 이젠 우리의 자랑인 숲을 우리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원으로 이용해야 한다. 산림청에서는 이를 위해 2016년 <산림복지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숲이 휴양을 넘어 건강과 교육 그리고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하고 있고 <생의 주기별 산림복지 정책>으로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숲을 잘 이용할 수 있도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신원섭
산림 치유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이다. 2018년 유엔 식량 농업 기구(FAO) 산림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어 전 세계적으로 산림 치유를 보급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현재는 충북대 산림대학교 산림치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3년부터 2017년까지는 제30대 산림청장을 지냈다.

가정과 건강 8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