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죄를 사할 권세를 교회에게 주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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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예수께서 죄를 사할 권세를 교회에게 주셨는가?

“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

마태복음 16:19은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 지경에서 한 고백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의 일부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신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다(마 16:15, 16). 이 고백에 대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응하셨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7, 18). 그런 다음 우리가 논의하려는 본문이 나온다.

교회가 세워진 반석은 그리스도임: 이 본문은 특히 프로테스턴트 종교개혁 이래로 그리스도인 가운데서 논쟁의 주제가 되어왔다.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로마가톨릭교회 사용하여, 예수님에 의해 그리스도 교회의 수장으로 임명된 베드로의 후계자가 교황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이 본문이나 신약의 다른 본문들에서 교회가 세워진 반석이 베드로라고 제시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다. “음부의 권세”에 저항하기 위해, 교회는 베드로를 포함한 인간보다 더 견고한 기초 위에 세워져야 했음이 분명하다(참조 마 16:21-23). 교회의 기초는 바로 그리스도이다(고전 3:11; 엡 2:20; 벧전 2:4).

“매고 푸는” 권세는 교회에 속함: 마태복음 16:19에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지만, 18:18을 보면 16장에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은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기도 했다. 따라서 “매고 푸는” 권세는 그리스도의 온몸 곧 교회에게 주어졌지, 교회 안의 특정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18장의 문맥은 “매고 푸는” 권세가 교인들을 교화시켜야 할 교회의 책임을 가리키는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16:19; 18:18은 징계 및 용서와 관련하여 무한한 권세를 교회에게 제공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16:19은 교인들의 허물을 사하거나 사하지 않을 수 있는 절대 권력을 부여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 본문에서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은 교회의 결정들이 이미 하늘에서 이뤄진 결정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누군가의 죄를 사하는 것은 십자가에서 이뤄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초하여 가능케 된 하나님만의 권세이다. 용서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교인들을 교화할 수 있는 권위를 행사하도록 위임받은 자들에게 표준이 되어야 한다.
본문은 교회 앞에 중대한 책임을 부여 하고 있다. 교인들을 징계할 때,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적인 편애나 편견에 지배되어서는 안 된다. 죄를 범한 교인이 회개하면 교회는 하늘 아버지의 본을 따라 기꺼이 용서해야 한다. 그러나 죄를 범하는 형제나 자매가 회개하기를 집요하게 계속 거부하면 교회는 회개를 유도하기 위해 구원을 위한 마지막 시도로 교회의 징계를 사용해야 한다. “쫒아내다”라는 단어(헬라어 에크발로; 참조 요 9:34, 35; 요삼 10절)가 여기에 사용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교회가 회개하지 않는 신자를 마치 “이방이나 세리”를 다루듯이 자비로써 다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그런 신자들을 세상에 속한 죄인들을 대하듯이 대하고,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그들을 교회의 공동체 안으로 돌이켜야 한다는 것이 여기서 예수님이 뜻하신 바이다. 복음서에서 이방인이나 세리는 예수님의 간절한 사랑의 대상이었고, 그분이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음을 기억하라(눅 15:1, 2).

“베드로에 관한 로마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해 개신교회가 갖고 있는 실질적인 난제는 로마의 초대 주교로 여기는 베드로에게 나온 단독 사도적 계승에 대한 개념이다. 이런 교리는 베드로가 초대 교황이며 로마교회가 다른 그리스도 교회 위에 수위권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마태에겐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베드로가 다른 사도들의 대표로서 말하면서 자주 실수를 자행했기 때문에 마태는 베드로가 무오하다는 것이나 교회에서의 단독적 권위라는 개념을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다(마 15:15; 16:16; 17:4, 25; 18:21; 19:27; 26:33-35; 참조 행 11:1-18; 갈 2:11-14). 마 18:18에서 매고 푸는 것은 베드로가 아니라 교회의 기능이다”(David L. Turner, Matthew, Baker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8], 407).

사제들이 죄를 사하는 것은 성경적이 아님: 요한복음 20:23에 나온 예수님의 진술에 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다시 한 번 예수께서는 교회의 행동이 하늘에서 이미 이뤄진 행동을 반영해야 함을 지적하신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고해성사와 사제들이 주는 죄사함의 관행을 지지하기 위해 이 본문을 사용해 왔으나 본문 자체 안에는 그러한 관행을 말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하신 용서가 무엇인지는 문맥으로 결정해야 한다. 부활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그런 다음 그분은 그들에게 성령으로 권능을 입히시고, 세상에 나가 죄를 사하기도 하고 그대로 두기도 하라고 명하셨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20:23). 누가도 같은 문맥에서 비슷한 예수님의 진술을 기록한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눅 24:47). 이 진술은 요한복음 20:21-23의 의미에 추가적인 통찰을 준다. 그 본문은 예수께서 교회에 권위를 부여하신 것은 죄 사함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회개와 용서의 기별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함이었음을 시사한다. 즉 오순절에 베드로에 의해 용서의 복음이 전파되었다(행 2:38). 교회는 복음에 반응하는 자들을 신자의 공동체에 받아들여 그들에게 용서의 복음을 전파할 책임이 있다. 이와 함께, 교회는 죄된 상태에 계속 머물러있기로 선택하여 회개의 !
초청을 거절하는 자들에겐 심판의 기별을 전파할 사명도 받는다.

Ranko Stefanov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