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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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움직임으로 많은 기독교인이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윤청실 목사(한국연합회 가정봉사부장)가 이를 우려했다.
글: 윤청실 목사(한국연합회 가정봉사부장)

■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으로 인해 많은 기독교인과 시민단체들이 동성혼이 합법화될 것에 대해 우려한다. 혼인이 없이도 이뤄지는 가족의 형태에 대해 결혼에 대한 책임과 성실에 대한 의무도 사라질까 걱정한다. “가정의 다양성”이 아니라 “가정의 위기”가 아닌가 염려한다.

개정안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우려가 “억지스러운 주장”이라고 한다.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속한 가족들을 위한 복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법이 악용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평등”으로 수정해 가족구성에 있어 성(性)의 구별을 없앴기 때문에 사실상 동성혼을 염두에 두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엘렌 지 화잇 선지자의 말처럼 “부도덕이 지금과 같이 대담하게 그 추한 머리를 쳐든 적은 결코 없었다”<그늘 없는 가정>

국가가 어떠한 정책을 세워 가정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데는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혼인’ ‘가족 해체 예방’ ‘태아의 건강보장’이라는 단어 등을 삭제해 혼인과 이혼 그리고 낙태를 개인의 선택에 맡기되 국가는 그 결과에 복지적으로 책임을 지자는 주장이다. 일견 합리적이고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책임과 성실성보다는 자유라는 이름의 방종을 위한 구실이고, 타락한 세대와 이기심에 대한 가슴 아픈 증거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이 제정되는 배후에는 사단이 있다. 화잇 선지자는 <교회에 보내는 권면> 8장에서 “인간들은 사단의 세력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려고 한다”고 경고록한다.

동성혼은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합법화 됐고, 세계적 추세로 볼 때 언젠가 한국에서도 합법이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심지어 몇몇 개신교회조차 동성혼을 인정한다. 어떤 목사는 동성애는 죄가 아니라고까지 두둔한다. 미국의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등의 교단은 동성애자의 목사 안수도 허용했다. 다른 교단들도 논의 중에 있다고 하니 충격적이다.

■ 성경에 나타난 동성애에 대한 관점
몇 년 전 간통죄가 폐지되었을 때의 충격과 혼란처럼 이 세상의 법은 완벽한 법이 없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 만드는 법이기에 완벽하지 않고, 성경의 원칙과 일치되지 않는 악법도 존재한다. 완벽한 법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법밖에 없다. 우리는 세상의 법이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법과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한다.

동성애에 관한 성경의 관점은 명백하다.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고 하며(레 18:22) 남색하는 자와 남자에게 몸을 파는 미동(美童=남자에게 몸을 파는 남자아이)이나 남창에 대해서 성경은 명백히 가증한 것임을(신 23:17) 신구약 모두에서 말하고 있다.
유다서 1장 7절에서는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라고 기록한다.

영어 단어 소도미(sodomy)는 성적 타락이 극에 달했던 소돔에서 유래된 말로 동성간 성행위를 일컫는 말임을 생각할 때 동성애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임이 분명하다.

복혼(배우자가 2명 이상의 혼인 형태)에 대해서도 성경은 일부다처제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야곱의 아들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았다. 사라는 하갈을 내쫓아달라고 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허락하셨다. 압살롬이 아버지를 반역한 것도 일부다처제의 폐해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부다처는 가족 간의 원한과 상처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 결혼과 동성애에 대한 재림교회의 입장
재림교회는 <기본교리>에서도 동성혼과 복혼이 성경적이지 않음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결혼제도는 에덴에서 신성하게 제정되었으며, 한 남자와 한 여자사이에 사랑의 교제로 맺어지는 평생 동안의 연합임을 예수님도 확증하셨다”<재림교회 기본교리 23장, 결혼과 가정>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선물로 주신 결혼제도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연합이었다. 그 가정에 행복이 깃들고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기를 바라셨다.

화잇 선지자는 <성적 행실과 간음과 이혼에 관한 권면>에서 16장을 ‘동성연애’에 할애했다. 그는 이에 대해 “원칙을 내동댕이쳐 버리는 이상한 일들이 있으며, 도덕성의 원칙이 낮추어지고, 이 땅은 신속하게 소돔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고 물로 홍수를 겪게 했으며, 소돔을 불로 멸망시켰던 남색적인 행습들이 신속하게 증가하고 있다. … 세상의 빛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은 모든 불의에서 떠나도록 하라”고 지적했다.

■ 동성애의 현실
동성애를 하는 사람은 “우리가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 중에 혼자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성범죄가 되고, 건강을 해치게 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10대 남학생들이 용돈 3만원을 벌기 위해 동성애자들과 거래를 한다는 충격적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연세대 김준명 교수는 2018년 대한감염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국내 에이즈 감염자 중 남성 동성애자가 월등히 많다고 발표했다. 급증하고 있는 에이즈의 가장 큰 원인이 동성애에 있는 것이다. 10대 에이즈 환자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감염자의 60%가 20~30대라고 한다. 30~40대만 되어도 요양원에 입소할 만큼 일상생활이 어렵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물론 에이즈에 감염되었어도 꾸준히 약을 먹으며 주변 사람을 감염시키지 않고 일상 생활에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약값을 지원하기 위해 사용되는 세금도 한 해 1000억 원 이상이다. 막대한 규모의 예산을 들여서라도 감염을 막아 다른 국민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성애로 인한 질병을 감소시켜 이 귀중한 세금을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나 소외계층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편이 훨씬 더 바람직하다.

미국정신의학회는 1942년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분류했다가 1952년 성격장애로 분류했다. 이후 1973년에는 동성애자들의 꾸준한 시위에 의해 정신질환이나 성격장애에서 삭제했다. 동성애자들은 질환이 아니기에 치료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성에 대한 불쾌감, 동성을 향한 성적지향성을 가진 게 후천적인지 선천적인지, 치료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첨예하다. 신앙의 힘과 치료로 회복된 사람도 있고, 또 노력했지만 벗어하지 못한 사람도 많다고 한다.

■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역할
언젠가는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게이(남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레스젠더(남성이나 여성의 신체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자신이 반대 성의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사람) 등 성소수자들이 한국 재림교회 안에서도 현실적 문제로 대두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는 인간과 사단의 세력의 연합으로 이뤄지는 악법의 제정을 막고자 적극적인 방법으로 노력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이 어떠하든 본래는 그렇지 않음을, 성경적 원칙이 무엇인지 바른 소리를 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청년들이 성경적 원칙과 영적 지각 그리고 분별력을 갖도록 교육하고, 동성애에 대한 위험성도 알리고자 노력해야 한다.

동성애자에 대해서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고 사려 깊게 행동해야 한다. 세리와 창녀의 친구셨던 예수께서 오늘날 이 땅에 계신다면 성소수자에게도 친구로 다가가지 않으셨을까.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말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하되 그 이전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신 말씀과 또 돌을 들고 있던 자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신 말씀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즉, 죄는 미워하지만 죄인은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특히 그들이 당하는 혼란과 두려움과 자살충동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상담자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함께 고민해주고 기도해 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사람을 교회 안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한다. 필자가 과거 1000명선교사로 봉사할 때 만난 교회청년 중에도 게이가 있었다. 게이였지만, 다른 청년들과도 잘 어울렸고 성도들은 그를 많은 청년 중 한 명으로 여기며 전혀 거리낌 없이 대해줬다.  

재림교회가 가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제도의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성소수자들이 우리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면 충격적이고 부정하고 싶을 것이다. 분리 시키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고민과 자살의 위험성을 가진 자들을 거절하고 정죄하기보다, 예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다가가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마음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다.

화잇 선지자는 사단의 계획에 대해 <빛을 전한 사람들>에서 “노아 홍수 이전에 결혼제도를 왜곡시켜서 그 의무를 약화시키고, 그 신성성을 떨어뜨리려고 노력한 것은 사단이었다. 그 까닭은 사람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시켜서 불행과 악덕에의 문호를 개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기록한다.

동성혼은 사단이 원하는 왜곡된 결혼제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동성혼뿐 아니라 가정 내 학대와 폭력과 간음과 미움과 이기심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정은 망쳐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도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정죄는 우리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니다. 겸손히 자신을 살피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미소 지으시는 가정으로 그분의 형상을 회복하고자 기도하고 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