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화로 북한선교’ 이지나 의명예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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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 단장은 북한문화로 북한복음화에 이바지하겠다고 다짐했다.(인터뷰이의 신변 안전을 위해 얼굴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바랍니다.)
“아니 천국에 왔는데 또 무슨 천국에 가자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천국에 가자는 말은 이지나(가명) 의명예술단장이 남한사회에 정착한 이후 들었던 이야기 중 제일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2017년 압록강을 건너 중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은 후로는 더이상 공안에 잡힐까 벌벌 떨 이유도 없고, 헐벗고 굶주리지 않아도 됐다. ‘이 사람들이 이미 천국 살고 있으면서 천국에 사는 줄 모르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천국 같은 한국에서의 삶에도 이내 굴곡이 지기 시작했다. 결혼해 두 아이까지 낳았건만 여러 사정으로 이혼의 쓴 경험을 했다. 남편은 아이를 한 명씩 맡아서 키우자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모님이 아직도 북한에 남겨져 있는데, 자녀마저 떨어져 지낼 수는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건강마저 많이 쇠약해졌다.

그렇게 삶을 돌아보던 중 갑자기 “아이고 하나님”하며 혼잣말을 내뱉는 자신을 발견했다. 깜짝 놀랐다.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을 찾았던 순간이 번갯불처럼 떠올랐다.

집에서 나와 무작정 두만강을 향해 가던 길이었다. 아버지가 정해 준 사람과 결혼하기 싫어 부모님이 외화벌이를 하며 모아둔 금과 자전거를 훔쳐 가출한 것이었다. 이 단장은 “내 나라, 내 조국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선 통행증과 여행증명서가 없으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며 가출한 이상 억압의 북한에서 탈출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승냥이 울음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오싹하고 음산했다. 보름 동안 개성에서 두만강까지 38개의 검문소를 지나는 가운데 잠은 숲에서 웅크리고 잤다. 그때마다 승냥이가 따라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울음소리가 지척에서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 맙소사”라고 외쳤다. 그는 “그 때 외친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사람을 따뜻하게 사랑하는 하나님인 줄은 전혀 몰랐다. 적어도 영도자라면서 백성을 굶겨 죽이는 장군님은 결코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잘 살고 있음에도 북한에 두고 온 부모님을 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소식이라도 전하기 위해 브로커를 구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녹록치 않았다. 사기도 당했고, 애써 모은 돈도 많이 잃었다. 마치 천국 같던 한국의 차가운 면을 맞닥뜨리자 자신만만하던 그도 지칠 수밖에 없었다.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던 이 단장에게 어느날 의명선교센터가 손을 내밀었다. 처음으로 교회라는 곳을 찾았다.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은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했다.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디서 겉돌다 이제야 왔니?’

이 단장은 “수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하나님은 나를 주관하셨다. 간사한 사람의 마음과 달리 한결 같이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북한선교와 통일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가진 문화예술의 재능과 달란트로 봉사하는 의명예술단은 그 작은 밀알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