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절망 속 희망’ 죽변하늘소망교회의 사랑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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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울진군 북면 한 마을의 모습. 가옥들이 폭격을 맞은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주저앉았다.
“뭘 또 이래 싸 갖고 왔노. 고마워서 우째”
“그런 말 마이소. 별 거 없어예. 있는 대로 가 왔소”
“고맙다. 잘 나눠 묵을꾸마”
“큰 힘도 못 되면서 자주 와서 미안해요”
“별 소릴 다한다. 이보다 어떻게 더 잘하노. 내 평생 못 잊을끼다”  

지난 1일 오후, 울진군 북면 신화2리. 죽변하늘소망교회 승합차가 주차장에 다다르자 마을회관 안에 앉아 있던 몇몇 주민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조중근 목사의 양손에 배추김치와 국물김치, 멸치볶음 등 반찬이 가득 들렸다. 이 교회 성도들이 오전부터 모여 정성껏 만든 것들이다.

이 마을은 이번 동해안 산불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 곳 가운데 하나. 불길이 강풍을 타고 산등성이를 넘어 순식간에 덮치면서 무려 16채의 주택이 전소됐다. 현장이 한눈에 다 들어올 정도로 처참하다. 몇몇 집은 그야말로 폭격을 맞은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폭삭 주저앉았다. 남아 있는 지붕잔해를 보고서야 이곳에 얼마 전까지 가옥이 있었음을 알게 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무시무시했을지 짐작하게 한다.

화재는 지난달 4일 오후 일어났다. 건조한 날씨에 바람까지 불며 삽시간에 번졌다. 교회와 자동차로 불과 15분 거리에 떨어진 북면에 제일 먼저 주민대피령이 떨어졌다. 그날 밤, 불길이 거세지면서 당국은 도로를 통제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연기에 의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부터 안개보다 짙고 자욱한 연기가 마을을 온통 뿌옇게 뒤덮었다. 불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바람의 방향은 교회 쪽이었다. 안식일 오후, 조중근 목사를 비롯한 성도들은 긴급연락망을 가동하며 자체 대피계획을 세웠다. 불은 5분 거리 윗마을까지 거침없이 밀려 왔다.  


현장 – ‘절망 속 희망’ 죽변하늘소망교회의 사랑나눔

기자가 현장을 찾았던 신화리 마을회관 앞에는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을 위해 지난달 18일부터 15개 동의 조립식주택이 들어섰다. 27㎡ 크기의 임시 거처는 냉난방기구와 싱크대, 붙박이가구 등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이 중에는 죽변하늘소망교회가 운영하는 ‘울진희망학교’에서 한글을 배우는 구도자도 있다.

집 안에 있기 답답해 나왔다는 한 노인은 “시뻘건 불기둥이 마을을 빙 둘러쌌다”면서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주민은 “100년을 산 사람도 이런 난리는 처음이더라”며 뭐하나 남김없이 모조리 싹 다 태웠다고 혀를 끌끌 찼다. 시간이 흐르며 마음이 많이 안정됐다고는 하지만, 무너져 내린 (옛)집을 보면 여전히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재민들은 “그래도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느냐”며 “안 그래도 요며칠 입맛이 없었는데, 이렇게 먹을거리를 갖다 주시니 고맙다”고 인사하며 반찬통을 받아들었다. 바르르 떨리던 목소리에 반가움과 고마움이 묻어났다.

전미자 집사는 “재난을 당한 분들이 지금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냐”면서 “우리가 아무리 위로한다 해도 다 채워 주지 못하니 마음이 무겁다”고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함께 온 또다른 봉사자는 “수십 년을 살아온 자기 집이 어느 날 갑자기 속수무책으로 다 타버렸으니 얼마나 황망할까”라며 “이재민들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이들이 하루빨리 예전의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손을 잡아 줘야 한다”고 말했다.

3일에는 교회 마당에서 ‘산불피해 주민을 위한 나눔 바자회’를 열었다. 아드라코리아와 영남합회 여성협회 등 관계 기관이 후원했다. 전국에서 모인 각종 의류와 신발, 이불, 식기구, 생필품 등을 무료로 가져가도록 공개했다. 무려 1.5톤 트럭으로 2대 분량이나 됐다. 교회 자체적으로 속옷과 양말 세트를 구매해 나눠줬다.

#img3# 현장 – ‘절망 속 희망’ 죽변하늘소망교회의 사랑나눔

휴일을 맞아 신화리, 소곡리, 고목리 등 인근 6개 마을에서 80여 명의 이재민이 찾아와 서로에게 필요한 물품을 챙기며 요긴한 도움을 받았다. 30여 명의 성도들이 나와 진열과 안내 등 봉사의 손길을 펼쳤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아내도 현장을 찾아 지역사회의 관심을 나타내보이기도 했다.

그간 잠시 수업을 중단했던 ‘희망학교’는 이번 주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곧 검정고시 시험이 예정되어 있어 학생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재개를 늦출 수 없다.

화마가 할퀴고 지나간 산등성이에는 밑동이 새카맣게 타들어 간 소나무들이 누렇게 퇴색하며 말라 죽어가고 있다. 숯덩이처럼 검게 그을린 줄기는 갈라지고 부러지고 휘어졌다. 하지만 그 아래 둔덕에는 거짓말처럼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새파란 새싹이 파릇파릇 움을 트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생명력을 회복하는 천연계의 섭리처럼 상처 입은 이재민들의 삶에도 희망이 다시 피어났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되뇌며 울진 방향으로 핸들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