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가장 큰 도전 ‘교단 행정질서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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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교수는 재림교회의 분장(分掌)행정 체계는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 종말론 위기관리형 지도력의 가장 큰 도전은 교단 행정[법]질서의 확립

장병호 교수(삼육대 명예교수)

이번 코로나19(COVID-19)가 지역 감염에서 지구촌 감염으로 확산되자 인류가 경험하는 가장 보편적인 고통 중 하나는 무질서(disorder)와 불확실성(uncertainty)을 남긴 혼돈의 카오스(chaos) 생태(生態) 선물인 것 같다. 익숙했던 기존 질서가 허물어지고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한 세계가 도깨비방망이 요술로 등장한 괴물처럼 인류의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군웅이 할거하던 춘추전국시대도, 칼과 총으로 위협받던 제국주의 시대도 아닌데, 코로나19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또 조용히 우리의 안방까지 죽음의 공포를 몰고 들어왔다. 빗장을 걸어 잠근 후 “계속 우리를 괴롭힐 건가?” 아니면 “네 집[법질서]으로 돌아 갈 것인가?” 양자택일하기를 윽박지른다.

난감한 인류는 결국 식물인간처럼 모든 것을 개개인의 자유의지와 선택과는 무관하게 지금의 난국을 극복해 줄 것으로 생각되는 강력한 국가권력과 처분에 자신의 운명을 맡긴다. 이것이 지금까지 진행된 코로나19가 만든 시나리오의 요약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는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이 전쟁에서 인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등의 근원적인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하나님의 자비로 시간이 지나면서 일단 위기에서 벗어날 것으로 생각된다(계 7:1).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많은 과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이와 유사하거나 다양한 변종 바이러스가 창궐할 것이기에 그때마다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국 두 가지 길 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그 첫째는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소극적 방법으로 개개인의 신체적 면역을 증진시키는 예방적 건강 생활이고, 둘째는 이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구로 파괴되어가는 유성 지구를 본래의 상태로 복원(restoration)하는 길이 유일의 방책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여기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철저하게 타락하고 본성적으로 부패한 인간의 도덕성이 이정도의 충격에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실천에 옮길지 의문이 든다(렘 17:9; 딛 3:11; 딤후 3:7). 그 이유는 죄가 세상에 들어 온 후 인간의 변질된 본성은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기”(롬 3:16 17) 때문이다.

■ 코로나19에 대한 종말론적 위기관리 지도자의 성경적 견해
인류가 살 수 있는 유일의 길은 하나님의 사전 보호 장치(保護膜)에 도움을 받는 길이다. 면역 증진과 생태계의 복원은 하나님의 사전 보호 장치, 곧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original plan)인 법질서 안에서만 이뤄질 수 있다. 그 사전 계획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특권인 본래의 법질서(original legal order), 곧 피조물에 대한 인간이 져야할 목양(牧羊) 책임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 면에 있어서 재림교회의 신앙 질서(계 12:17; 14:12)는 타 기독교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잘 정돈된 신학과 신앙 체계를 갖고 있다. 재림교회의 종말론 위기관리 지도력은 법질서의 수호(守護)교회란 점에서 위기의 때에 빛을 발할 수 있다. 위기관리 지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쉽지 않은 지도력 가운데 하나가 지도자 자신이 먼저 이 법질서(法秩序)를 준수하고자하는 의지와 실천일 것이다.

재림교회야말로 무법천지인 카오스공동체(Chaos-community)로 변해가는 이 세상에 생명의 복음인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계 12:17; 14:12)을 갖고 또 전하는 신앙공동체다. 엘렌 G. 화잇은 법질서 수호 면에서 재림교회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로 구성된 단체”(사건, 51)라고 했으며, 이 조건이 재림교회를 타 기독교회와 구별해 남은 교회[remnant]로 부르는 것에 대해 한스 K. 라론델(Hans K. LaRondelle)은 “배타주의[exclusivism]나 승리주의[triumphalism]의 근거를 주는 것은 아니다”(Remnant, 888)라고 했다.

거듭 강조하지만 재림교회 지도자들이 코로나19와 같은 재난 중에서도 창조 시에 하나님이 주신 법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피조물의 공격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할 유일의 보호막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솔선수범하여 준수하고자 노력한다면 남은 교회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롬 9:27, 28).

성경에 비춰볼 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피조물의 보호막인 법질서에 대한 인간의 직무유기(職務遺棄)에서 시작됐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첫 명령/언약[牧羊權]은 피조물에 대한 인간의 책임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명령, 곧 첫 법이 인류를 피조물의 반란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유일의 보호막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mâlê′], 땅을 정복하라[kâbash],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râdâh]라 하시니라”(창 1:27-28, KJV, NIV).

조물주는 모든 생물, 곧 피조물을 다스리는 책임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나 범죄한 이 후 인간의 탐욕은 신성한 책임을 경홀히 여겼다. 그 결과는 피조물[ktisis]을 탄식하게 만들었다. 인간의 직무유기로 인해 박쥐가 탄식하고, 사향고양이가 절규하며, 도마뱀들이 아우성을 지르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에서 인간을 공격하게 된 것이 이번 코로나19 사건이다.

이번 바이러스의 공격에 대해 성경은 그 책임을 목양권(창 1:27, 28)을 부여받은 인간에게 돌린다. 바울은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생태신학(ecological theology) 측면에서 다룬다. 그는 “피조물[ktisis]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ktisis]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 이니라. 피조물[ktisis]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 8:19, 21, 22)라고 했다.

재림교회 성경주석은 이에 대해 “모든 천연계와 인류가 저주 아래 신음하며 더 밝은 날을 기다리는 것이 분명하다”(롬 8:19)고 요약한다. 피조물도 인간처럼 자유를 누리고 싶어한다. 재림교회의 신학과 신앙이 타 기독교회와 극명히 차별되는 것은 안식일 준수 신학과 신앙에 피조물[ktisis]을 포함시킨 것에 유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behêmâh]이나”(출 20:10)에서 육축이라는 피조물[ktisis]도 안식일의 쉼과 축복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인간의 무질서한 생활문화와 종교성은 한 때 피조물을 신으로 섬기다가(롬 1:25), 급기야는 그들이 섬기든 피조물을 잡아먹는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므로 카오스 세계(chaos world)로 만들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질서인 기별(message)을 인간 중심의 세속 문화(culture)로 신속히 그들의 삶의 방식을 옮겨가므로 현대의 포스트모던(postmodern) 세계의 근간이 되었다.

건강법과 제사법은 인간의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명을 피조물을 취하면서까지 유지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 곧 자비의 법질서였다(레 11장, 신 14장). 지금 재림교회의 지도자들이 염려해야 할 것이 있다면 곧 이런 법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비결을 재림교회의 조직과 운영질서에서 찾는 것이다.

■ 종말론 위기관리 지도자들이 눈여겨 봐야할 법질서의 누수(漏水) 현상  
재림교회 위기관리형 지도자들이 눈여겨 봐야할 것이 있다면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재림교회의 존재 가치와 그 존중성이 기별에서 문화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빨리 핵심기별이 서서히 주변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인본주의적인 문화(humanistic culture)가 대신하므로 성경적 순수 신앙공동체의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우려감을 갖게 만든다.

재림신앙의 일반화, 재림교회의 정치와 행정의 세속화 경향, 지도자들의 직업윤리의 경시, 교단의 신조와 행정질서에 대한 일부 목회자들과 신자들의 불인정 경향 등은 재림교회의 법질서, 곧 재림신앙의 누수를 촉진시키는 우려할만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이런 분위기는 오히려 연합된 선교역량을 감퇴시켜 재림교회의 선교 지평을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결국은 조직을 갖춘 유형 교회(visible church)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

그 일례로 대총회 산하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한국 재림교회는 교회의 수(2016년 기준 852곳[조직 690, 미조직 162])에 비해 목회자의 수(2016년 기준[안수 779명, 인준 72명, 전도사 45명], 896명)가 더 많다. 전 세계의 재림교회 수는 2015년 현재 8만2794곳이지만, 안수 목회자 수는 1만9301명이다(Year Book [2018], 5). 교회 수 대비 안수 목회자 수는 평균 1/4 이다.

한국 교회의 경우는 조직된 교회 수 대비 안수목회자 수는 약 5/4 이다[2016년 연례회의 자료 참조]. 2019년 1월 기준으로 총 집회소 수(836곳)와 목회자 수(877명)가 다소 줄었지만 교회 수 대비 목회자 수의 비율은 줄지 않았다(한국연합회 주소록[2019], 5). 목회자 수와 관리하는 교회 수의 적정 기준은 교회성장학자들에 따르면 목회자 1인당 100-150명이다.

재정여건과 교회성장의 상관관계가 상호 보완을 이룬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경우에는 목회자의 지속적인 증원과는 무관하게 선교 상황과 그 결실이 조금씩 열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포스터모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당연한 시대적 현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개신교회와 지역사회의 근심거리로 등장한 몇몇 신생교단들이 차별화된 기별과 독특한 선교전략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 이런 변명을 무색하게 만든다.

엘렌 화잇이 “우리의 정신을 이성(理性)의 한계 안에 두어야 하며”(2기별, 43) 재림교회를 “바벨론으로 부르는 것에 반대”(2기별, 63)한다고 천명한 이유도 재림신앙의 복음적 근거가 이성적으로 수용 가능한 법질서에 기초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2:17; 14:12)들이라는 성경적이고도 예언적인 선명한 선교 정체성(mission identity) 때문일 것이다.

재림교회의 성장이 멎고 침체의 길로 들어선 것은 사회적 생태 현상의 탓이 아니라 어쩌면 지도자들이 만든 인재(人災)일 수 있다. 그 인재란 재림교회의 조직과 행정질서에 대한 몰이해와 경시 풍조로 하나의 교회로 연합하고 결집하는 힘의 저하로 오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의 결과일 것이다. 그 일례 중 하나가 합회나 연합회 총회가 오히려 교회의 성장을 멈추게 하거나 도리어 침체를 가속화 시키는 몸살 요인처럼 보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를 사기 전에 먼저 외양간을 마련하는 것처럼 우리가 만든 복음의 질서(gospel order)를 존중히 여기는 것은 위기관리형 지도자들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자 직업윤리(professional ethics)이다.

■ 재림교회의 분장(分掌)행정 체계는 마땅히 존중 받아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가장 우려할 만한 것 중 하나는 개인화, 재택화, 소형화, 더 나아가 의식의 보수화 등, 전혀 달라지는 생활문화에서 일사불란(一事不亂)한 집단지도체제인 단일 조직구조를 가진 세계 교회로서의 한국 재림교회가 선교 행정의 순기능(順機能)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하는 문제다. 위기관리형 재림교회 지도자에게 있어 재림교회의 대의제와 회의체 조직 질서를 존중히 여기고 이를 실천하려는 자세와 노력이 더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재림교회 모든 조직의 행정 근간인 헌장(constitution), 시행세칙(bylaw), 운영정책(operating policy)은 재림교회의 성경적 교회 개념과 조직 및 통치에 조화[일치]되어야 한다(in harmony with)는 것을 일관되게 반복하여 강조한다[WP, CM 참조]. 이 성경적 개념의 결실이 재림교회를 타 교단과 차별화시키는 지금의 총회에 기반을 둔 대의제 조직행정의 틀을 만들었다.

이 조직의 특징은 회장(president)이나 어떤 최고 지도자(CEO)의 개인의 뜻이 아니라 조직의 단계나 지도자의 직분에 따라 책임을 서로 나누어지는 분장행정(shared administration)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WP[2018-19], D 05). 이런 분장행정이 사실상 교단의 동일한 선교, 목적, 신앙으로 세계교회를 형제나 자매와 같이 연합 시키는 세계적인 단일교단시스템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런 조직은 엄격한 법질서의 틀에서 이성과 윤리적인 수용과 협력아래 운영될 때 그 실효를 거둘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개인이나 어떤 특정 집단의 이해와 주장이 이기적이거나 불법적으로 작동될 때는 도리어 거대 교단의 선교사명 완수에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근래에 이르러 대총회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부분이다. 재림교회의 분장행정은 교단의 모든 일을 대표자들, 대표자들로 구성된 총회나 행정위원회, 그리고 이런 회의체에서 논의와 투표로 결정된 결의 사안을 나와 우리가 직접 참여하여 결정한 것으로 수용하는 것은 재림교인의 기본적인 공동의 윤리이자 개개인의 신앙의 덕목이다.

예컨대, 일선 교회의 운영지침인 교회요람(CM)과 세계 교회의 운영법규인 대총회 사업규정(WP), 그리고 교단의 신조와 신앙의 선언인 기본교리(FB)가 대총회의 결의 권한에 속하는 이유도 하나의 세계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목회자의 안수는 연합회가, 목회자의 채용과 안수 추천, 인사이동, 각종 평가, 급료, 신자들의 십일금 송금 등은 합회가, 모든 신자들의 교적 관리, 장로와 집사의 안수는 지역교회가 그 책임을 나누어 맡으므로 세계 교회가 하나의 교회(one church)로 운영된다. 지구라는 선교 영토(territory)도 13개의 지회, 두개의 대총회 직할 연합회, 한 개의 대총회 직할 필드가 철저히 분할하여 그 책임을 나눠지고 있다.

■ 교회의 연합은 대표자들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기본
종말론 위기관리형 지도력의 절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지도자와 신자들이 뜻을 같이해 재림교회의 조직과 행정 질서에 연합하도록 지도하고 교육하는 문제다(시 133:1-3). 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형 공동체가 연합해 어떤 일을 추진한다는 논제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재림교회는 세계 교회 특성상 대의제 시스템(representative system)이 운영의 기본 질서이다. 이 제도는 총회나 결의 기구에서 뽑은 대표자들(representatives)의 대표성을 인정하고 이들로 구성된 회의체의 결의를 존중하므로 유지된다. 개개인의 자발성에서 출발한 신앙공동체는 스스로가 만든 법규를 즐겨 준수하고 그들이 뽑은 지도력에 기꺼이 협력하므로 공동체의 조직의 목적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것은 구성원의 도덕적 가치관의 내외적 표현을 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자 재림교회 구성원의 직업윤리(professional ethics)이다. 목회자와 교역자는 재림교회라는 조직과 행정질서에 기꺼이 따르겠다는 서약 아래 교회에 고용된 사람(employees)이다. 이들은 성경의 해석, 교리의 수용, 교회의 운영, 강단에서의 설교, 예전의 집행, 목회적 활동과 제반 지도력의 발휘 등에서 재림교회의 행정질서를 따르는 것은 교역자의 기본적인 책무이자 신앙의 윤리적 실천이다.

즉 개인적인 판단, 사상, 견해, 가치관, 그리고 생활 습관조차 재림교회의 제도화되고 조직화된 표준 질서, 곧 법규, 정책, 결의에 비추어 보므로 끊임없이 재림교회의 신앙과 실천을 확인하는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근년에 이르러 교회를 떠나 자신이 몸 담았던 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지도자의 경솔한 판단과 행동은 그들이 변명하는 재림교회의 교리나 신앙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가장 기본이 되는 그 개개인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유기(遺棄)와 몰이해(沒理解)에서 온 문제일 수 있다.

코로나19 후에 닥쳐올 교단의 법질서에서 이탈하려는 독립성 개인주의와 자기중심적인 신앙문화에서도 한국 재림교회가 세계교회의 일원이자 하나의 교회로 유지될 수 있도록 종말론적 위기관리형 지도자들의 지도력이 빛을 발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께서는 교회 안에 질서와 철저한 훈련이 있어야 하며 조직이 필수적임을 보여 주셨다. 조직과 질서는 온 우주를 통하여 하나님의 모든 사업에 나타나 있다. 질서는 하늘의 법이며 그것은 또한 지상의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법이 되어야 한다. ― 목사와 복음 교역자에게 보내는 증언, 47(1902).”(사건, 46) “우리는 마지막 위기가 가까워질수록 질서와 행동의 조화가 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이전보다 더욱 조직적이어야 한다. ― 3SM, 26(1892)” (사건, 47)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