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화잇이 실수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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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화잇과 그녀의 저술들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그 답변들
101 Questions about Ellen White and her Writings

[본 연제는 최근 엘렌 화잇 유산관리 위원회의 공식 사이트에 가장 많이 오른
네티즌들의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을 정리한 것임]


질문 5: 엘렌 화잇이 실수를 했는가?

네티즌의 질문: 저는 엘렌 화잇의 저술들을 옹호하는 한 웹 사이트를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약간 놀라게 한 말이 하나 있습니다. “엘렌 화잇도 잘못을 했다”라는 대목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녀의 저술의 어떤 부분이 사실이고 어떤 부분에 잘못이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습니까? 사실, 그녀는 잘못처럼 보이는 어떤 것들에 대해 말했다고 생각되는데, 그것들이 그저 잘못처럼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잘못인지 알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소설, 극장, 반지를 끼는 것, 테니스 같은 운동 등에 관해 그녀가 말한 것입니다.

답변: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질문은 “엘렌 화잇이 교회에게 잘못된 권면을 했는가?”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러한 권면은 하나님의 뜻이라기보다는 그녀의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들에겐 잘못된 진술처럼 보이는 몇 가지 예를 제시했는데, 제가 보기에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라이프스타일(lifestyle)과 관련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정당화하려는 인간적 경향에 매여 있습니다. 혹자가 다가 와서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에게 뭔가 잘못이 있다고 결론짓는 버릇이 있습니다. 엘렌 화잇은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선입견이나 특정한 생각이 증언에 의해 책망을 받음으로써 반대를 받게 되면 즉시 증언들을 구분하여, 무엇이 화잇 자매의 인간적 판단이고 무엇이 주님의 말씀인지를 판별하기 위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려는 부담을 갖는다. 자신들이 이미 품고 있는 생각을 지지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고,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잡는 증언들은 인간적인 것 곧 화잇 자매 개인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권면을 효력이 없게 한다(원고, 1889년 16[가려뽑은 기별 3권, 68쪽]).

당신이 말한 홈페이지에 링크된 주요 사이트 중 하나가 “엘렌 화잇은 잘못을 했는가?”라고 말합니다. 거기를 클릭하면, 그 질문에 대한 간단한 답변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화잇도 실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하는데 그 첫 번째 문단을 보십시오.

엘렌 화잇 자신도 역사적인 세부사항, 연대 등과 같은 정보에 대해 그녀가 실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화잇은 자신이나 성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펜”(pen)이 아니라 “기록자”(penmen)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흔히 비평가들이 지적하는 성경의 연대기적 불일치가 그런 예들 가운데 하나입니다(http://www.ellen-white.com/EllenWhiteMistakes.html)

바로 이런 것들이 그 웹 사이트가 말하는, 화잇이 했다고 생각되는 실수들의 종류입니다(역사적 사항이나 연대 등). 한번은, 화잇이 파라디아스 밸리 요양병원(Paradise Valley Sanitarium)에 40개의 방이 있다는 식의 언급을 했습니다. 이를 포착하여, 한 남자가 그 요양병원에는 38개의 방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엘렌 화잇에 대한 그의 신뢰를 완전히 잃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화잇은 일반적인 문제를 영적인 문제와 같은 수준에 놓는다고 그를 꾸짖었습니다(가려뽑은 기별, 1권, 38, 39쪽을 보라). 화잇은 일반적인 모든 문제에 관해서는 영감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에게 보낸 영적인 교훈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그녀는 단순히 자기의 사적인 견해가 아니라 주께서 자기에게 주신 교훈들을 전달했다고 이해하였습니다.
때때로 특정 상황이 변함에 따라, 그녀가 받은 특정 교훈의 적용도 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세기의 어떤 시기에 화잇은 재림교인들이 자전거를 구입하는 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재림교인들은 자전거를 사고, 자녀들에게도 사줍니다. 그렇다면 화잇의 권면에 잘못이 있습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그녀는 한 사람의 장난감으로 보여주거나 경주하는 것 외엔 다른 목적이 없는데도 자전거를 사기 위해 큰돈을 지출하는 것에 항의 합니다(당시엔 자전거를 사려면 몇 달치의 봉급에 맞먹는 비용이 들었음). 요즘도 어떤 자전거는 그런 범주에 들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적당한 가격이며 건강을 위한 휴양이나 운송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상황이 변했고, 따라서 그 권면의 적용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자전거에 대해 준 권면은 오늘날에도 과도한 소비를 하는 것들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묻는 예들과 관련하여(자전거, 반지 끼는 것, 극장 등), 그런 권면에 들어있는 세부적인 사항들의 이면에 어떤 중요한 원칙들이나 영적 교훈이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그러한 원칙들이 적용될 수 있는 방식에 영향을 줄 만큼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 변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당신이 언급한 다른 한 예를 보면, 화잇이 원칙적으로 극장가는 것을 반대했는데, 그 이유는 당시 그곳이 도덕적으로 좋지 못한 면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서, 오늘날의 극장(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포함하여)은 그리스도인이 들어가서 주님께 이끌릴 만한 분위기로 개선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늘에 적합한 사람이 되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이끌 수 있는 성령의 통로가 되기에 더 나은 그리스도인 경험이 필요하다고 여기십니까? 아니면, 극장이 우리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을 만한 죄들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우리가 화잇의 권면의 기저에 흐르는 영적 원칙들을 분별한다면, “극장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서 건전한 오락을 추구할 곳인가?”라고 자문해 볼 것입니다.
제 생각엔, 당신이 물은 상황들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영적 원칙들을 찾는다면 그 권면이 주어졌던 당시에도 잘못이 없었고 그런 원칙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고 하여, 그 권면들이 인기 있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모두는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원하는 것이 신나고 재미있으며, 따라서 그런 것을 바람직한 것으로 정당화하며, 일반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행하는 것들을 따라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군중을 따르거나 우리 자신의 정욕이 시키는 것을 따르라고 부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특정 상황에서 주어진 권면의 영적 원칙이며, 또 이 시대에도 적용될 교훈인지 스스로 생각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