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에 나온 새 언약은 참으로 새로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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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예레미야에 나온 새 언약은 참으로 새로운 것인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1-34).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행위 언약” 곧 “옛 언약”과 신약의 “은혜 언약” 곧 새 언약을 구분한다. “행위”와 “은혜”는 많은 해석자들에게 두 가지 구원의 방법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가리키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이런 구분은 타당한가? 옛 언약과 새 언약은 구원에 이르는 별개의 방법으로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는가?

선지자들과 새 언약: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오직 하나의 언약 곧 영원한 언약 또는 은혜 언약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는 언제나 인류를 구원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곧 은혜이다. 히브리서 8장에 거의 축자적으로 인용된 예레미야 31:31-34은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 연속성의 요소들을 논하기에 앞서, 예레미야 31:31에서 언약이 처음으로 “새 언약”이라고 지칭되었지만 예레미야 시대 이전에 이미 다른 선지자들도 이 새 언약에 대해 말했음(호 2:18-20)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약에서 새 언약을 언급할 때면 새 마음과 관련된 풍부한 진술들을 떠올리게 된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며(렘 24:7), “한 마음과 한 도”(렘 32:39)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고(겔 11:19),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실 것이다(겔 36:26). 이런 진술들은 새 언약이 인간 존재의 삶에 효력을 줄 때 일어날 변화를 떠올리게 한다.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 있는 연속성: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고대 이스라엘과 맺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연속성이 나타난다.
1. 하나님은 동일한 하나님임: “내가 언약을 맺으리라.” 새로운 것을 개시하고, 당신의 계획을 어그러뜨리거나 당신의 위대한 선물을 거절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풀고자 하시는 분은 항상 하나님이시다. 성경의 하나님을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언약의 개시자이시다.
2. 언약의 대상도 동일함: 선지자는 새 언약이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맺어질 것이라고 명백하게 말한다(렘 31:31, 33).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을 보고 “새 언약”이 고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않았다. 홍수 전 언약은  노아와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방주를 통해 구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구원이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제공된 것은 “모든 족속이 복을…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창 12:3).
3. 율법도 동일함: 새 언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진술은 의미심장하다. 아담, 아브라함 등과 맺은 이전의 언약들, 특히 시내산에서 고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나타난 공통적인 요소는 하나님의 율법이다. 예레미야에서 적절하게 “나의 법”이라고 불린 하나님의 율법(렘 31:33; 참조 시 89:30; 사 51:7; 렘 6:19; 겔 22:26; 호 8:12)은 시내산에서 돌비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참조 출 24:12; 31:18; 34:1, 28)을 가리켰다. 돌비는 사실상 “언약”이라 불리기도 했다(참조 왕상 8:21). 이 하나님의 율법은 흠이 없고, 따라서 은혜와 대체함으로써 제거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율법은 변함이 없고 영원하다(마 5:17, 18).

“바울이 옛 언약/새 언약의 개념을 논할 때 자주 구약과 신약으로 대표되는 영적 역사의 두 역사적 기간이 아니라 매우 다른 두 개의 종교적 경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Skip MacCarty, In Granite or Ingrained? [Berrien Springs, MI: Andrews University Press], 81).

4. 마음에 기록된 법: 이것은 신약에만 나오는 개념은 아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제2 세대들에게 율법을 반복하여 설명한 후에,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라고 말한다(신 6:5, 6; 참조 30:6, 11-14). 다른 구절들도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마음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고 언급한다. 거듭거듭 이것이 “마음과 성품”에 이뤄짐을 알 수 있다(신 4:29; 6:5; 10:12; 11:13, 18; 13:3; 26:16; 30:2, 6, 10). 백성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고 더 이상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진다(신 10:16). 하나님의 법을 인간의 마음에 기록하기 위한 하나님의 활동은 우리 속에서 일어나는 그분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말한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마음에 법을 기록하는 그분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옛 언약”과 “새 언약” 공동체의 일원 사이에 있는 연속성은 아브라함의 육신적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에 그분의 법을 기록하도록 선택하고 그것을 전적인 의지의 일부로 만들어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
求신자 각자로 말미암는다.
5.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는 것이 언약을 맺는 목적이다(렘 31:33; 참조 7:23; 32:38). 시내 언약도 같은 공식으로 묘사되었다(출 6:7; 레 26:12; 신 26:16-19 등).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그분의 목적은 고대 이스라엘에겐 단명했던 이런 약속의 관계가 새롭게 되고 회복되어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다.

새 언약에 나타난 새로운 요소들: 그렇다면 연속성을 말하는 이런 점들에 비해,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1. 새 언약에 있는 완전히 새로운 점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언약이 비준되었다는 것이다. 언약에 들어 있는 약속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엔 성취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2. 전에는 복음을 믿지 않았으나 지금은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믿음의 이스라엘 곧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개방된 공동체에 접붙여졌다(롬 11:13-24; 엡 2:12-19).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든 이방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갈 3:28) 모든 믿는 자를 위해 “새 언약”을 중보하신다(히 9:15). 이스라엘 민족과 맺어진 구약의 언약이 신약에서는 전 인류를 위해 보편화되었다.

“새 언약 아래서도 영생을 얻기 위한 조건은 옛 언약 아래서와 마찬가지로 온전한 순종이다. 옛 언약 아래서는 율법에 명시된 대로는 속죄할 수 없는 대담하고 참람된 성질의 죄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새롭고 더 나은 언약에서는 그들이 믿음으로 그분을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율법을 범한 것에 대해 율법을 충족시키신다. ‘그분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자신들의 죄를  제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여 그분께 나아오는 모든 자들에게 자비와 용서가 보상으로 주어진다. 더 나은 언약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정결함을 입는다.”(Letter 276, 1904년).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의미: “새”의 반대는 “옛”이다. “옛”이라는 말은 먼저 존재했거나 오랫동안 계속하여 사용된 것을 말한다. 또한 그것은 흔히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나 낡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오래된 것을 가리킬 수 있다. 그러나 성경 언어의 의도, 목적 등을 이해하려 할 때 현대의 의미를 성경적 용례에 덧씌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레미야 31:31의 “새 언약”과 관련하여 “새”라는 용어는 히브리어로 하다쉬이다. 이 히브리어 용어는 “갱신하다”, “회복하다,” 그리고 이전에는 같은 성질과 같은 방식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어떤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 의미를 모두 반영하여, “새 언약”은 단순히 “갱신되고” “회복되었”으나 지금은 전과 동일한 성질 및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은 특성들을 갖게 된 것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3:6에서 사도 바울은 의문으로 된 “옛 언약”과 대조하여 “새 언약”은 영의 언약임을 시사한다.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6). 여기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의문”(고후 3:6)은 율법의 글자를 말하는데 이는 각 개인의 안이 아니라 밖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이 “의문”이 외부에 남아 있고 성령을 통해 마음에 기록되지 아니하면 정죄만 불러올 뿐이다. 마음에 기록된 율법은 구원을 주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온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성령이 생명을 부여한다. 성령은 율법을 마음에 기록함으로써 그것을 각 개인 속에 내면화한다. 따!
라서 이 언약의 새로움은 히브리서 8:6에 나온 대로 “더 나은”이라는 말로 그 특징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오직 하나의 복음: 신약이 새로운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갈라디아서 1:6-9과 히브리서 4:2은 오직 하나의 복음 밖에 없음을 천명한다.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을 이루는 데 두 가지 별개의 방법을 낳은 것인데, 하나는 율법을 통해서, 다른 하나는 은혜를 통해서 구원을 이룬다. 디모데후서 3:14, 15에서 바울은 힘 있게 주장한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성경은 구약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성경 전체가 구원에 기초가 된다(딤후 3:16).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은 우리의 보호벽과 방책이 되어야 했다…이 언약은 주께서 고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던 때만큼 지금도 같은 효력을 지니고 있다.” (God’s Amazing Grace, 142).

결론: 역사를 통해 줄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안하신 언약은 동일하게 영원한 언약이었다. 언약과 관련하여 “옛”과 “새”라는 말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서로 다른 방식들이 아니라 백성들의 반응과 경험을 가리킨다. 예레미야는 개인이 새 언약의 경험으로 산다면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새겨진다고 강조한다. 율법은 더 이상 외부에 있는 돌비에 기록된 것이 아니다. 각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그것을 마음과 성품에 내면화시켜야 하는데, 그럴 때 그 언약은 새롭게 된 개인 및 세대와 더불어 새로운 것이 된다.

Michael G. Ha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