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과 2장에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창조 기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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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창조 기사가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대략이 이러 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4-6)

성경의 창조 기사의 진실성에 대한 도전 중 하나는 창세기의 첫 두 장이 서로 다른 하나님의 이름(엘로힘과 야훼)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장들이 상충되는 두 개의 창조 기사를 제공한다는 주장이다. 그밖에도 이 두 장 사이에는 다양한 불일치가 존재한다. 예컨대, 1장에는 식물이 셋째 날에 창조되었다고 되어 있고, 반면 2장에는 사람 다음에 창조된 것처럼 되어 있다. 또한 비평적 학자들은 두 장 중 어느 것도 모세가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고대의 기록 습관: 동일한 문학적 작품 안에 하나의 이야기가 두 가지 다른 형태로 들어 있는 것은 고대 시대에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고대 근동에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두 가지 형태로 말하는 문학적 전통이 있었다. 창세기 1장과 2장처럼, 수메르인의 이야기 엔키와 닌마(Enki and Nimah)는 인간의 창조를 평행되는 두 개의 부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와 유사한 구조를 아트라하시스 서사시(Atrahasis Epic)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1:31이 아니라 2:3에서 끝난다. 성경의 장과 절의 구분은 후대에 삽입되었으며, 따라서 본문을 임의로 구분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므로 다수의 현대 영어 역본들은 정확히 2:4의 가운데에, 곧 2:4a와 2:4b 사이에 간격이나 제목을 두어 실제적인 단락 구분을 나타내고 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온 식물(개역한글판에는 “채소”): 2장이 언급하는 첫 번째 요지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네 가지가 있었다는 점이다(들의 초목, 밭의 채소[식물], 땅을 경작할 사람, 그리고 비). 이러한 것들, 특히 식물과 사람은 1장에 언급된 것들과 다소 다른가?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하게 되었는가?
들의 초목: 창세기 1:12은, “땅이 풀[히브리어 데셰]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히브리어 에세브 마즈르야 제라]와 각기 종류대로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히브리어 에츠 오세 프리]를 내니”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 창세기 2:5에는, 사람을 창조하기 전에 들에 초목[히브리어 시아흐 핫사데]이 없었고, 밭의 채소(또는 식물; 히브리어 에세브 핫사데)가 “나지 아니 하였”다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 에세브가 “식물”을 가리키지만, 개역한글판의 창 1:12과 2:5에는 “채소”로 번역돼 있음).
대부분의 학자들은, 창세기 1:12과 2:5에 사용된 식물(채소)에 해당하는 단어와 구절들이 동일한 의미를 전달한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본문을 좀 더 면밀히 읽어보면, 창세기 1:12과 2:5에 나온 식물학적 용어들이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시아흐(“초목”)라는 말은 히브리어 성경에 네 번밖에 나오지 않는데, 시아흐 핫사데(“들의 초목”)라는 구절은 창세기 2:5에만 나오는 독특한 것이다. 창세기 21:12과 욥 30:4, 7의 문맥에 비춰 보면, 시아흐는 건생 식물(xerophyte) 즉 건조한 곳이나 사막 같은 환경에 적응된 식물인 것이 분명해 진다. 다시 말해, 그것은 가시가 많은 선인장 같은 식물일 가능성이 높다. 시아흐에 대한 이런 이해는, 밭의 채소 혹은 식물[에세브 핫사데]라는 표현이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함께 나오는 창세기 3:18에서 지지를 받는다. 아마도 여기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먼저 나온 들의 초목[시아흐 핫사데]과 평행을 이루는 표현으로 쓰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시 있는 식물들은 고대 근동 지방의 농부가 자신의 밭에서 일부러 경작하는 식물의 종류가 아니며, 또한 하나님이 동방의 에
㎰동산을 만들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온갖 종류의] 나무”(창 2:8)로 채우실 때 거기에 둔 식물의 종류에도 포함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4b에서 시작하는 기사에서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식물 가운데 하나는 농사꾼에게 해를 주는 가시 많은 건생 식물이었다. 그러면, 여기서 창세기의 저자가 전달하려는 요지는 무엇인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다음 식물 곧 밭의 채소(식물)를 살펴보자.
밭의 채소(식물): 창세기 2장에 나오는 다른 식물학적 용어인 에세브(식물)는 히브리어 성경에 자주 나타나지만, 에세브 핫사데(“밭의 채소 혹은 식물”)라는 표현은 2:15과 3:18에만 나온다. 창세기 3:18에서 “밭의 채소”는 죄의 결과로 아담이 먹어야 할 음식으로 구체적으로 지정돼 있고, 그것은 아담이 몸소 “종신토록 수고하고” “얼굴에 땀이 흘러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밭의 채소”는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지워진 노동을 통해서만 산출되는 식물들을 가리킨다. U. 캇수토(U. Cassuto)가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종류의 식물들은 아담의 범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그 전에는 우리에게 알려진 형태로 발견되지 않았다. 그것들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고, 현재의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인간의 타락의 결과였다.”
창세기 3:19이 명백하게 진술하는 것처럼, 이 식물들이 빵(「개역한글판」에는 “식물[食物]”로 되어 있음)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은 “밭의 채소”라는 표현이 빵을 만드는 데 사용된 중동 지방의 잘 알려진 곡류 곧 밀과 보리 등을 구체적으로 가리킨다는 것을 시사한다. 중동 지방에서 이러한 빵을 만드는 데 사용된 곡류를 경작하는 것에는 “토지를 가는” 일(창 3:23)이 요구되었는데, 이것 역시 창세기에 구체적으로 언급된 이 식물들의 또 다른 특징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두 개의 식물학적 용어 곧 “들의 초목”과 “밭의 채소(식물)”는 식물 왕국 전체를 포괄하기보다는, 경작자가 각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그 식물들의 일부 곧 경작에 방해가 되는 식물(들의 초목)과 매년 경작하는 식물들(밭의 채소)을 가리킨다.
땅을 경작할 사람이 없었음: 어떤 학자들은 또한 창세기 2:5b가 1장의 내용과 모순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1장에서 여섯째 날에 사람의 창조를 묘사하고 있는데도 2:5b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이 사람을 만들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중요한 수식 어구 “땅을 경작할”을 무시하면서 본문을 읽어, 과도하게 단순화시키는 독법이다.
창세기 1:26-30에서 사람을 창조한 의도가 땅을 경작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보다 사람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창조되었다.  더 나아가, 그에게는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가 주어졌다. 그러나 “땅을 경작하”여 먹을 것을 얻으라는 말은 전혀 없다.
“땅을 경작할 사람”은 아담의 타락 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타락 후에 아담은 그의 죄로 인해,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창 3:17)는 말을 듣는다. 그러므로 창세기 2:5의 “밭의 채소”와 마찬가지로 “땅을 경작할 사람”도 죄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타락 전에는 나타나지 않는 것들이다. 따라서 창세기 2:5b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사람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즉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땅을 경작해야 할 자)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한 사람은 타락 후에야 존재하게 되었고, 그것은 다음 장(3장)에서 거론되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장은 다음 장인 창세기 3장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발판을 세우고 있다.
비: 창세기 2:5b이 지적하는 대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마지막 것은 “비”다. 앞의 세 가지 사항들에 분명하게 드러난 것과 동일한 패턴을 따라, 비 역시 죄가 시작되기 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그러나 사람의 타락 후에 곧 바로 나타난 앞의 세 가지 사항들과는 달리, 비는 홍수가 시작되기 전에는 언급되지 않는다(창 7:4, 12). 하지만 문맥은 비 역시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결과로 생겼다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가시가 있는 관목, 경작해야 하는 식물들, 그리고 경작의 행위 등은 죄로 말미암아 인간 존재에게 내린 즉각적인 심판이었지만, 그것들은 삶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이기도 하였다. 홍수 이전 사람들의 상태가 심히 악화되어 하나님이 그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 것을 후회하고 급기야는 인류를 끝장내기로 결심하도록 한 후에야 비로소 비로 인한 최종적 심판은 이르러온다. 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은 사실 농사를 위한 수원(水源)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수단으로서 이다.

요약: 본문을 면밀하게 읽어 보면, 창세기 2장은 1장에 모순되는 창조 기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창세기 2:4-9의 요지는 1장에 묘사된 원래의 창조에 속하지 않은 네 가지 것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있다: (1) 가시 (2) 농사 (3) 경작/관개 (4) 비. 창세기 2장은 이것들 각각이 죄가 들어옴으로써 생긴 직접적인 결과로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알린다. 가시, 경작을 요하는 식물들, 음식을 얻기 위해 땅을 경작해야 하는 사람 등은 창세기 3:17, 18에서 타락 후에 즉시 이르러 온 저주 혹은 심판으로서 도입된 것이다. 비가 홍수 때까진 언급돼지 않았지만, 그것 역시 저주 곧 인류의 죄에 대한 심판으로 도래한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2:4-9은 1장과 모순된다기보다는 오히려 완전한 창조를 말하는 1장과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을 말하는 3장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Randall W. You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