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엘렌 G. 화잇:1888년 미니애폴리스 대총회 이전과 이후의 개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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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칠일안식일예재림교회의 공동 설립자 중 하나인 엘렌 G. 화잇은 세계에서 종 교적 주제에 관하여 가장 많은 저술을 한 사람들 중에 든다. 그녀가 좋아하던 주 제 중 하나는 구원을 위한 하늘의 계획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를 얻음 이었다.
1888년의 대총회가 엘렌 화잇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관한 질문들이 제 기되었다. 그 총회가 교회에게 분수령이 되었듯이 화잇 여사 개인에게도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는가? 그녀는 총회 전에 이렇게 가르치고, 총회 중에는 저렇게 가 르치고, 총회 후에는 또 다르게 말을 바꾸었는가? 그녀의 가르침에 변화가 없었 다면, 강조점에는 변화가 있었는가?
필자는 이 질문에 답하려고 노력하면서 엘렌 화잇의 <리뷰 앤드 헤럴드>와 <싸 인즈 오브 더 타임즈>의 기사들과 그녀의 책들에 의존하였다. 필자는 1888년 이 전이나 이후에 그녀가 쓴 것을 모두 섭렵할 수 없었지만, 비록 총망라된 것은 아 니지만 이 연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그녀의 연구 를 적절히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여러 차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라는 용어 속에 엘렌 화잇은 무엇을 포함시켰는가? 그 녀는 1895년 5월 1일 타스마니아의 호바트로부터 대총회장 올레 A. 올슨 목사에 게 편지를 썼다.
“주님께서는 크신 자비로 자기 백성에게 가장 귀한 기별을 보내셨다. …이 기별

은 온 세계 앞에 높이 들리신,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신 구주를 더욱 돋보이게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보장이신 분 안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를 제시하였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를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 의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는 중에 나타난다.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시야에서 놓쳐버렸다. 그들은 그분의 신격, 그분의 공로, 인류 가족을 위한 변함없는 사랑에 그들의 눈이 향해지도록 해야 하였다. 자신의 의라는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선물을 무력한 인간에게 나누어 주시므로 풍성한 선물을 사람들에게 공급하도록 모든 권세가 그의 손에 주어졌다. 이것이 하나님 께서 세상에 주시라고 명령하신 기별이다. 그것은 큰 외침으로 더불어 선포되어 야 하고, 그분의 성령의 부어 주심이 크게 임하게 되는 셋째 천사의 기별이다.”(목 사와 복음교역자에게 보내는 기별, 91-92)
여기서 엘렌 화잇은 “보장이신 분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하여 그 리고 “값을 매길 수 없는 자기의 의라는 선물을 나누어 줌” 즉 성화에 관하여 말 하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가 주요 연구 주제가 되었던 목회자 학교의 마지 막 날에 준비된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고 제목이 붙여진 원고에서 엘렌 화잇은 형제들에게 이렇게 권하였다.

“많은 이들이 칭의와 성화를 구분하는 세세한 내용을 정의하려고 애쓰는 과오 를 범하고 있다. 이 두 용어의 정의를 위하여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추리를 들여 오고 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중요한 문제에 관하여 왜 영감보다 더 자세하 게 말하려고 노력하는가?”(1891년 원고 21; SDABC 6:1072)
엘렌 화잇이 칭의와 성화를 둘 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큰 제목 아래 둔 것 이 분명한 것 같다. 1890년대 중 몇 차례 그런 개념을 서술하였다,
“우리 희망의 유일한 근거는 우리에게 입혀진 그리스도의 의에 있고 또한 우리 속에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분의 의에만 있는 것이다.”(정로의 계단, 63).
“우리로 의롭게 되도록 하는 의는 입혀 주신 것이다. 우리로 거룩하게 되도록 하는 의는 나누어 주신 의이다. 전자는 하늘에 대한 권리 증서이고, 후자는 하늘에 대한 적합성이다.”(RH, 1895.6.4. 353).
“하늘에 들어가는 자격과 적합성은 그리스도의 의 안에 있다.”(시대의 소망,300)
“그의 죽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되었고, 우리 삶(생명) 속에 이루어질 그 의 삶(생명)에 의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ST 1903.6.17. 370)

엘렌 화잇이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특정한 이해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의 부분이 되도록 고려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녀가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이 우리에게 모든 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연구 제목”이라 고 증거하였지만, 우리 모두가 주님의 인성에 관하여 동일한 견해를 가져야 한다 고 주장한 적은 결코 없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신비로서 아무도 그것 을 온전히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그녀의 언급을 이 연구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꼈다.

엘렌 화잇의 가르침의 일관성
1907년 엘렌 화잇은 그녀의 글이 하나님의 말씀과 “절대로 배치되지 않는다.” 고 주장하였다. 그녀가 쓴 것에는 “이단적인 문장이 하나도 없으며,” “진리의 바 른 사슬이 있다.”고 그녀는 선포하였다. (가려 뽑은 기별 제3권, 32, 52) 다시 말하 여 그녀는 1888년 이전이든지 이후든지 모든 교리에 관한 그녀의 가르침은 신뢰 할 만하다고 느꼈다. 그녀의 만년에 그는 편집자들이 그녀의 초기의 글들을 자 유롭게 재인쇄하도록 허락하였다. 1889-1913년에 시조는 시조, 리뷰, 증언 등에
1874-1887년에 이미 나왔던 것 중 71개를 재인쇄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므로 엘렌 화잇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는 것을 초장에 천명할 수 있다. 해가 바뀌면서 다른 교리들도 바뀌지 않았다.
이 연구는 본질적으로 엘렌 화잇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 는 미니애폴리스 이전, 이후의 가르침을 비교할 것이고, 미니애폴리스 총회 자체에서 그녀가 전한 설교를 가리킬 것이다. 엘렌 화잇의 신학이 1888년을 기점으로 바뀌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요구
1888년 이전과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하늘나라에 들어갈 사람에게 완전 한 의를 요구하신다고 엘렌 화잇은 주장하였다.

1888년 이전

하나님은 모든 백성에게 순종 즉 모든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하나님은 예전처럼 지금도 하늘에 들어갈 유일한 자격으로 온전한 의를 요구하신다(RH1886. 9. 21. 594).
하나님은 지금도 에덴의 거룩한 부부에게 요구하셨던 것 즉 요구(계명)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요구하신다. 그분의 법은 만세를 통하여 동일하다. 구약에서 제 시되었던 의의 위대한 표준은 신약에 와서 낮추어지지 않았다(RH 1886. 10. 5.610).

1888년 이후

하늘에 들어가는 자는 흠이나 주름이나 그와 같은 것이 없는 품성을 지녀야 한 다. 부정케 하는 것은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다. 구원받은 무리 가운데서 하나의 결점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The Youth Instructor, 1901.1. 17. 17).
온전한 순종에 못 미치는 것은 하나님의 요구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는다(치료봉 사, 1905, 180).

우리의 무력함
도움을 받지 않는 상태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우리의 능력에 관하여 엘렌 화잇은 하등의 희망을 걸지 않았다. 그녀는 그리스도 없이는 우리는 무력하다고 말한다.

1888년 이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분께로부터 지혜와 힘과 의를 얻는다. 하나님의 법을 범한 그는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다. 그리스도 없이 그는 하나의 죄를 굴복하거나 최소의 시험도 극복할 수 없다(ST 1878. 1. 24. 25).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 할 수 있도록 아무것도, 절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절대로 신뢰하거나 우리의 선행을 신뢰해서는 안 된 다. 가려 뽑은 기별 제1권, 354.

1888년 이후

법은 의를 요구하고 죄인은 법에게 의를 빚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갚을 길이 없다( 가려 뽑은 기별 제1권 367).
우리가 자신의 처절한 무력함을 깨닫고 모든 자기 신뢰를 버릴 때에 우리는 하나 님의 능력을 붙들게 된다(교회증언 제8권, 1904, 316).

우리의 유일한 소망
엘렌 화잇은 전 생애를 통하여 독자들과 청취자들에게 그들의 유일한 소망인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보였다.

1888년 이전

더 이상도 아니고 그 이하도 아니고 우리가 이 땅에 오사 희생 제물로 죽으신 구 속자를 믿는 것은 필수적이다. 구속주가 오실 것을 믿었던 고대인들에게 필수적 이었던 것처럼. 그들은 구속주를 표상적 희생제물을 통하여 나타내었다. …사람 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주시려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이 인류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ST 1879.8. 7. 234).
(리뷰의 글을 통하여 유사한 기별을 재림교인 독자들에게 전달하였다.)
우리 구주께서는 오셔서 희생제물로 자기의 피를 흘리셨다. 지금은 하늘 성소에 서 아버지 앞에서 그 피로 호소하신다. 옛날처럼 지금도 그 피의 공로로만 하나 님의 법을 범한 자들이 용서를 얻을 수 있다.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함으로 이루어진다(RH 1886. 3. 2. 129).

1888년 이후

(미니애폴리스 이후 엘렌 화잇은 이 놀라운 진리를 더 유창하게 진술하였다.) 갈바리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 그 리하면 그대는 안전하다(RH 1889. 9.
3. 546).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의는 우리 로 하여금 하늘에 들어갈 여권을 얻 게 해 줄 것이다.”(Letter 6b, 1890).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우리가 순결하고, 온전하고, 부족함이 없도록 충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RH 1890. 2. 4. 65).

구원하는 믿음

1888년 이전

(캘리포니아 힐즈버그에서 1882년 5월 30일 에 기술한 원고에서 엘렌 화잇은 우 리가 믿 음으로 세우는 주님과의 개인적 관계에 대 하여 묘사하였다.  )
이 믿음은 우리 편에서 최고의 선호, 온전한 신뢰, 전적인 헌신을 표해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해야 하고, 우리의 감정, 소원, 관 심, 명예는 그리 스도의 나라의 번영과 그 사업의 명예에 맞 추어져야 하는 동시 에, 우리는 끊임없이 그 분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며, 그리스도는 우리 로부터 감 사를 받으신다(RH 1887.12.13. 769).
(한 해 후에 엘렌 화잇은 스타우피즈가 루터 에게 구원의 길을 설명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을 “진리”라고 불렀다. 그녀는 이렇게 진술한다.)
루터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하여 조력자 겸 친구 한 사람을 세우셨다. 경건한 스타우피츠는 루터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열어 보여 주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 님의 법을 범한 것에 대한 끝없는 형벌을 골똘히 생각하지 말고, 죄를 용서하시는 예 수를 바라보라고 권하였다. “네 실수를 보고 자신을 고문하는 대신에 그대의 구속주의 품에 자신을 안겨라. 그분의 삶의 의를, 그 분의 죽음의 희생을 보며 그분을 신뢰하라. 하나님 의 아들의 말씀을 들으라. 하나님의 은총을 확실히 하시려고 그분은 사람이 되 셨다. 그대를 먼저 사랑하신 그분을 사랑하 라.” 이 자비의 사자는 그렇게 말하 였다. 그 의 말은 루터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오류 들과의 많은 투쟁 끝에 그는 진리를 붙들게 되었고, 그의 심란 한 영혼에 평화가 깃들게 되었다(ST 1883. 5. 31. 242).

1888년 이후

(미니애폴리스 후에, 엘렌 화잇은 믿음의 최상의 역할을 계속 강조하였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용서를 약속하시도록 하는 조건이다. 믿음 자체에 무슨 구원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믿음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붙들게 하기 때 문이다.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제공된 치료제다. …죄인이 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믿음을 통해서이다. 믿음으로 죄인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하나님께 로 가져갈 수 있다. 주님께서는 자기 아들의 순종을 죄인의 계정에 두신다(1889.1. 18. R. A. Underwood에게)

(구원을 위하여 요구되는 믿음에 관한 엘렌 화잇의 묘사는 해가 갈수록 더 자세 하게 되었다. 구원하는 믿음은 피상적이고 그냥 지나치는 경험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그녀는 선언하였다.)
구원에 필수적인 믿음은 명목상의 믿음이 아니다. 그리스도로부터 생명력을 끌 어 오는 존속하는 원칙이다. 그런 믿음은 영혼으로 하여금 품성이 세련되고 순 결하게 되고 고상하게 될 정도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리스 도에 대한 이 믿음은 단지 충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 을 순결케 하는 능력이다. RH 1889.8.18. 51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념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의지가 하나님께 굴복되면, 마음 이 그분께 바쳐지면, 애정이 그분께 고정되면, 거기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은 사랑 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케 한다(정로의 계단, 63).

하나님과 기꺼이 협력함

1888년 이전

(엘렌 화잇는 죄인이 그리스도의 의를 거저 받는 선물로 얻고자 한다면 주님 과 온전히 협력할 준비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스위스 트람메란에서
1885년 2월 4일에 전한 설교에서 그녀는 말하였다.)
구원을 이루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인간의 협력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힘 차게 노력해햐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의 노력에 하나님의 은혜를 연합시킬 것이다. …
사람이 나태와 무활동 중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철저히 불가능하다. 영 생을 얻고자 하는 사람 앞에는 계속적인 투쟁이 있다. 믿음과 행함은 함께 간다. 사람은 믿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은 오류이며 가장 위험한 교 리다. …
죄는 미워해야 하며 제거되어야 한다. 육체의 일을 대항하여 반드시 싸워야 한 다. … 그리스도께서 모두 다 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를 순종할 필요가 없 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할 것이다(RH 1888.10. 30.673).
(리뷰의 기사에서 엘렌 화잇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다 인용한 후에 이렇 게 설명하였다.)
여기 영생을 얻는 조건들이 가장 단순한 형태로 주님에 의하여 명백히 진술되어 있다. 상처입고 강도당한 사람은 우리의 관심과 동정과 사랑의 대상을 나타낸 다. 우리가 알게 되는 어려움 속에 있고 불행한 사람들의 경우를 지나친다면, 그 들이 누구든 간에, 우리에게는 영생의 보증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에 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RH 1886.7.13. 433. (미니애폴리스 총회 직전에 우리가 그분의 공로의 덕을 입으려면 주님과 협력해 야 할 의무에 관하여 다시 말하였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대가 할 일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 다. 그대는 하늘의 역사와 협력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은 모든 육체와 영의 부정으로부터 깨끗케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성결을 완성해야” 한다고 권면 을 받고 있다(RH 1888. 3. 6. 145).

1888년 이후

(미니애폴리스 이후에 엘렌 화잇은 믿음의 구사와 함께 죄인 편에서 하나님과 협 력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함을 계속 강조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구원은 그대에게 거저 주어지는 선물이다. 다른 어떤 조건으로도 그것을 얻을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공짜 선물이다. 그러나 그대의 구원을 위하여 그대편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1891.6.3. To Sister D. S. Gilbert
알고 있는 죄를 행하는 동안, 알고 있는 의무를 등한히 하는 동안 아무도 그리스 도의 의의 두루마기로 영혼을 덮을 수 없다. 칭의가 일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온전한 굴복을 요구하신다. …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면 믿음은 그것이 마음의 애정과 충동을 관장할 수 있는 지점까지 나아가야 한다(RH 1890. 11. 4. 673).
우리의 구원이 예수께 온전히 달려있지만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하여 우리가 해 야 할 일이 있다. 사도는 말한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 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 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과 동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협력하는 일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역 사와 협력하는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조화시키려고 하 자마자 그리스도의 은혜는 우리의 결심과 협력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공급된다 (Apples of Gold Library, 17 [October 1894]: 2, 4-5).

칭의: 온전한 용서
예수를 믿음으로 즉각적 의를 얻을 가능성은 지구상의 거민들에게 주어진 가 장 놀라운 뉴스임에 틀림없다. 이 좋은 소식은 성경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걸쳐 공포되었다. 그리고 엘렌 화잇의 글들에 분명히 제시되어 있다. 다음 인용문 들은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방법에 관한 그녀의 가르침 중 대표적인 것이다.

1888년 이전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아무것도, 절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 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선행을 조금도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잘못을 범하고 죄 있는 존재로서 그리스도께 나아가면 우리는 그의 사랑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다. 못 박히신 구주의 공로를 온전히 의지하며 그에게 나오는 모 든 사람을 하나님은 받아 주실 것이다(1883년 대총회 회기 중 아침 설교).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 우리에게 자기의 의를 입혀주심으로 우리를 무 한하신 분에게 연결시키신다(ST 1875. 8. 5. 310).
나는 세상 끝까지 기쁜 소식을 울려 퍼지게 하고 싶다. “오, 아름다운 구원! 이 위대한 진리가 얼마나 광대한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산 믿음으 로 그분이 온전히 하실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분께 구하는 순간 우리를 용서하 신다(RH 1886. 9. 21. 593).
이러한 영적 관계는 개인적인 믿음을 실천함으로만 성립될 수 있다. …이러한 친 밀한 연결과 교통이 형성될 때에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 놓여지고, 그의 의는 우리에게 입혀진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 님의 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다. 우 리는 사랑하시는 자를 통하여 받아들여진다(RH 1887. 12. 13. 593).

1888년 이후

회개하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면서 자신을 위한 그리스도의 중보를 깨 닫고 이 중보를 이생과 오는 생에서 자신의 유일한 소망으로 받아들이면 그의 죄는 사해진다.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이다(원고 21, 1891).
값비싼 중보의 희생의 공로를 참으로 믿는 순간,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주 장하며, 그 순간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용서되었기 때문이다(원고 46. 1891.
그리스도의 의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받는다. 우리가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 것처럼 용서 받는다(원고 1. 1892).
죄로 더럽혀지고 악으로 물든 죄인을 위하여 이루어진 큰 사업은 의롭다 하심의 사업이다. 진리를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그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주 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신자에게 전가시키시며 온 우주 앞에서 그를 의롭다 고 선언하신다. 가려 뽑은 기별 제1권 392.
죄인이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죄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가 자기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이 그에게 입혀졌다(그리스도인 교육의 기초, 1923, 429).

새로운 피조물
주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순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바뀐다. 엘렌 화잇은 이런 견해를 1888년 이전에 표했으며, 그 후에는 이 점을 더 분명히 하였다. 그녀 는 이렇게 썼다.

1888년 이전

그리스도의 종은 깨어 기도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헌신하고 겸손하며 온유하고 겸비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때 죄의 종 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과 품성에 변화를 얻었다(ST1884. 3. 27. 194).

1888년 이후

그대가 자신을 그에게 바치고 그를 그대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그대의 생애가 아 무리 악하였을지라도 그의 공로로 인하여 그대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리스 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 처럼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진다. 이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변화시키 신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마음 가운데 거하신다. …그리하여 그리스 도께서 그대의 마음 가운데서 역사하시면 그대는 같은 정신을 나타낼 것이며 또 한 같은 행실-의와 순종의 행실-을 행할 것이다(정로의 계단, 62, 63).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옛 것을 변경하고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을 변화시
키는 것이다. 자신과 죄에 대하여는 죽고 전혀 새로운 생명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성령의 효과적인 역사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시대의 소망,172).

보 증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가납하심을 얻고 하늘이 그를 왕의 자녀로 보았다는 어떤 보증의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그가 용서받고 구속받았다는 것을 실제로 알 수 있을까? 1888년 이전과 이후에 엘렌 화잇은 이점에 관하여 예라고 대답하 였다. 일찍이 <싸인즈 오브 다 타임즈>에 게재된 두 기사에서 그녀는 독자들에게 보장하였다.

1888년 이전

하나님은 아마도 내가 너를 받아 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 대신 “내가 너를 받아 줄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긍정적인 약속이다. 그대는 하나님께 받 아들여질 것이라는 보증을 가졌다(ST 1878. 1. 31.  33).
죄가 용서되었다는 감미로운 느낌, 그리스도만이 주실 수 있는 빛과 사랑이 엄숙 하고 절제된 기쁨으로 영혼을 채웠다. 우리가 전능자의 보호 아래 있다는 보증 은 새로운 용기와 확신을 주며, 영혼에게 닻과 같은 희망을 불러일으키며, 확실 하고 든든하여 휘장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보증과 함께 우리가 전에는 알지 못 하였던 힘의 근원을 얻는다(ST 1882. 3. 16. 122).
(그리고 <리뷰>지도 동일한 기별을 전하였다.)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사랑하므로 하나님 이 그들을 들으실 것이라는 보증을 갖고 있다(RH 1883. 9. 11. 578).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보증도 없으면서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는 것처럼 손을 놓고 느긋하게 있는 것은 미친 일이다. …그대는 그런 불확실 성 속에 머물 필요가 없다. 귀한 빛줄기를 받아들이려고 열려있는 모든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빛이 비취고 있다. “내 구속주가 살아계신 것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그대의 특권이다. 성령이 그대의 영에게 그대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증거할 것이다(RH 1886. 9. 6. 690).

1888년 이후

(미니애폴리스 후에 보증에 관한 그녀의 언급은 계속되었다.)
그대가 죄인이고 무가치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대를 받아 주지 않을 것이라 고 두려워하며 의심하고 자신의 영혼을 고문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1892.7.4.  534).
그러나 그대는 말한다. 그분이 나의 구원자라는 것을 내가 알 수만 있다면 얼 마나 좋으랴!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증거를 원하는가? 그리스도가 그대의 것이 라는 것을 증명할 특별한 느낌이나 감정을 원하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을 대한 순수한 믿음보다 더 믿을만한 것인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들을 통 하여 주신 보증의 반이라도 얻으려고 그대가 요구하는 친구가 세상에 없다(RH1890. 7. 29. 465).

그리스도의 입혀 주신 의를 통하여 죄인은 그가 용서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 다. 법이 더 이상 그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가 모든 계명과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불신자들과 죄인들에게 내릴 복수에 관하 여 읽고 생각할 때에 그 자신을 무죄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그의 특권이다(The Youth Instructor, 1894. 11. 29. 373).
그대가 오늘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면, 오늘 그리스도가 오신다하더라도 그 대는 준비된 것이다(원고 36. 1891).

어떻게 칭의를 유지할까?
엘렌 화잇은 칼빈주의의 교리인 성도의 견인을 따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렇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배도가 있다고 인정하였다. 그러한 비극을 피하도록 하기 위 하여, 다음과 같은 권고들을 주었다. 모두 1888년 이후의 기간에 주어진 것이다.

“사람이 칭의를 유지하려면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순결케 하는 활동적이 고 살아있는 믿음을 통하여 계속적인 순종이 있어야 한다.”- RH 1890.11.4. 673.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가지고 있으려면 우리는 매일 성령의 영향으로 변화 되어 신의 성품에 참여해야 한다.” – 1892.11.1. 673.
“새롭게 된 마음이라도 말씀의 소금을 매일 치지 않고는 달콤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는 매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회심한 상태 를 유지할 수 없다.” – RH 1897.7.14. 578.
“하나님과 산 연결을 맺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자아 사랑과 자아 방종과 죄에 대한 유혹의 부정한 영향에 대항할 수 없다. 우리는 많은 악습을 버릴 수 있을 것 이며 얼마 동안은 사탄과의 관계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순간마다 자신 을 굴복시킴으로 하나님과 산 연락을 가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복당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친숙하고 계속적으로 교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원수에 게 좌우되어 마침내 그의 명령을 행할 것이다.” – 시대의 소망, 324.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위에 진술된 것처럼 엘렌 화잇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를 이해하면서 성화의 과정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1895년까지 그녀는 성화에 관한 그녀의 진술 이나 다른 어떤 사람의 진술에도 아직 온전히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때 그녀는 이 렇게 기록하였다.
“오랫동안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화의 주제에 관하여 글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이 주제에 관한 최적의 글이 나타나지 않았다.” O. A. 올슨에게 보낸 편지, 1895.5. 12.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화를 온전히 다룬다는 생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우 리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그 주제의 몇 가지 중요한 국면들을 다루었다. 그 것들 중 하나가 참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이 도발적 인 질문에 대한 엘렌 화잇의 대답은 매우 배울 것이 많다. 그녀는 이렇게 썼다.

1888년 이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큰 책임을 맡기신 자들이, 오늘날 우리들이 투쟁하고 흔

들리고 흔히 잘못을 범하는 것처럼 때때로 유혹에 넘어져서 죄를 범하였다. …
그 임무에 충실한 영감의 펜은 노아, 롯, 모세,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을 정복한 죄악들을 우리에게 말해 주며, 엘리야의 강한 정신까지라도 그 두려운 시련의 시 간에 유혹에 빠져든 사실을 알려 준다. 요나의 불순종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과 바울과 바나바의 날 카로운 대립과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실패와 결함들이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 시는 성령에 의해 모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믿는 자들의 생애가 그들 뒤에 오는 모든 세대의 교훈이 되게 하기 위한 의도로서, 그 모든 결함과 어리석음이 모두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만일 그들에게 흠이 없었다면 그들은 인간 이상의 존재들이었을 것이며 우리의 죄된 속성으로 그처럼 탁월한 지점에 도달하려 할 때 낙망하게 되었을 것이다(교회증언 제4권, 10, 12).

1888년 이후

우리는 우리의 부족과 과실로 인하여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눈물을 흘려야 할 때도 자주 있을 것이다(정로의 계단, 64).

그러나 엘렌 화잇은 그 문제를 거기 방치하지 않았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계획 적인 죄와 무계획적인 죄의 차이를 설명하였다. 미끄러지는 것과 악에 의해 지배 를 받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녀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1888년 이전

한 사람이 실수할 때 다른 이들은 그 경우를 가능한 한 나쁘게 보이고자 하는 생각을 자주 갖게 된다. 아마도 다른 방향으로 큰 죄를 범한 사람들이 형제들을 잔인한 날카로움으로 처리하려고 한다. 무지와 얕은 생각이나 연약성 때문에 저 지른 잘못들이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죄로 과장되고 있다(RH 1886. 11. 30. 737). 죄를 지으려고 하지 않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죄짓게 끌려갔고, 경성과 기도가 부족하여 죄를 짓고, 사탄의 유혹을 깨닫지 못하고 덫에 빠진 것은 계획적으로 고의적으로 시험에 들고 죄의 길을 계획한 것과는 매우 다르다(우리의 높은 부르심, 177).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 스스로를 악의 지배 에 맡기지 않았다(교회증언 제5권, 474).
품성은 일을 통하여 나타난다. 간헐적인 선행이나 간헐적인 잘못이 아니라 습관 적인 말과 행동의 경향으로 나타난다(ST 1884. 3. 27. 194).

1888년 이후

매일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 정로에서 벗어나 실수를 한다면, 예수를 꾸준히 바라보는데서 잠시 눈을 돌렸다면, 그것은 그가 의도적으로 죄짓는 것이기 때문 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실수를 보면, 그는 다시 돌이키고 예수에게 시 선을 고정시키기 때문이다. 그가 실수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서 덜 사랑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다(RH 1896. 5. 12. 290).
또한 주님께서는 마음에서 죄의 지배하는 권세를 끝나게 하셨으며 신자의 생애 와 품성이 그리스도의 은혜의 순수한 특성을 증거하게 하셨다. 가려 뽑은 기별 제1권, 395.
품성은 일을 통하여 나타난다. 간헐적인 선행이나 간헐적인 잘못이 아니라 습관 적인 말과 행동의 경향으로 나타난다(정로의 계단, 57-58).

평생의 싸움
엘렌 화잇에 따르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성화의 과정은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결코 끝나지 않는다. 미니애폴리스 이전과 이후의 그녀의 진술은 매우 유사 하다.

1888년 이전

자신을 졸업한 그리스도인으로 간주하지 말라. 그대의 사업은 살아있는 한 마음 을 훈련하고, 지식을 쌓고, 품성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만 그대는 삶 의 큰 싸움에서 성공적으로 싸워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ST 1876. 9. 7. 300). 바울이 주장한 성화는 자신과의 계속적인 투쟁이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하였다. 그의 의지와 욕망은 의무감과 하나님의 뜻 사이 에서 매일 갈등을 빚었다. 그는 자신의 경향을 따르는 대신에 그것이 마음에 들 지 않거나 자신의 성질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였 다(자서전, 237).

1888년 이후

영혼들이 회심하면 그들의 구원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달려가야 할 길 이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는 힘든 투쟁이 앞에 있다. … 싸움은 평생 간다. 목표가 영생인 만큼 그 목표의 가치에 상응하는 결연한 힘으로 싸움 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우리의 높은 부르심, 163).
사탄이 통치하는 한 우리에게는 복종시켜야 할 자아가 있고 극복해야 할 얽매이 게 하는 죄악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이 계속하는 한 멈추는 데가 없을 것 이며, 우리가 도달해서 내가 완전히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 없을 것이 다. 성화란 필생의 순종의 결과이다(사도행적, 560-561).

승리의 삶
그리스도인들이 수 세기동안 논쟁해 오던 다른 질문은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 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이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에 온전히 바쳐져서 지속적으로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은 숨을 쉬는 동안 죄짓고 회 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 하는 삶을 살 수밖에 다른 길이 없는가?
엘렌 화잇은 이 질문에 대한 그녀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1888년 이전과 이 후의 입장이 동일하다. 아래에 이 문제에 관한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진술들 몇 개 를 모아 놓았다.

1888년 이전

우리는 이길 수 있다. 그렇다. 전적으로, 온전히. 예수께서 우리가 피할 길을 만 드시려고 죽으셨다. 모든 악한 기질, 모든 죄, 모든 시험을 이기고 마침내 그분과 함께 앉도록 하셨다(교회증언 제1권, 144).

믿음으로, 또한 기도로 모든 사람은 복음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 아무도 강제로 죄를 짓게 할 수 없다. 정욕이 이성을 지배하려 하면 혹은 죄가 양심을 이기려 하면 먼저 자신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영혼이 죗된 행위를 의도해야 한다. 유혹 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죄의 구실이 되지 못한다(ST 1883. 2. 8. 61, 62).
가장 강한 유혹이라도 죄의 핑계가 되지 못한다. 영혼을 누르는 압력이 아무리 크더라도 범죄는 우리 자신의 행위다. 세상이나 지옥의 권세라도 아무에게 죄를 짓게 할 수 없다. 의지가 동의하지 않고 마음이 굴복되지 않으면 정욕이 이성을 장악할 수 없고, 악이 의를 이길 수 없다(ST 1883. 10. 4. 433),
구속의 경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강한 것일지라도 모든 죄의 습성을 정복하고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방법을 준비해 놓으셨다(리뷰 앤 헤랄드,
1885년 12월 22일; 가려 뽑은 기별 제1권, 82).

1888년 이후

그리스도는 우리가 죄를 그치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려고 죽으셨다(RH 1894. 8.28.  545).
구속의 계획은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을 겨냥하였다. 그리 스도는 늘 통회하는 영혼을 죄로부터 분리시키신다. 그는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 셨다. 회개하는 모든 영혼이 죄짓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성령이 주어지도록 준비하 셨다.
유혹자의 힘이 그릇된 행동에 대한 구실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사탄은 그리 스도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품성의 결함에 대하여 변명하는 소리를 들을 때에 환호한다. 죄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핑계이다. 죄를 범하는 데에 핑계가 있을 수 없다. 거룩한 기질,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가 회개하고 믿는 하나 님의 모든 자녀에게 이루어질 수 있다(시대의 소망, 311).
충성스럽게 그를 섬기며 임금 임마누엘의 피 묻은 깃발 아래 서 있다면 그대는 결코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 곁에 서 계신 분은 그대가 실 수하지 않게 지켜내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우리의 높은 부르심, 19).

엘렌 화잇에 따르면 승리의 삶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어떤 이들은 실제 로 그런 삶을 살았다. 그녀는 이렇게 천명하였다.

“아담 때부터 매 세대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사탄의 모든 계교에 저항하였고, 그들은 어떤 위인(爲人)이 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 보여 주는 대표자로 우뚝 서 있 다.” RH 1874.3.3. 91.

미니애폴리스에서 전한 엘렌 화잇의 설교
1888년 대총회에서 전해진 엘렌 화잇의 기별들은 총회 전에나 후의 기사와 설 교의 내용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와 관계하여 그 녀는 칭의와 성화를 다소 동등하게 다루었다. 총회 중 그녀의 부담은 형제들이 E. J. 왜거너의 기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었다. 왜거너에 반대하는 고정된 편견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을 대부분의 목사들은 아예 듣지 않았다. 10월 21일 의 설교에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들이여 하나님께는 자기 백성을 위한 가장 귀한 빛이 있다. 나는 그것을 새 빛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많은 이들에게는 그것이 새로 운 것으로 들린다. …여러분이 별로 잘 알지 못하는 이 귀한 진리를 반대하지 않 도록 조심해야 한다. …토론자로 자신들을 훈련시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천사 가 “그대들은 얼마나 많은 기도를 올렸는가?”라고 묻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대들 의 경박한 행동과 발언들이 책에 기록되었다. 이 모임에서 그대들의 신앙적 자세 를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보고 계셨는지를 그대들이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The Ellen G. White 1888 Materials (Washington, DC.: Ellen G. White Estate,1988), 140-141.

11월 1일 대총회가 끝날 무렵 그녀는 설교 속에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나는 의사 선생님이 우리 앞에 제시한 그리스도의 의와 법의 관계에 관한 진 리의 아름다움을 본다. …여기 제시된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해들의 경험 속에서 내게 주시기를 기뻐하셨던 빛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토록 분명히 제시된 가르침(율법과 연관된 그리스도의 의)을 형제들이 받아들이기만 했으 면, 나는 그들이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편견이 장악하는 힘이 되지 않았을 것이고 백성들은 적절한 때에 그들의 양식으로 배불리 먹었을 것이다.” -위의 책, 164.

엘렌 화잇은 자신의 설교들 중에 왜거너의 설교들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의 기별들에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언어를 곁들였다. 총회 전 목회자 연구회 중인 10월 11일 아침 설교에서 형제들에게 간곡히 부탁하였다. “우리가 자기 높이기와 자기 의를 모두 버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연결된다면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입혀질 것이다.”상게서, 71. 이틀 뒤 안식일 설교에서 그녀는 호소하였다.

“‘그리스도여, 내게 나타내시옵소서. 당신의 한없는 은혜 속에서 하늘에서부 터 땅에까지 드리운 황금 고리를 잡을 수 있도록, 내가 그것을 붙들고 위로 끌어 올리기를 기도합니다’라는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원합니다.” -위의 책,76.

미니애폴리스에서 둘째 안식일에 전한 설교에서 그녀는 회중을 이렇게 가르쳤다.
“그대들의 기도들, 대속물이신 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가납되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곧 우리의 대속물을 받으신다. …여기 하나님의 법이 있었다. 그분은 그 법을 일점일획이라도 바꿀 수 없다. …우리는 그 법속에서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의 를 보지 못하는가? 그리스도는 들어오셔서 율법에 대한 온전한 순종 안에서 자 신의 의를 내게 입히신다. …그대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그대는 오늘 그분을 소유할 수 있다. 그대들은 그분이 오늘 그대들의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분 이 죽으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범한 하나님의 법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셨기 때문 에 자신의 의를 그대들에게 입히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위의 책, 125, 128.
미니애폴리스 설교들에서 몇 차례 한 설명들과 E. J. 왜거너를 강력하게 뒷받침 한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엘렌 화잇의 입장의 일관성을 드러낸다. 믿 음으로 말미암는 성화에 대한 그녀의 설명들도 동일하게 결정적이며 일정하다.

그녀는 반복적으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녀의 첫 안식일 설교에서 그 녀는 백성들에게 일렀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범죄한 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리스도였 다. 우리가 우리 죄 가운데서 구원을 얻으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로부터 구 원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돌아가야 하고, 순종하 는 자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게서, 74.

한 주일 후, 둘째 안식일에 그녀는 이례적으로 강한 어투로 주장하였다. 그녀는 선포하였다.
“지금 우리가 제시하고 싶은 것은 그대들이 신앙생활 속에서 어떻게 전진할 것 인가이다. 우리는 많은 핑계들을 듣는다. 나는 이렇게 저렇게 살 수 없어. 이렇게 저렇게 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갈바리에서 타락한 인류를 위해 이루어진 것이 불완전한 희생이었다는 것을 뜻하는가? 충분한 은혜와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서 우리의 타고난 결점과 경향을 떠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뜻인가? 우리를 위해 주 어진 것이 전체적인 구세주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비난하려는 가? 자, 여러분은 그것은 아담의 죄였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에 무죄하다. 나는 그 의 죄와 타락에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든 타고난 경향이 내 속에 있다. 타고난 경향을 행동으로 옮긴다 해도 내 탓이 아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하나 님인가? 왜 하나님은 사탄이 인간 본성 위에 이런 능력을 갖게 하셨는가? 이것은 하늘의 하나님을 고소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대들이 원한다면, 하나님께 마침내 그대들의 비난을 퍼붓도록 하실 것이다. 그 리고 하나님은 그대가 심판정에 들어올 때에 자신의 비난을 그대에게 퍼부을 것 이다. !
…죄의 유일한 정의는 범법이다. 그리고 여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그분 은 바로 여기로 들어오시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다. 오직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위의 책, 122,128.
다음날 10월 21일에 그녀는 같은 주장을 반복하였다.
“구세주는 인류가 여호와의 계명을 계속 범하게 하기 위하여 인류의 죄를 쓰고, 자신의 의를 그들에게 입혀 주셨는가? 아니다. 아니다. 인간이 자기 힘으로 법 을 지킬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오셨다. 그는 법의 계명을 순종할 힘 을 사람에게 주시려고 오셨다.” -위의 책, 130.

요약
요약하자면, 엘렌 화잇은 1888년 이전과 이후에 이렇게 가르쳤다.
1.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에 들어갈 모든 사람에게 완전을 요구하신다.
2. 죄인으로서 우리는 그러한 완전한 상태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다.
3.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의 형벌을 갚으셨고,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을 우리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그분의 완전한 생애로 우리의 불완전한 생애를 대신하시겠 다고 하신다.
4. 그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는 그분을 기꺼이 순종하겠다는 협동의 정신이 뒤따라야 한다.
5. 그분은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 의롭다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한 번 도 죄를 짓지 않은 사람으로 보신다.
6. 칭의의 순간에 죄인은 새 마음을 받는다.
7. 자신을 그들의 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매일 자신의 의를 나누 어주신다.
8. 그리스도인은 평생 마귀와 싸워야 한다. 그는 가끔 자기도 모르게 넘어질 수 있다. 그런 순간적인 넘어짐이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어버리지 못한다.
9.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도움에 꾸준히 충실히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죄를 짓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 어떤 신자들은 그러한 삶을 살았다.

엘렌 화잇이 어떻게 변했는가?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에 관한 오랜 기간의 엘렌 화잇의 가르침 이 변화를 겪었다는 예를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러나 1888년 그녀의 설교와 저술

의 새로운 강조점이 시작되었다.
죄인이 칭의를 얻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게 되는 작용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미니애폴리스 대총회 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 의하여 별로 강조되지 않았다. 어떤 이들이 이론적으로 믿고 있었을 것이며, 일반적으로 교인들의 삶에 서 경험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엘렌 화잇은 이 가르침이 1888년 이전에는 의 당히 받아야 할 강조를 얻지 못하였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1890년 봄에 그녀는 이렇게 증언하였다.
“우리가 믿음의 칭의를 너무 강조한다고 두려움을 표하는 형제들이 간혹 있다. 그러나 내가 기대하고 기도하는 바는 아무도 이것에 불필요한 경계심을 가질 필 요가 없다. 성경이 제시되어 있는 대로 이 가르침을 제시하는 것에는 아무 위험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잘못이 있었다 면 지금은 그것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RH 1890.4.1. 193.
그녀는 미니애폴리스 집회 후 2년간 “전과는 달리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를 보았”다고 진술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알론조 T. 존즈와 E. J. 왜거너 목사와 함께 부흥회와 목회자 성경 연구회를 개최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의 좋은 소 식이 우리 백성들에게 선포되도록 하였다. 1890년 2월 4일 배틀크리크에서 전한 설교에서 그녀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의 의의 기별이 설교되는 집회들을 참석하면서 이곳저곳을 여 행하였다. 내 형제들 곁에 서서 그 때를 위한 기별과 더불어 내 증언을 전할 수 있 었던 것을 특권으로 생각한다. …백성들은 자기의 죄를 고백하였고,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였다.” RH 1890.3.18. p. 161.
1889년 1월 매사추세츠 주 사우스 랜카스터에서 모였던 회합에 대하여 엘렌 화잇은 이렇게 보고하였다.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를 신뢰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의와 비교하여 그들이 그것들을 더러운 누더기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의만이 하 나님께 가납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한다. 방황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는 것은 너무 늦는 것이 아니다.” RH 1889.3.5. 146.

그 해 (1889) 봄, 캔자스 야영회에서 엘렌 화잇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안식일에 회중 대부분에게 새로운 진리들이 제시되었다. …백성들이 겨우 이 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진리들이 드러났다. 율법과 복음에 관련된,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라는 빛이 하나님이 말씀으로부터 번뜩이었다. 진리에 굶주린 영혼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귀한 빛으로 여겨졌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라는 기별 은 많고 많은 영혼들에게 쉼을 가져다주었다.”
몇 주일 후에 펜실베니아 주에서 그 반응은 동일하였다. 그녀는 이렇게 기록하 였다.
“우리가 참석한 모든 집회에서 우리는 믿음의 단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을 보았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는다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에게 믿음으 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는 보이지 않았다. …자아 부정의 그리스도, 겸손의 그리 스도, 순결의 그리스도, 그분의 거룩하심, 다함없는 사랑의 그리스도, 매 설교마 다 이 주제를 외쳐야 할 필요가 있었다.”
늦은 여름 엘렌 화잇은 뉴욕에서 있었던 집회에 관하여 보고하였다. “롬(Rome)의 집회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가 제시되자, 많은 이들
에게 갈한 여행자에게 물과 같았다. 우리 편의 아무 공로도 없이,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입혀진다는 생각은 귀한 사상으로 여겨졌다.” -RH, 1889. 9. 3. 546.
미니애폴리스 대총회 후 몇 년 동안 엘렌 화잇은 가장 그리스도 중심적인 책인
<정로의 계단>, <산상보훈>, <시대의 소망>, <실물교훈>을 펴냈다. 그녀에게 “믿음 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의 의”의 기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인간의 입 술을 통하여 전달된 가장 달콤한 멜로디”였다. -RH, 1893. 4.1. 209.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선물, 곧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얻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그들을 권유하라.”(교회증언 제9권, 114). “우 리에게 자신의 의를 나누어주시려고 그리스도가 치르신 희생”은 “우리가 더 깊이, 더 깊은 열정으로 숙고해야 할 주제”다(하나님의 자녀들, 124). 그녀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셋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불렀다(RH, 1890.

4. 1. 193).
셋째 천사의 기별이 변하지 않은 것처럼, 믿음으로 우리에게 입혀 지고 나누어 지는 그리스도의 의라는 복음도 변하지 않았다. 이 놀라운 진리는 한 세기 전에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들에게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도 필요하다.

(출처: Toward Righteousness by Faith: 1888 in Retrospect, editor Arthur
Ferch, SPD 1989:101-131).

-Robert W. Olsen, 도현석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