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사용, 이제 알고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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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식사와 함께 찬물을 마시는 실수를 범한다. 식사와 함께 마신 물은 침샘의 흐름을 감소시킨다. 그러므로 물이 차면 찰수록 위장에 끼치는 손상이 크다. 얼음물 또는 찬 레몬수를 식사와 함께 마시면 위장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신체가 위장을 충분히 따뜻하게 데울 때까지 소화 작용을 정지시킬 것이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420)라는 조언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물의 필요량은 얼마인가?
그럼 이 중요한 물을 매일 얼마나 마셔야 하는가?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적으로 하루에 한 사람에게 필요한 물의 양은 약 8잔의 물이라는 개념이 상식처럼 통용되었다. 그러나 이 상식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 의학적 근거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정확한 검증을 위해 연구한 결과 2002년 『American Journal of Physiology』에 실린 논문에서 헤인즈 발틴(Heinz Valtin)은 심한 운동 중이 아니라면 평시에 상온에서는 그렇게 많은 물이 필요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발틴은 사람은 목마름을 느낄 때 마시는 물 정도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건강한 성인에게 목마름이 수분 섭취에 길잡이가 될지는 몰라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동선수나 노인, 임신부 등은 평소 갈증을 느낄 때만 먹는 양보다 더 필요할 수 있다.
   반면 미국 IOM(Institute of Medicine)의 권고에 따르면 미국 19~30세 남자는 약 15.5컵(3.7L), 여자는 11.5컵(2.7L) 정도의 수분이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 약 20%는 음식으로 섭취되며 나머지 80% 정도는 물과 기타 음료수로 섭취된다. 즉 하루에 남자는 3L(1컵당 240ml 기준, 13컵), 여자는 2.2L(9컵) 정도의 물이 필요하다. 하지만 캐나다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요구량이 적게 나타났고,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에서는 하루에 6~8컵의 물을 권장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하루 동안 필요한 물 섭취량에 대해 세계적으로 일치하는 의견은 없다. 즉 물 섭취량은 나라별, 인종별로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국과 밥이 기본적인 식사로 이루어져 식사 시 수분을 좀 더 먹고 있는 관계로 식간에 순수한 물로 마셔야 하는 양은 좀 더 적게 계산될 수도 있다. 2020년 한국인 영양소 섭취 기준을 보면 물과 음료수를 합한 충분한 섭취량은 19~49세 성인 남자가 1,200cc, 여성은 19~64세까지 1,000cc로 보았다. 그러나 서양의 통계보다 현저히 적은 이 통계는 우리나라 음식의 수분 양을 정확히 재기 힘든 연구의 한계 때문에 정확하다고 보기 힘들다는 제한점도 있다. 그 외에도 수분 섭취 요구량은 나이, 몸무게나 활동량 외부 온도나 날씨 등에 따라 변할 수 있고 통상의 요구량 이상의 물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물은 언제 마시는 것이 좋은가?
물을 언제 마실까에 대한 질문에 “자주 목욕하고 깨끗한 단물(軟水)을 자유로이 마셔야 한다. …식사 전에 깨끗한 온수를 약 반 쿼트가량(약 500cc) 마시는 것은 조금도 해롭지 않고 오히려 유익을 줄 것이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419)라는 조언을 참고해 볼 수 있다. 또한 “조금이라도 갈증을 해소시킬 필요가 있다면 식사하기 얼마 전이나 식후 얼마 있다가 마시는 깨끗한 물이 몸에서 요구하는 전부이다.”(상동, 420)라는 글귀도 눈에 띈다. 다시 요약해 본다면 물은 언제든 마실 수 있으나(“자유로이 마셔야 한다.”) 주로 식사 중간보다는 식사 얼마 전이나 얼마 후와 같은 식간에 마시는 것을 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할 만한 매우 유익한 조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 의학에서는 아직 물을 마시는 가장 좋은 시간과 관련된 신뢰할 만한 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잠들기 전 2시간 이내 물을 많이 먹는 것은 수면을 방해하고 이를 통해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따라서 자기 전에 갈증을 느끼게 될 때까지 두지 말고 낮 동안에 충분한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특정 시간에 물을 한꺼번에 많이 몰아서 마시는 것 또한 물 중독의 위험 등을 생각할 때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시거나 식간에 물을 마시는 등 일정량을 하루 중 나누어 마시는 것이 현명하다.
   식전에 물을 마시거나 식사 중간에 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여러 주장이 있어 왔으나 식사 직전 찬물을 섭취하면 몸 안에서 물을 데우는 과정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 등 체중을 줄이는 데 약간의 영향을 미치는 것과 차가운 물은 식도이완불능증(achalasia) 환자처럼 식도 연동 운동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한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같은 장 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식사 중의 수분 섭취보다는 식사 한 시간 전후에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그러나 식사 중 수분 섭취가 소화 효소를 희석시켜 소화를 방해할 것이라는 상식적 추측과는 달리 식간이나 식사 직후의 수분 섭취도 소화를 돕는다고 알려져 있다. 식사 중 많은 물의 섭취가 잠깐 동안은 소화 효소를 희석할 수는 있지만 우리 몸이 금방 적응해 더 많은 소화 효소를 내고 소화한다는 것이다. 아기가 먹는 젖은 대부분이 물로 이루어졌다는 것과 수박 같은 과일은 90%가 수분임에도 소화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한다면 식사 중에 섭취하는 ‘소량’의 수분이 소화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최적의 음용수 온도가 있는가?
물을 마실 때 어떤 온도의 물을 마시는 것이 좋을까? 2013년 한 연구에서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운동 후 물 섭취에 어떤 온도의 물이 좋은지 연구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약 16도씨 정도의 물이 가장 마시기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시는 물의 시원함이나 청량감은 어디까지나 실내 혹은 실외 환경의 온도나 사람의 체온 상태 등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마시는 물의 온도는 건강에 그다지 상관이 없다고 해도 될까? 그렇지는 않다. 물이 얼마나 뜨거운가 혹은 차가운가에 따라 마셨을 때 몸에 끼치는 생리적인 반응이 다를 수 있고 또한 질병과 관계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식도암의 원인 중 역류성 식도염과 같은 질병도 있지만 뜨거운 차를 마시는 것 또한 식도암의 발생률을 높인다고 한다. “위장은 대량의 뜨거운 음식과 음료로 크게 상한다. 인후와 소화 기관이 약해지며 또한 그에 따라 다른 신체 기관들이 약화된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106)라는 오래전 경고는 뜨거운 차나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목이나 식도 등에 열로 인한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실질적인 경고였던 셈이다.
   그럼 차가운 물은 위장 관계에 부담을 주지 않을까? “많은 사람이 식사와 함께 찬물을 마시는 실수를 범한다. 식사와 함께 마신 물은 침샘의 흐름을 감소시킨다. 그러므로 물이 차면 찰수록 위장에 끼치는 손상이 크다. 얼음물 또는 찬 레몬수를 식사와 함께 마시면 위장이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신체가 위장을 충분히 따뜻하게 데울 때까지 소화 작용을 정지시킬 것이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420)라는 조언을 실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비록 연구가 많지는 않지만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찬물이 성장을 방해하고 장에서의 미생물 조성에 영향을 주며 설사를 유발하는 반면 따뜻한 물은 소화를 돕고 성장을 도우며 설사를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연구자마다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찬물이든, 언제 마시든 상관없다는 의견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최소한 과민성 대장 증후군을 가진 사람에게는 복통을 일으키거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또한 얼음물 같은 차가운 온도의 물은 식도의 연동 운동에 문제가 있는 질환의 경우 경련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그뿐 아니라 2001년 669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얼음장같이 찬물은 편두통을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물은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지근하거나 혹은 시원한 정도의 물로 마시는 것이 좋다.
하지만 찬물이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극단에 빠지지는 않도록 주의하자. 45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운동 중 휴식 시간에 각각 4도씨와 22도씨의 물을 마시도록 하면서 운동의 효율을 측정한 실험에서 찬물을 마신 쪽이 여러 운동 종류에서 49~51% 정도의 운동 능력 향상을 나타내었다. “약으로 말고는 뜨거운 음료가 필요되지 않는다.”(식생활과 음식물에 관한 권면, 420)라는 조언을 참고해 보면 감기로 인해 오한이 있을 때 치료 목적으로 몸에 따뜻한 온기를 주기 위해 더운물을 마시고, 열사병이나 더운 날 열로 인한 탈수나 질병을 막고 정상 체온을 유지하려는 목적으로 찬물을 사용하는 것 등은 하등의 이상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려 준다.

강기훈
내과 전문의, 오남강내과 원장

가정과 건강 4월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