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코로나 사태로 본 재림징조의 참된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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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익 교수는 참된 재림 징조의 기능은 영혼구원을 위해 일하자는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코로나 시대, 재림신앙을 다시 이야기한다

김성익 교수(삼육대 신학과)

미국 재림교회 영문 시조 편집장인 마빈 무어 목사는 확정적이고 결정적인 종말의 징조로 간주할 수 있는 단일 사건으로 첫째, 일요일휴업령이 미국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이고 둘째, 사단이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그 외 대부분의 징조들은 “종말의 중요성”만을 갖는다.

“종말의 중요성”을 갖는 여러 유사한 사건은 재림의 징조로 해석할 수 있는 종말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경향성을 지닌다. 다시 말하면 이런 징조들은 재림이 다가오고 있다는 중요한 표지판이라는 점이다. 출발점에서 목표지점까지 가는 중간 표시인데, 앞으로 몇 개가 더 남았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대강 그려 놓은 지도와 같은데 지도에서 보는 남은 거리와 실제 거리는 차이가 크다.

종종 성급한 기대와 예측이 남발되는 대표적인 예언으로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우상” 해석과 연관한 일요일휴업 법령의 제정과 가톨릭과 관련된 근거가 명확하지 못한 음모론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 짐승의 표를 금융/경제위기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연관된 징조로 제시되는 여러 정보는 종말이 될수록 점점 개연성이 커져가는 경향이지, 결정적으로 중요한 종말의 최종 표지판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종말 징조로 예수께서 전쟁에 관해 예언하시며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다”(마태복음 24장 6-8절)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6절 끝에서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고 하셨고,  8절 끝에서는 전쟁과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아직도 더 심한 것이 남아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로 매 시대마다 이런 징조들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재림을 상기시켜주어 영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기능을 했다. 그런 재난의 한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는 세상 끝이 도래한 것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것이 재림 바로 전에 있을 최후의 결정적인 전쟁, 기근, 지진, 재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단지 이 징조들은 매 시기마다 주님이 오심이 점점 가까워 옴을 알려주는 경향성, 즉 표지판이다.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은 알려주지만 표지판이 얼마나 더 남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재림의 확실성에 대한 믿음의 근거와 결정적 징조
무조건 믿는 것은 맹신이다. 종교를 개인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나 광신적인 사람에게 세뇌 당해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믿는 일은 개인의 삶을 파멸시킬 수 위험성이 있다. 참된 믿음은 믿을 만한 것을 믿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런 믿음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믿을만한 것을 보여줄 수 있으니 “와서 우리가 서론 변론하자”(이사야 1장 18절)고 초청하시는 쟁론하는 분이다.

사실 재림이나 죽은 자의 부활 약속은 세속사람들 입장에서 그냥 믿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주신 다니엘서 2장과 7장의 세계사적인 예언의 성취와 다니엘 7장 25절의 1260일 예언과 8장 14절의 2300주야 예언 등은 그 이후의 예언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근거를 제공해준다. 이런 확고한 믿음 위에 우리에게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지표가 되는 결정적인 징조 예언 네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주는 확실한 징조는 현대의 강신술의 범람이다
예수께서 예언하시기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태복음 24장 23, 24절) 하셨다.

재림신자들은 이 예언과 요한계시록 16장 12~14절의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는 예언을 연결시킨다. 재림교회는 “귀신의 영”의 역사인 강신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여 아마겟돈 사건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 예언처럼 점성술을 물론이고, 귀신이 개인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대중매체를 지배한지는 이미 오래 됐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미국의 3대 텔레비전 방송 모두가 심령술사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이다. 18년 전에 우연히 미국에서 NBC 방송을 틀었는데 많은 사람을 앉혀놓고 대화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한 40대 어머니가 최근에 학교버스를 타고 가던 어린 딸이 사고를 당해 사별하게 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는 그날 아침 너무 바쁜 가운데 사소한 일로 딸과 말다툼을 벌였는데, 딸이 화가 난 채 나가버렸단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었다. 딸이 학교로 가다가 사고를 당해 사망한 것이다. 화해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펑펑 우는 어머니에게 너무나 평화롭고 따뜻한 미소를 가진 사회자가 다가가서 매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이 스튜디오에 당신의 딸이 와 있어요.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체크무늬의 붉은 색 상의와 회색 치마를 입고 있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딸이 사고를 당한 날 그런 옷을 입고 나갔고 머리도 양 갈래였다고 말했다. “그래요, 당신의 딸이 환한 미소를 짓고 엄마에게 말하네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난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어요. 엄마 사랑해요” 어머니와 청중들의 반응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런 배경을 모른 채 시청했는데, 결론에 가서야 섬뜩한 그러나 잘 포장된 심령술사가 진행하는 강신술 프로그램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것도 가장 큰 미국 텔레비전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말이다. 오늘날은 더욱 영향력을 더해 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적인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식으로 사별을 경험한 자의 마음을 치유하는 프로그램과 이적과 치유사역 등으로 포장된 강신술적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음을 수시로 목격하고 있다. 이런 경향이 점진적으로 심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양대 기독교 세력과 강신술이 연합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2)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주는 확실한 징조는 기독교 세력과 정치의 결합이다
재림교회는 요한계시록 17장 1~3절에 나타나는 “물위에 앉은 큰 음녀”가 “땅의 임금들과 더불어 음행”하는 것을 진리를 거절한 기독교가 정치적인 권력과 결탁하여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강제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같은 연합이 있게 될 때 예언의 신은 “우리는 놀라운 사단의 활동시기가 왔다는 것과 끝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교회증언 5권, 455)라고 했다.

각국의 정치세력이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이들 타락한 기독교의 연합체와 결속해 남은 무리를 핍박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일을 통해 진리의 선포를 저지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현재 세계 곳곳에서 복음으로 인해 핍박받고 순교하는 일이 이슬람권이나 불교권 뿐만 아니라 가톨릭과 정교회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개신교와 교황권이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일은 결정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대총회는 이런 일이 진척되는 여부에 관심을 갖고 미국 의회의 법률 제정과 정부의 정책을 모니터링 하는 책임자를 선정해놓았다. 담당자에 의하면 미국의회에서 우리가 이해하는 종말론적인 종교입법에 대해 아직까지는 결정적인 것은 없다고 한다. 단지 어느 정도 개연성을 보여주는 활동이 감지되고 있는데 분위기 조성과 같은 점진적인 발전을 목도할 수 있을 뿐이다.

(3)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주는 확실한 징조는 자연재해와 범죄의 증가이다  
종말의 징조로 예수님은 일월성신의 징조와 기근, 지진, 전쟁, 전염병, 무서운 일, 기절할 일 등을 말씀하셨고, 신약 나머지 책들 속에서 종말에 저하되는 윤리적인 문제와 사회적 문제 등을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포괄적으로 종말을 야기할 수 있는 자연재해로 지구 온난화, 오존층 문제, 자원고갈의 문제, 도시화 및 사막화의 문제, 이상기후의 문제, 대량살상무기의 문제, 인구증가와 식량 부족 문제 등을 포함시키는데 세속적인 전문가들도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이다.

윤리적인 문제로는 돈을 사랑하고, 범죄율의 급증, 전쟁의 증가와 잔혹함, 인종 말살을 위한 대량학살, 테러, 냉혹한 인간관계의 심화 등을 징조로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문제들은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고 현재도 여전히 악화되어가고 있는 진행형이다. 어느 사건도  결정적인 최후의 재림 전 징조라 말하기는 어렵다.

(4) 재림이 가까움을 알려주는 확실한 징조는 세계적인 복음전파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 14절에서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신 것은 재림교회가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징조이다. 재림교회는 2018년 연말 기준으로 유엔에 인정된 235개국 중 213개의 나라에 2141만4779명의 성도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아직도 이슬람과 힌두교와 불교 국가권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대다수라는 사실이다.

19세기에 개신교 선교가 절정을 이룰 당시 많은 개신교의 선교전략가들은 한 세기 안에 모든 주요 종교들이 기독교의 선교에 의해 사라질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재림교회도 그런 분위기 속에 출발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독교보다 타 종교의 증가율이 점점 커가고 있고, 심지어 기독교 선교사 정책을 본받아 주요 비기독교 종교들이 선교사를 서구 사회에 적극적으로 파송하고 있다. 갤럽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서도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비율보다 기독교에서 불교로 개종하는 비율이 더 높다.  

전 세계 기독교인 인구를 20억 명이라고 하면 무슬림이 12억 명, 불교와 중국 전통종교가 7억8000만 명이고, 힌두교 8억1000만 명, 무종교가 9억1000만 명 정도 된다고 추산한다. 경도 10도부터 40도 사이에 동아시아로부터 아프리카까지 가상의 ‘10-40 창문’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전 기독교적으로 가장 복음화가 덜 된 지역이다.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사는데 세계 빈민의 86%가 이 지역에 몰려있고, 34개의 무슬림 국가, 7개의 불교국가, 3개의 공산주의 국가, 2개의 힌두교 국가가 이 지역에 있다. 반면에 기독교인 비율은 2-3%에 불과하고 가톨릭을 포함해도 최대 4-5%를 넘지 못한다.

이 같은 이해 속에 재림교회도 과거에는 재림기별이 들어간 나라 수를 헤아렸지만, 1990년대부터는 ‘세계선교’(Global Mission)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점진적으로 복음을 거의 들어보지 못한 비전도 종족(unreached people)과 전혀 그리스도인과 만나보지도 못한 지역에 사는 비접촉 종족(untouched people)으로 선교 전략적 관심이 바뀌고 있다. 어떻게 분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약 73억 명의 세계인구 중 아직도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지구상의 인원은 적어도 20억 명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선교학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남아있는 막중한 선교적 도전을 분석하면 이 일이 우리 세대 안에 성취가 가능할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선교 현황을 살펴보면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의 현실로 느껴질 때가 많다. 위성방송이나 인터넷 선교의 발전은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오직 성령의 강력한 역사(늦은비 성령)만이 이 막중한 선교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재림교회가 비교적 짧은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개신교 중 4대 교단으로 발돋움 했지만, 여전히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과정에 있고, 현 선교상황을 보면 남아있는 도전은 너무나 크다. 하지만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예수님이 오신다. 복음 전파 현황은 우리에게 주님의 오심의 긴박성을 알려줄 뿐 아니라, 남아있는 복음의 미답지가 남아있다는 이들 지역의 복음화를 위해 더욱 큰 각성과 선교적 열정이 필요함을 각성시켜주는 징조이다.  

■ 재림 징조의 일반적인 기능들
(1) 역사적 종말에 대한 소망을 불러일으킨다

재림을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의 심판이 가장 큰 복음이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요한계시록 6장 9~10절에 보면 매우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다섯째 인을 뗄 때 제단 아래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하나님께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하며 탄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앙 때문에 손해보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핍박받고 순교한 사람들에게 재림은 소망의 기별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자신들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신앙 때문에 상실한 모든 것이 넘치도록 회복이 되기 때문이다.

의인을 향한 심판교리가 복음이 되고 소망이 되는 것은 고난당하고 환란과 핍박에 노출된 성도가 처한 삶의 정황과 관계가 깊다. 그들이 그런 정황 속에서 목숨을 거는 자리까지 나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우리 편이시고, 반드시 재림하셔서 부활을 시켜주실 분이시고, 왕의 왕으로 심판자가 되셔서 고난당하는 그들의 한을 풀어주시는 분이시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4월 3일 너무도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조용한 장례를 치르면서 재림의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너무도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관예배 때 청평교회 윤청실 목사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매우 감동적인 예배를 준비해주셨다. 무엇보다도 재림교회에서 모본이 될 만한 장례 설교를 해주셨다. 목사님의 감동적인 설교 가운데 인용한 예언의 신이 필자와 모든 유족 그리고 참석한 조문객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마치 순간의 일처럼 말씀하셨다.”(하늘, 61).

그렇다. 재림의 소망을 가진 성도는 현재의 재난이나 고난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죽음의 자리까지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재림의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런 일은 사소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재림의 징조는 믿는 자에게는 재림에 대한 기대를 더욱 크게 키워주는 ‘영혼의 영양제’이다. 어떤 일에도 좌절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매일매일 주 안에 살아가도록 춤추며 응원하는 카카오톡 이모티콘 메시지이다. 더욱 착하게 살고, 더욱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도록 의식을 일깨워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드는 알람시계이다. 끝까지 재림의 소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전보이다. 재림의 징조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림의 소망을 확고하게 다지게 해주는 쇄기이다.

(2) 개인적 종말에 대한 영적 준비를 하게 해준다
예수께서 당시에 일어난 실로암 대참사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사건이 주는 교훈을 말씀하셨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누가복음 13:4-5).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망대 참사 사망자 열여덟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모두 죄가 커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말씀은 종말의 징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라는 말씀이다. ‘나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처럼 망한다’ 사실 수많은 재난과 사건사고 속에 악인만 죽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재난의 현장을 들여다보면서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내가 과연 저 징조, 즉 저 재난의 현장에 있었다면 오늘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숨을 거두면 그날이 주님 오시는 날임을 고백하며 하루하루를 종말이라는 의식으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이런 종말의식은 매일을 시작할 때 그날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주님을 영접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해준다. 열심히 그분을 위해 살게 만들어 준다. 또한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아침 못 일어나 심판 받게 될 자처럼 하루를 십자가 앞에서 마감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준다. 매일을 이런 의식으로 살아가기로 결심을 하게 만든다면 종말의 징조를 제대로 분별한 것이다.

(3) 모든 징조는 우리의 소명과 사명을 일깨워준다
사단의 전략은 재림신자들이 재림의 징조로 두려움에 빠지거나, 낙담하게 만들거나, 개인의 구원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교에 관심을 없어져서 종말시대에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산되게 만드는 것이 사단의 최종 전략의 핵심이다. 시골생활 기별이나 건강기별이 선교의 동기가 연결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개인적인 유익만 추구하게 만드는 매우 이기적인 기별로 전락하게 될 수 있다.

엘렌 화잇 여사의 권면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더 큰 위기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깨어 있지 않다. 하나님의 사업에 이처럼 활동과 열성이 부족한 것은 무서운 일이다. 이 죽음의 마비 상태는 사단에게서 온 것이다”(교회증언 1권, 285).

예언의 신에서 ‘시대의 징조’를 검색해보면 이처럼 사단이 영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무감각하게 만들거나 광신적이 되게 만들려고 애쓴다는 경고와 더불어, 징조를 분별하는 일이 영적 각성에 이어 선교적 사명을 실현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조가 거듭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선악간의 대쟁투의 초점 중 하나가 남은 무리가 선교하게 만드느냐 못하게 하느냐는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하나님이 징조를 주시는 목적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경고를 받고 시대의 징조를 분별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려 주는 징조들을 너무도 분명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은 산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교회증언 1권, 284).

따라서 참된 재림의 징조의 기능은 우리로 주님이 오시니 열심히 영혼구원을 위해 일하자는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져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때문이다.
– 다음 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