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인생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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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엄마의 시간’이라는 사연을 들었다. 사연의 주인공은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자신만의 마법의 시공간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지혜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한 청소년 내담자의 어머니인 A 씨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담자들은 청소년 내담자를 ‘종합 선물 세트’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첫 번째 이유는 한 명의 청소년 내담자를 만나면 그 이면에 부모라는 두 명의 내담자가 있으며, 그 아이가 경험하는 아픔은 한 가지가 아니라 운명 공동체인 가족의 슬픔과 아픔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상담을 통한 만남과 성장이 우리 자신에게도 감사의 선물이 되기 때문이다. A 씨와의 만남도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나에게 인생의 큰 전환점을 경험하게 하는 선물이 되었다.

   A 씨와의 첫 만남은 그녀의 딸을 3번 정도 만난 후였다. 그녀에게 자녀에 대한 상담이 의뢰된 계기와 현재 상담 진행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자 초등학교까지 영재였고 모범생이었던 딸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너무 놀라 입술과 손을 바르르 떨었다. A 씨의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후 내담자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부모의 역할과 가정에서의 대처법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상담을 마친 후 뒤돌아 가는 A 씨의 모습은 불안해 보였다.

   두 번째 상담 시간이 되어 A 씨에게 연락을 하니 연기하자는 응답이 왔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첫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음 상담 시간에 만난 A 씨는 팔에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A 씨에게 어떻게 하다가 교통사고가 났냐고 물어보니 머뭇거리며 힘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젊은 나이부터 교수로 열심히 일해 온 A 씨는 자신보다 더 뛰어난 남편과 영재인 딸을 위하여 자신의 꿈과 삶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인생의 조연으로서 그들의 성공에 올인하였다. 그런데 첫 상담에서 알게 된 딸의 문제로 충격을 받고 차로 벽을 들이받았고, 현재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며 통곡하였다. 그녀의 울음소리에 내 마음에도 쩍쩍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나’라는 인생에서 ‘남편’과 ‘아이’ 중심으로 넘어간 ‘아내’와 ‘엄마’라는 인생 회전축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 이후 내담자의 부모와 상담자가 아닌 ‘엄마’라는 ‘운명 공동체’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동안 좋은 엄마, 이상적인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실은 내가 살지 못한 삶과 미해결된 문제를 아이를 통해 보상받고 싶었던 ‘이기적 엄마’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인간의 뇌는 자신과 타인에게 반응하는 뇌 영역이 다르다. 그러나 엄마의 뇌는 자녀를 생각할 때 자기 자신을 생각하는 뇌의 영역인 내측전전두엽이 똑같이 활성화된다. 이것은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비롯한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며 자녀뿐 아니라 자신의 문제로 악화시킨다. 그러므로 엄마로서 여성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객관적 자기 관찰과 어린 시절 미해결된 개인의 상처를 돌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엄마 콤플렉스’에 빠진 우리의 문제를 깨달은 이후 내담자는 A 씨와 나로 변경되었고, 상담의 주제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로 바뀌었다. 그리고 하루에 한 시간씩 ‘엄마’라는 타인 돌봄 중심의 인생과 ‘나’라는 자기중심적 인생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였다. 매일 자신의 사고, 감정 및 삶의 패턴을 글로 적어 보고 서로에게 피드백을 해 주면서 엄마와 아내 외의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서로를 위한 응원군이 되었다. 그 결과 A 씨는 자기 이해와 통찰에 대한 영역이 확장되면서 자기와 동일시한 자녀를 온전한 존재로 바라보고 대화하는 시간이 증가하였고 자녀와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졌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 딸의 문제도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상담을 마치며 자신의 새로운 인생에 대한 도전들이 행복하다고 이야기를 하는 A 씨에게 나는 ‘성장하는 엄마’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기회를 선물해 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녀와 나의 상담은 끝났지만 ‘엄마라는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성장하는 우리의 여행은 계속되고 있다.

김세미

기독교 상담학 박사

2024년 가정과 건강 7월호 제공