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을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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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자녀 심리·정서의 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이해

극성인 양육자와 화가 찬 자녀 관계가 형성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의 관심사와 생각을 존중해 주고 미성숙한 두뇌에서 나오는 감정적인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청소년은 2차 성장이 발현되는 중요한 시기로 신체적인 발달뿐 아니라 인지, 성격, 감정과 같은 정신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입니다. 자아감이 성숙되면서 삶 속에서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자율성’이 증진되고 이러한 변화에 맞춰 이성, 미래, 학업, 또래 관계와 어울림에 대한 호기심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율성’이란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며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기 결정권을 가지기 위한 과정으로 마치 돌 즈음 아기가 걷기 시작하며 양육자로부터 멀어져 외부 세계의 탐험하는 단계와 흡사합니다. 자칫하면 양육자 입장에서는 반항적인 모습으로 여겨지기도 하지요. 이 시기의 부모님은 자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자기 존중감이 충분한 태도로 자녀를 대할지 알아보겠습니다.

청소년기 정신적 변화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
청소년기에 보이는 정신적 변화를 해부학적인 변화와 연결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뇌의 피질(겉질) 중에 이마 부위는 전두엽으로 이성적 판단, 사회성, 충동 조절의 억제, 감정 신호의 통합 및 주의 집중력에 관여하는 한마디로 ‘성격적 특성’을 규정짓는 부분입니다. 두뇌 심부에 위치한 변연계(Limbic system)는 신경 세포 수준에서 감정의 신호가 시작되고 감정 반응이 표현되는 부위입니다. 청소년기까지 두뇌의 부피는 양적인 팽창을 거치지만 그 기능은 미성숙합니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두뇌는 가지치기(Prunning)를 통해 미성숙한 세포는 걸러지고 세포 돌기들이 안정적으로 연결을 이루면서 두뇌의 발달이 완성됩니다.
   즉 청소년기 아이들의 두뇌는 커진 키와 몸무게처럼 부피는 크지만, 변연계의 미성숙으로 불안정한 감정의 반응을 보이고 이를 통합하는 전두엽의 미성숙으로 인해 때로는 충동적이고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민하고, 거부적이고 낙엽만 봐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죠.
   부모님 입장에서는 답답할 겁니다. 내가 시킨 대로 열심히 공부만 하면 인생에 도움이 될 텐데 말도 안 듣고, 어릴 때와는 다르게 거부적이고, 공격적인 언행을 보이니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아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율성’이라는 과제와 함께 ‘생물학적인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청소년과 자율성
생물학적인 변화를 이해하셨다면 이제는 자율성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내가 남과 다른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존재임을 표현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부정’입니다. 남의 생각에 동조하기만 한다면 ‘나’라는 색깔이 없는 것이겠지요. ‘내 생각은 이래!’, ‘너와는 다르게 이렇게 할래!’, ‘네 생각이 틀렸거든 내가 맞거든!’, ‘아니야, 싫어!’라는 말을 통해 타인을 거부함으로써 내가 부각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나는 나야, 너와는 달라!’라는 말이 괜히 있을까요.
   문제는 또래 집단에는 잘 융화되며 관심사가 공감되고 공유되는 반면에 아이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양육자, 선생님과 같은 권위자에 대해서는 ‘부정’하며 자율성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지요. 왜 유독 사춘기 때이러한 반항적인 문제가 불거질까요? 원인은 자율성의 억압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답은 태어날 때부터입니다.
   아기가 태어나 배고파 울면 양육자가 얼마나 기민하게 반응하는지(충족되고자 하는 욕구의 결핍), 걸음마로 여기저기 다닐 때 부모의 입장에서는 위험하지 않도록 아이를 제지하고 원래 자리로 옮겨 놓는 것(분리와 탐험에 대한 자유의 억압)뿐 아니라 옷도 부모가 골라 준 것만 입어야 하고, 먹는 것도 차려 준 것만 먹어야 하고, 학습지를 안 하면 혼나는 등과 같이 아이의 입장에서는 자율성이 존중되지 않는 많은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어릴 때는 부모에게 쉽게 굴복하였지만 몸과 생각이 커서 힘이 생긴 사춘기 시기에는 더 이상 제지당하지 않고 자율성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억압되어 왔던 것에 대한 복수의 줄다리기를 시작하지요. ‘더 이상은 당하지 않아!’, ‘엄마 아빠가 뭔데!’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이런 변화를 겪는 아이에게 과연 이전처럼 강요하고, 강제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요? 아니겠지요. 양육자, 권위자도 아이의 변화에 맞추어 존중심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어른인 내가 볼 때는 공부가 답인데, 모범적이고 예의 바른 것이 답인데 ‘이 철없는 녀석을 어찌할꼬’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다시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시길 권유드립니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자녀를 대하기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부모님과 선생님의 입장에서의 가르침과 방향 제시가 아닙니다. 저만의 생각이 형성되고 관심사와 흥밋거리들이 보이는 시기에 공포와 권위를 앞세워 ‘공부’라는 길을 제시한다면 아이는 결국 반항하며 비행 행동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극성인 양육자와 화가 찬 자녀 관계가 형성되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의 관심사와 생각을 존중해 주고 미성숙한 두뇌에서 나오는 감정적인 표현을 이해하고 받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억지로 바른길을 강요해도 절대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니 말이죠.
   말은 쉽지만 현실에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짧은 이 청소년기는 그동안 쌓였던 결핍과 억제를 재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아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이해받고 마음의 공감을 통해 존중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자율성으로 세상을 돌아다니다 보면 저마다의 동기를 가지고 원래의 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자유와 공감의 경험이 충족되면서 스스로 알아서 본인만의 미래를 위해 충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삶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은 자율성이 조정 가능한 성숙한 인격체가 되는 과정입니다.
   이때 필요한 부모의 마음가짐으로는 내가 함부로 할 수 있는 나의 아이가 아니라 ‘어려운 남의 아이, 혹은 성인’ 대하듯 하는 태도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스케줄 대로 공부해라, 이제 그만 자라, 숙제해!’라는 말보다는 ‘Hey, 요새 뭐가 재밌니?’, ‘적당히 즐기고 해야 할 건 마무리하리라 믿는다.’는 식의 자율성과 성취에 대한 칭찬하기로 아이를 존중하는 첫걸음을 시작해 보세요.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께 다시 반추하여 묻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훌륭한 부모입니까? 자녀의 영어 실력, 수학의 성적으로 자녀의 수준을 평가하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그들(아이)은 이내 지쳐 당신에게 실망을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