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엘렌 화잇과 제임스 화잇이 자신들의 무덤에 오벨리스크를 두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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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과 그녀의 저술들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그 답변들
101 Questions about Ellen White and her Writings

[본 연제는 최근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의 공식 사이트에 가장 많이 오른
네티즌들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것임]


질문 11. 왜 엘렌 화잇과 제임스 화잇이 자신들의 무덤에 오벨리스크를 두었는가?

네티즌의 질문: 저는 엘렌 화잇과 그녀의 남편이 자기들의 무덤에 각각 오벨리스크를 두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에 대한 역사를 말해주시겠습니까?

답변: 어떤 사람들은 화잇 부부의 가족 묘지에 있는 오벨리스크 모양의 묘비를 보고 놀람과 염려를 표현합니다. 오벨리스크는 거기 묻힌 어떤 개인의 묘비라기보다는 묘지의 중심부에 있어 가족을 표시하는 비석으로 쓰입니다. 그러나 오벨리스크가 애굽의 이교 숭배나 기타 의문스러운 생각과 관련되기 때문에 염려를 자아냅니다. 그러나 19세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오벨리스크는 당시 묘지의 일반적인 표지였습니다. 화잇의 가족묘지 주변을 둘러보면, 2-30개 정도의 오벨리스크 형태로 된 묘지 표지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재림교회의 초기 선구자들 중 몇 분이 묻혀 있는 뉴욕의 로체스터(Rochester)의 공동묘지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프리메이슨 신봉자들(Freemasons)도, 고대의 태양숭배 종교의 신봉자도 아니었습니다. 공동묘지에 가족 표지로 오벨리스크를 사용한 것은 단순히 일반적인 관행이었지, 프리메이슨이나 이교 신앙을 인정하는 증표는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재림교인들도 그러한 오벨리스크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제임스 화잇이 1881년에 작고한 후 여러 해 동안 대총회장으로 봉직한 조지 버틀러의 편지들 가운데서 이 문제와 관련된 문건이 근자에 발견되었습니다. 1884년 2월 12일 버틀러 목사는 화잇 여사에게 이렇게 썼습니다. “지난주에 당신의 아들 윌리의 제안으로 당신 남편의 묘지에 세우기 위해 당신이 이미 보셨던 검은 색 화강암 비석을 주문했습니다. 윌리는 저에게 그것에 대한 비용을 당신에게 청구하라 합니다.”
이 편지는 화잇 여사가 이미 선택한 비석을 보았고, 아마도 W. C. 화잇도 보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W. C. 화잇은 버틀러 목사가 그것을 구입하는 것에 대해 승인했습니다. 그해 2월 10일에 버틀러 목사로부터 W. C. 화잇에게 온 편지는 “개석(蓋石) 및 기타 비석들과 함께” 그 묘비에 대해 논의하면서, “당신이 비문(碑文)을 보내는 즉시 그것을 세울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화잇 가족이 이 비석을 고르는 일에 관여했음이 분명합니다.
20년 후, 1904년에 화잇 여사가 제임스 화잇의 비석과 관련된 다른 제안에 관해 썼습니다. “내 남편이 무덤에 묻힌 이후로 그의 친구들은 깨진 기둥 하나를 그의 비석으로 세우는 것에 대해 생각하였다. 나는 ‘절대, 절대로 그래선 안 됩니다. 그분은 한 손으로 세 사람의 몫을 하신 분입니다’라고 말했다”(가려뽑은 기별 1권, 105쪽). 아마도 친구들의 제안과는 다르게, 그녀는 모양이 대칭구조로 잘 다듬어진 비석이 가족 묘지에 놓인 것을 보고 퍽 기뻐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오벨리스크와 프리메이슨이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은지 묻습니다. 화잇의 가족 묘지에 오벨리스크 형태의 비석이 있는 것을 보고 소수의 사람들은 그녀도 프리메이슨 운동에 가담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것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화잇 여사는 프리메이슨을 터놓고 반대한 분입니다. 그녀가 호주에 있을 때, 프리메이슨에 깊이 휘말린 한 재림교회 직원에게 그들과 관계를 끊으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프리메이슨 조직에 연루되는 것을 만류했습니다(참조 복음전도, 617-623; 가려뽑은 기별 2권, 120-140).
그렇다면 왜 화잇의 가족 묘지에 오벨리스크가 놓여 있을까요? 화잇 여사가 프리메이슨이나 태양 숭배자들이 오벨리스크를 그들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았든 몰랐든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그것을 본질적으로 프리메이슨이나 이교의 상징으로 여기지 않았음이 분명합니다. 상징이란 사람들이 어떤 상징들이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 자체는 원래 로마의 압제와 잔인성의 혐오스런 상징이었으나, 오늘날 온 세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속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어떤 것의 상징의 의미는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제임스 화잇이 <에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쓰 헤럴드(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를 격주지로 발행하기 시작했을 때(1853년 9월에 주간지가 됨), 각 호는 발행일과 요일의 표준 이름(월요일, 화요일 등)을 표시했습니다. (당시엔 발행 요일이 자주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그는 이런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1853년 5월 12일 목요일”이라고 적힌 호가 발행된 지 2주 후에 “1853년 5월 26일 다섯째 날”이라고 적힌 호가 출판되었습니다. 그후 수십 년 동안 이 간행물은 발행일을 “다섯째 날” 혹은 “셋째 날” 등으로 표기했습니다. 요일의 이름들이 이교의 신들의 이름을 따라 지어졌다는 사실에서 나온 우려 때문에 이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1880년 1월 1일자에 이 간행물은 다시 요일의 표준 이름(월요일, 화요일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우리의 선구자들이 그런 이름들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믿음의 타협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이교 신들에 대한 자신들의 헌신을 표현하기 위해 요일의 표준 이름을 사용하진 않습니다. 그런 이름들은 원래 의미에 상관없이, 더 이상 그런 신들만을 상징하진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과거에 오벨리스크가 비교(秘敎)의 의미를 전달했을 수도 있으나 19세기엔 그런 의미가 프리메이슨 외의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에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화잇 여사 자신도 그러한 신조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