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는 바울의 말은 무슨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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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총회 성경연구소의 성경 난해 문제 해석

Interpreting Scripture: Bible Questions and Answers


[대총회 산하에 봉직하고 있는 선발된 학자 49명이 내놓은 성경 난제 94개에 대한 균형 잡힌 해석들]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는
바울의 말은 무슨 뜻인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롬 6:14).

이 본문의 문제는, 그것을 따로 떼어서 보면 죄를 극복하려면 율법을 제거하고 그 대신 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데 있다. 사실 이 본문은 율법과 은혜가 서로 배치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 왔다. 존 스토트(John Stott)에 의하면, “율법과 은혜는 서로 배치되는 옛 질서와 새 질서의 원칙들이다.”(1)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은 율법이 죄 자체는 아니지만 죄를 불러 온 원인이라고까지 말한다. 이런 해석들은 용납할 수 없는 것들이며, 성경 전반의 가르침에 위배될 뿐 아니라 바울 자신이 로마서의 다른 부분에서 율법을 긍정적으로 말한 진술에도 위배된다(참조 롬 7:12, 16; 딤전 1:8). 마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처럼 바울에게 율법과 은혜는 배치되지 않고 상호보완적인 원리들이다.

그리스도인과 죄:
이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맥을 고려해야 한다. 직접 접해 있는 문맥인 로마서 6:12∼14은 일반적으로 더 큰 문단들인 6:1∼11과 6:15∼23을 연결시켜 주는 문단으로 여겨지는데, 이 두 문단 모두 시작하는 질문으로써 구분된다. 1∼11절은 5:12∼21에서 선행된 논의로 인해 제기된 질문으로 시작한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6:1). 바울은 그럴 수 있음을 강하게 부정한다. 바울이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는 구절을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이해하기를 원했든, 그는 은혜의 통치가 율법에 대한 순종에서 우리를 해방시켰다고 생각하기를 원치는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침례로써 그리스도의 죽음 및 부활과 연합되었기 때문에 계속 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15∼23절도 6:1처럼 5장 끝의 논의로 다시 돌아가 제기하는 두 번째 질문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6:15). 바울은 다시 한 번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게 됨으로써 죄와 상관없이 살아야 한다.

아담의 시대와 그리스도의 시대:
로마서 1∼5장을 보면 바울이 두 시대 곧 아담의 시대와 그리스도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역사를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시대와 달리, 아담의 시대는 죄가 그 특징을 이룬다. 그러므로 3:9에서 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막론하고 모든 인간이 죄 아래 있다고 말한 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시대에 속해 있다는 말이다. 아담의 시대는 그리스도의 시대가 도래한 후로도 함께 평행을 이루는 실재로서 역사에서 계속된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에 중요한 것은 율법과 믿음(3:21∼4:21), 범죄와 은혜(5:1∼21), 죄와 거룩(6:1∼23) 사이에 뚜렷하게 그어진 대조들은 모두 이 두 시대의 구도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이런 세계관에 따른다면 율법이 아담의 시대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문제다. 사실, 바울도 율법이 더 이상 그리스도의 시대에는 정죄하는 기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진술한다(롬 8:1). 독자가 율법에 대한 잘못된 추론을 끌어내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바울은 6∼8장에서 두 가지 논증을 제공한다. 첫째, 바울은 율법이 악하지 않다고 논한다. 긴 논증을 편 후에 바울은 율법의 선함에 대해 확언한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7:12). 그런 다음 8:4에서 바울은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진술로써 이러한 확언을 보강한다. 둘째, 바울은 그의 논증의 방향을 역사에서 인간적 경험으로 바꾼다. 5:12∼2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역사에 대해 갖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 6장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경험에 대해 갖는 의미로 주의를 돌린다. 6:12∼14의 목적은 율법의 문맥에 비추어 초점이 역사에서 인간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것을 구분 짓는 데 있다.

“율법 아래”와 “은혜 아래”의 의미:
로마서 6:14은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진술의 미래 시제(“주관치 못하리니”)에 대해서는 몇 가지 상이한 해석이 있다. 어떤 이들은 명령이 아니라 약속으로 보고, 다른 이들은 그것을 격려나 보증으로 본다. 이런 것들도 좋은 제안이다. 하여튼 우리가 당장 지금 죄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구절의 시제는 12, 13, 19절의 권면 및 7:14∼25에서 현재 시제로 된 진술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로마서 6:14의 후반부는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고 진술한다. 바로 다음 절을 보면, 바울이 여기서 “율법 아래”라는 구절을 사용하여 율법의 정죄 아래서 살던 죄와 죽음이라는 옛 시대의 삶을 가리킨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바울이 곧이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6, 18절). 그러므로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14절)라는 진술은 독자에게 두 시대 사이에서 성공적인 전환이 일어났음을 말한다.
“율법 아래”와 “은혜 아래”라는 두 표현은 율법과 은혜라는 관점에서 침례의 의미를 해명하기 위해 바울이 가장 잘 선별한 말이다. 율법의 정죄 아래 있는 삶은 죽는 것에 해당하고, 은혜 아래 있는 삶은 죄의 세력을 깨뜨리고 능력을 받을 수 있는 부활 및 성령 충만한 삶에 해당한다. 이 절의 직접적인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새로운 시대의 능력을 사용하는 수단으로 침례를 정의하는 데 있다.


로마서 6:14에서 바울이 말하려는 점은 “특정한 법이 아니라 하나의 원리로서의 법이다. 그의 요점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길로서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는 것이다. 율법은 죄인을 구원하지도, 죄와 그것의 권세를 끝내지도 못한다.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3:20), 인간의 죄됨을 인하여 죄가 더 많아지게 한다(5:20). 율법은 죄를 용서하지도, 그것을 이길 힘도 주지 못한다. 율법 아래서 구원을 찾는 죄인은 정죄 및 죄에 더 깊이 속박됨을 발견할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6권, 541).

침례의 역할:
그렇다면 침례가 어떻게 인간으로 그러한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하도록 하는가? 바울에게 “몸”은 영적 힘의 통제를 받아야 할 일종의 중립적 실재이다. 바울이 “왕 노릇”이나 “종노릇” 같은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말할 때도 이런 견해를 염두에 두었다. 바울의 표현으로 우리의 죄된 본성을 가리키는 “육신”(flesh)과 달리, “몸”(body)은 거기 담겨 있는 세력에 따라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율법 아래”라는 표현은 죄의 세력 아래 있는 몸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죄의 세력이 우리의 삶을 다스리는 동안 우리는 율법의 정죄 아래 있다. 마찬가지로 “은혜 아래”라는 말은 우리의 몸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의 거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태에서만 율법이 신자의 삶에서 이뤄질 수 있다.
침례가 우리의 몸을 죄의 권세 아래서 그리스도의 권세 아래로 옮기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와 부활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물속에서 침례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침례 예식을 치르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예식 시간이 너무 짧고, 그런 시간으론 침례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둘째, 그런 침례의 최초 경험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옛것에 대해 죽고 새것에 대해 사는 경험으로 우리 마음속에서 계속 기억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계속 성장하는 믿음과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과 의지가 그리스도의 마음 및 의지와 매일 동일시되는 경험을 해야 한다(갈 2:20).


바울은 “율법 아래”라는 구절을 사용하여 율법의 정죄 아래 사는 것을 가리키고, “은혜 아래”라는 표현으론 “죄의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계획 아래” 사는 것을 의미한다(F. D. Nichol, Answers to Objections, 82).

P. Richard Choi

<미주>

1. John R. W. Stott, Romans: God’s Good News for the World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1994), 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